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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난 반대야!

  •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화장을 예쁘게 한 임효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고 부드러운 불빛에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맑고 큰 눈동자는 슬픈 듯 눈물이 고여 있었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 같이 입장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팔짱을 끼고 있는 딸의 작은 손을 가볍게 잡았다.
  • 눈물이 앞을 가린 그녀는 아버지의 늙고 여윈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힘겹게 입 꼬리를 올리며 아버지를 위로하듯 미소를 지었다.
  • 레드카펫의 저쪽 끝에는 엽일범이 제단 앞에 서있었다. 정장차림에 가죽벨트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잘생기고 멋있었고 얼굴에는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녀는 엽일범을 향해 한걸음씩 걸어갔고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제단 앞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것은 영락없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악마였다.
  • 그녀가 엽일범의 앞에 도착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손을 엽일범의 손바닥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마치 애초부터 ‘자진해서’자신의 모든 걸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이번에 넘겨주는 건 그녀의 행복한 일생이었다.
  • 목사가 손에 성경을 들고 결혼식 축사를 읽고 있었지만 그녀는 한글자도 들리지 않았고 머릿속이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틀 밤낮을 갇혀있었고 지금 결혼식장에 들어선 이 순간조차 이 모든 걸 끝낼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 “원합니다!”
  • 엽일범의 간단한 한마디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 임효설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고 엽일범은 그녀의 오른손을 꼭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엽일범의 손에 있는 결혼반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반지를 들고 있는 엽일범의 손이 그녀의 무명지로 빠르게 다가왔다.
  • ‘안 돼, 안 돼.’
  •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그녀를 구해줬으면 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 임효설은 막막하면서도 두려웠다. 그녀는 큰소리도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엽일범의 경고하는 듯한 눈빛과 부모님의 간절한 눈빛에 목이 잠겨 소리를 낼 수 없었다.
  • “반대합니다.”
  • 갑자기 성당 입구 쪽에서 우렁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깜짝 놀란 듯 시선을 일제히 그 남자에게로 돌렸다.
  • 남자는 키가 195센티에 서른 살 즈음 돼보였는데 바르고 밝은 이미지에 카리스마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데이빗이였다.
  • 데이빗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다섯 개의 화살그림이 그려진 배지를 단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두 무리가 빠르게 들어오더니 파죽지세로 예식장 양쪽으로 쳐들어와 엽일범의 부하들을 제압했다.
  • “꺅!”
  •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을 본 하객들은 아연실색했고 몇몇 여자들은 무서워서 비명을 내질렀다.
  • 임효설에게 반지를 끼워주던 엽일범도 그 기세에 당황했다.
  • S시에서 시장조차 그에게 깍듯하게 대하는데 그런 그의 결혼식을 이런 기세로 망치는 거로 보아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 같았다.
  • 재수가 없으려니 신부가 도망가지를 않나, 갑자기 쳐들어와서 결혼을 반대한다고 하지를 않나, 이 결혼식은 도대체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 엽일범은 어두운 표정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의 뒤에는 정장차림을 한 기품이 넘치는 우아한 여자가 예리한 눈빛을 하고 따라오고 있었다.
  • 임효설은 그 틈을 타서 엽일범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엽일범의 표정을 보아하니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마침 타이밍 좋게 나타난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고 설마 하나님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 “형님…”
  • 엽일범은 부하에게 닥치라고 손짓했다.
  •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문 사람이라고 봐줄 생각이 없었다.
  • 그들 사이에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결혼식에 이런 기세로 성당에 들이닥쳐 망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