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다음 화
첫키스를 돌려줘

첫키스를 돌려줘

도로시

Last update: 2022-04-02

제1화 도망간 신부

  • “빨리,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
  • “여기야, 여기로 도망갔어…”
  •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임효설은 코너를 돌아 기다란 복도에서 부리나케 뛰었다. 하이힐을 신은 채 달리던 그녀는 몇 번이나 긴 드레스를 밟고 넘어질 뻔 했다.
  • 등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고 그들의 대화를 들은 임효설은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 그녀의 눈처럼 하얀 피부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정교한 신부화장을 한 얼굴로 흘렀다. 그녀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드레스를 위로 잡으면서 발걸음을 재촉했고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상황을 살폈다. 아까 돌았던 코너에 어두운 그림자들이 길게 드리워졌다.
  • 그들이 왔다.
  • 어떡하지? 어떡하지?
  • 이곳 5성급 스파 호텔은 너무 커서 미궁 같았고 복도도 그녀가 지금까지 봐온 것 중에 제일 길었다.
  •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자 임효설은 순간 방법이 떠올라 허리를 굽혀 오른쪽 신발을 벗어 복도 밖에 있는 뒤뜰에 던졌고 신발은 잘 정리된 잔디밭에 처량하게 버려져 있었다.
  •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한쪽 신발만 신은 채 절뚝거리며 계속 앞으로 달리다가 그녀를 쫓아오는 사람들이 코너를 도는 순간 커튼이 쳐져있는 한 스파실로 들어갔다.
  • 증기로 가득한 스파실 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높이 달려있는 격자무늬 창을 통해 들어오는 몇 가닥의 햇빛만이 주위의 상황을 비추고 있었다.
  • 열기가 가득한 탕의 저 편에 누군가가 온천탕 안에 기대어 앉아있었는데 실루엣으로 보아 남자가 분명했지만 증기가 가득 찬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 남자는 고개를 위로 한 채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거로 보아 아마도 잠이 든 것 같았고 그녀가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 커튼 너머로 발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그들이 복도까지 쫓아온 것이다.
  • 임효설은 마른 침을 삼켰고 조심스럽게 온천탕 왼쪽에 있는 병풍 뒤에 숨었다.
  • “어? 분명 방금 전까지 이쪽으로 도망 오는걸 봤는데? 어디 갔지?”
  • “신발, 그 여자 신발이야 …”
  • “멀리 도망가진 못했을 거야. 아마 뒤뜰에 숨어들었겠지. 빨리, 가서 찾아봐. 나무 뒤랑 가산 뒤까지 샅샅이 찾아봐.”
  • 병풍 뒤에 숨은 임효설은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았다. 반짝이는 바닥에 흉악한 놈들의 그림자가 비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마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는 스파실 밖에 있는 놈들에게 발각될 것만 같았다.
  • 그녀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 더 깊숙이 숨으려고 했으나 긴 드레스를 밟았고 쿵-하는 소리와 함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너무 아파 입이 떡 벌어졌다.
  • 그녀는 넘어지면서 왼쪽 발이 허공으로 들렸다가 바닥에 부딪쳤고 신발과 대리석 바닥이 맞닿으면서 탁-하는 소리가 났다.
  • “응?”
  • 밖에서 남자의 의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고 임효설은 그 소리에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 엽일범이었다. 그도 쫓아오다니, 정말 큰일이었다.
  • 임효설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뒤로 물러나며 최대한 복도와 연결된 문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 공기 중에는 그녀의 두려움에 찬 숨소리로 가득 찼고 피비린내도 섞여 있었다.
  • “찾았어?”
  • 엽일범이 뒤뜰을 수색하고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 “없습니다.”
  • “보스, 이 복도의 저쪽 끝은 호텔 로비인데 거기를 지키던 사람들이 아가씨를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 “그 여자는 그쪽으로 도망가지 않았어. 무조건 이 근처에 있어.”
  • 엽일범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임효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