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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탐하다

너를 탐하다

도로시

Last update: 2022-04-02

제1화 나한테 싫증이 난 건가?

  • 하영은 잠시 정신을 추스르려 했다. 하영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하영은 텅 빈 두 눈으로 그저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욕실 문이 열리는 순간에야 그녀는 침대 위에서 일어나 앉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는 다시 가면을 쓰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애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성운 씨 진짜 너무하네요. 미리 얘기하지, 갑자기 이렇게 늦은 시각에 불러내고… ”
  • 억울한 듯한 음성이었다.
  • 최성운은 머리에 있는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고 살짝 벌어져 있는 가운 틈으로 그의 탄탄한 몸매가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어 하영을 바라보았다.
  • 하영의 연기는 나날이 발전해갔다. 1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했는데 하영이 그동안 쭉 연기하면서 지냈다는 걸 최성운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최성운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것을 지적하는 대신 차가운 목소리로 낮게 대꾸했다.
  • “ 다음엔 좀 더 살살할게. ”
  • 말을 마치고 최성운은 수건을 그대로 침대 위로 던지고는 옷장을 열어 슬랙스를 꺼내고 가운을 벗어 던졌다.
  • “ 성운 씨 저번 달 3일에 출장 가서 우리 한 달 넘게 못 만났는데. ”
  • 하영은 침대 위에서 내려오며 최성운에게 걸어가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 “ 여기 온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가려고요? ”
  • 하영은 습관처럼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 “ 내일 아침에 가요. 저랑 좀 더 같이 있어요. 저 성운 씨 너무 보고 싶어서 꿈도 성운 씨 꿈만 꿨다니깐요. ”
  • 최성운은 하영의 더듬대는 손을 떼어내면서 몸을 돌려 그녀를 자신과 서랍 사이에 가뒀다. 날이 선 눈빛이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과 완벽한 몸매를 훑어보았다. 하영은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눈치도 엄청 빨라서 만난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최성운의 몸과 마음을 전부 기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 최성운은 하영의 턱을 들어 올리며 덤덤한 어투로 물었다.
  • “ 하영아, 너 나랑 만난 지 얼마나 됐지? ”
  • “ 1년 거의 다 돼가죠. ”
  • 순간이었지만 하영의 눈동자에 뜻모를 빛이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이내 얼굴에 미소를 옅게 띠며 되물었다.
  • “ 그건 왜 물어봐요? 설마 저한테 질리신 거예요? ”
  • 하영은 자신이 감정을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최성운은 그걸 빤히 꿰뚫고 있었다.
  • “ 때가 되면 비서한테 연락하라고 할게. ”
  • 최성운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자신의 겉옷 주머니에서 가죽 지갑을 꺼내 들더니 미리 준비해두었던 수표를 건넸고, 하영은 그것을 건네받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 “ 고마워요, 성운 씨. ”
  • 수표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하영은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수표에 입을 맞추고는 서랍 안에 넣고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욕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하영은 욕조 안에 물을 가득 받고 그 안에 몸을 눕혔고 밖에서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영은 두 눈을 감은 채로 욕조 안에 누워 최성운이 방금 전 한 말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1년을 채우면 이젠 자신과 안 만날 거라는 얘긴가?
  • 그리고 그것이 하영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었다.
  • 1년 전 하영은 두 번이나 배신을 당하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릴 뻔했었지만 조금 지나 깨달았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 건지. 하영은 누구보다도 잘 사리라 다짐했다. 가장 능력 있고 권력 있는 남자를 만나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말이다.
  • 하지만 그녀는 여태껏 자신의 엄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최성운과 만나면서 그 사람이 자기 생각처럼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발을 빼려던 참이었다.
  • 1년짜리 계약을 맺지만 않았어도 하영은 오래전에 그를 떠났을 것이다.
  • 이튿날 아침 알람이 울리고 어젯밤 고되고 힘들었어도 하영은 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씻고 옷을 갈아입는데 삼십 분 정도 걸리고 하영은 얼른 집을 나섰다.
  • 1년 전, 하영은 최성운의 인맥을 통해 고성 방송국에 입사했었다. 그러나 실력 없는 낙하산이 아니었던 하영은 자신의 외모와 입담을 통해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뜨게 되면서 방송국의 얼굴이 되었다.
  • 그리고 하영은 오늘 아침 일찍 방송국에 도착해서 게스트들과 만나야 했고 아주 늦은 시각에야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방송국으로 가는 도중 하영은 핸드폰을 켜 유정이 보내온 동영상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