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화장을 예쁘게 한 임효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고 부드러운 불빛에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맑고 큰 눈동자는 슬픈 듯 눈물이 고여 있었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같이 입장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팔짱을 끼고 있는 딸의 작은 손을 가볍게 잡았다.
눈물이 앞을 가린 그녀는 아버지의 늙고 여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힘겹게 입 꼬리를 올리며 아버지를 위로하듯 미소를 지었다.
레드카펫의 저쪽 끝에는 엽일범이 제단 앞에 서있었다. 정장차림에 가죽벨트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잘생기고 멋있었고 얼굴에는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엽일범을 향해 한걸음씩 걸어갔고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제단 앞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것은 영락없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악마였다.
그녀가 엽일범의 앞에 도착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손을 엽일범의 손바닥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마치 애초부터 ‘자진해서’자신의 모든 걸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이번에 넘겨주는 건 그녀의 행복한 일생이었다.
목사가 손에 성경을 들고 결혼식 축사를 읽고 있었지만 그녀는 한글자도 들리지 않았고 머릿속이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틀 밤낮을 갇혀있었고 지금 결혼식장에 들어선 이 순간조차 이 모든 걸 끝낼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원합니다!”
엽일범의 간단한 한마디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임효설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고 엽일범은 그녀의 오른손을 꼭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엽일범의 손에 있는 결혼반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반지를 들고 있는 엽일범의 손이 그녀의 무명지로 빠르게 다가왔다.
‘안 돼, 안 돼.’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그녀를 구해줬으면 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임효설은 막막하면서도 두려웠다. 그녀는 큰소리도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엽일범의 경고하는 듯한 눈빛과 부모님의 간절한 눈빛에 목이 잠겨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반대합니다.”
갑자기 성당 입구 쪽에서 우렁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깜짝 놀란 듯 시선을 일제히 그 남자에게로 돌렸다.
남자는 키가 195센티에 서른 살 즈음 돼보였는데 바르고 밝은 이미지에 카리스마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데이빗이였다.
데이빗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다섯 개의 화살그림이 그려진 배지를 단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두 무리가 빠르게 들어오더니 파죽지세로 예식장 양쪽으로 쳐들어와 엽일범의 부하들을 제압했다.
“꺅!”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을 본 하객들은 아연실색했고 몇몇 여자들은 무서워서 비명을 내질렀다.
임효설에게 반지를 끼워주던 엽일범도 그 기세에 당황했다.
S시에서 시장조차 그에게 깍듯하게 대하는데 그런 그의 결혼식을 이런 기세로 망치는 거로 보아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 같았다.
재수가 없으려니 신부가 도망가지를 않나, 갑자기 쳐들어와서 결혼을 반대한다고 하지를 않나, 이 결혼식은 도대체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엽일범은 어두운 표정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의 뒤에는 정장차림을 한 기품이 넘치는 우아한 여자가 예리한 눈빛을 하고 따라오고 있었다.
임효설은 그 틈을 타서 엽일범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엽일범의 표정을 보아하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마침 타이밍 좋게 나타난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고 설마 하나님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형님…”
엽일범은 부하에게 닥치라고 손짓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문 사람이라고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결혼식에 이런 기세로 성당에 들이닥쳐 망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