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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사람을 괴롭히는 여우같은 년, 어디로 도망가려고? 1

  • 임효설은 이쪽을 쳐다보는 검은 정장의 사내를 힐끔 쳐다보다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기 전에 머리를 숙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치 이곳 직원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청소도구를 들고 그녀를 찾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로비를 나갔다.
  • 로비를 나선 후 십 미터 정도 더 가자 몇몇 손님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관광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녀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버스에 올라탔다.
  • “어, 직원은 타면 안돼요 …”
  • “제 친척이 산 아래에서 기다려서요. 급한 일인데 한번 봐주시죠!”
  • 임효설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기사아저씨를 바라보았다.
  • “… 다음부터는 안돼요.”
  • 같은 직장동료가 급한 일이 있다며 부탁을 하자 기사 아저씨는 그녀더러 제일 뒤쪽에 앉아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된다고 눈치를 줬다.
  • 임효설이 산 아래로 내려가 시내로 가는 택시를 타던 그때 보안 시스템이 발동이 되었고 리조트 전체가 봉쇄되었다.
  • 임효설은 택시를 타고 시내에 있는 소희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낸 절친한 사이였다.
  • 소희는 유일하게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친구였다. 그녀는 임효설이 원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녀의 무엇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소희는 문밖에 서있는 임효설을 보고 깜짝 놀랐다.
  • “기사님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셔. 나대신 차비 좀 내줘.”
  • 임효설은 밖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희의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 “왜 도망 왔어? 결혼은 안 해?”
  • 소희는 정신을 차리고 지갑을 챙기면서 물었다.
  •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왜 꼭 결혼을 해야 하지?”
  • 임효설은 엽일범 그 개자식을 떠올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 “그럼 아저씨, 아주머니는 어떡해?”
  • “……”
  • 그녀는 전에 너무 부모님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 그녀가 도망치면 천하의 불효녀가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 임효설은 고통스러워하며 얼굴을 찌푸렸고 소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 임효설은 옷장을 열어 깨끗한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 그녀는 간단하게 샤워를 하며 몸에 남아있는 옅은 피비린내를 씻어냈다.
  •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 제일 어두운 하루였다.
  • 그녀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상처 난 오른손을 붕대로 감싸고 나올 때쯤 소희가 돌아왔다.
  •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 그녀는 무심하게 물었다.
  • “어,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걸어 올라왔어.”
  • 소희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였고 숨을 크게 몰아쉬며 의자에 앉아 임효설을 바라보았다.
  • “이 옷들은 네가 계속 별로라고 하면서 몇 번 입지 않은 거니까 내가 가져갈게. 그리고 돈 좀 빌려줘. 내가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돈을 벌면 갚을게.”
  • 임효설은 독하게 마음을 먹은 듯 했다. 그녀는 갈아입을 옷 몇 벌을 낡은 가방에 넣으며 소희를 향해 말했다.
  • “어디 가려고?”
  • 소희가 물었다.
  • “몰라. 될수록 멀리 도망갈 거야.”
  • “그럼 네 부모님은?”
  • “… 나 다시 돌아올 거야.”
  • 문제는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잠시 도망가려는 게 아니었다.
  • “배고파? 내가 먹을 것 좀 내올게.”
  • “엽일범이 내가 호텔을 벗어났다는 걸 알게 되면 내가 연락할만한 친구들부터 찾아갈 거야. 난 조금 있다가 갈 거야.”
  • 간단하게 짐정리를 마치고 몇 십만 원을 챙긴 임효설은 소희와 함께 기차역으로 갔다.
  • 하지만 그녀는 엽일범이 부하들을 데리고 그곳에 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양쪽의 건장한 사내에게 제압당한 채 검은색 외제차에 억지로 올라탔다.
  • 아직도 신랑차림을 한 엽일범은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의 옆자리에 탔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 임효설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정장의 사내들 뒤에 두려움에 떨며 서있는 소희를 본 그녀는 순간 눈가가 촉촉해졌다.
  • 지금까지 줄곧 그녀의 편이 되어 주던 소희가 그녀를 배신한 것이다.
  • 부모님은 그녀를 이용해 빚을 갚으려 하고 절친은 배신을 하니 이 세상에서 그녀가 의지하고 기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