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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난 차라리 날 빨리 차 줬으면 좋겠는데

  • 동영상의 촬영 시간은 새벽 세 시 경이었다. 최성운은 그녀의 집에서 벗어나 화수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으로 향했고, 지하주차장 안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나오더니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 그 모습에 하영은 냉소를 흘렸다. 최성운이 자신에게 질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었는데 그게 설마 사실일 줄은.
  • 하영은 동영상 속의 그 여자가 최근 아주 핫한 이지연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자신의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가식적인 데다가 성격도 별로였다. 최성준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언제 변한 건지. 그러나 최성준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던, 하영은 그가 자신에게 질린 거였으면 얼른 차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비서가 하루라도 빨리 자신에게 연락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그와 헤어지고 난 후의 자신의 행복한 생활을 상상하며 하영은 매우 들떠있었다. 방송국에 도착한 하영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유정은 그녀를 발견하고는 종종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 “ 어떻게 된 거야? 최성운 어젯밤에 너랑 같이 있지 않았어? ”
  • 유정이 낮게 물었다.
  • “ 왜 한밤중에 이지연한테 간 거냐고? 자기가 뭐 스케줄 관리의 대가야? ”
  • 유정은 하영과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로서 일 년 전 하영을 설득하고 최성운을 소개해 준 장본인으로, 유정은 방송국 보도부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 하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얘기했다.
  • “ 상관없어. 난 차라리 날 빨리 차 줬으면 좋겠는데. ”
  • “ 너 복수할 거라며. 그런 사람을 또 어디 가서 찾아? ”
  • 유정은 하영을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 “ 단서는 찾았고? ”
  • 고개를 젓는 하영의 눈동자에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 “ 아니. 너도 알다시피 최성운이 어지간히 눈치가 빨라야지, 내가 대놓고 그를 이용한다면 아마… ”
  • 하영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고 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저하며 말했다.
  • “ 그럼 내가 돌아가서 아빠한테 도와달라고… ”
  • “ 유정아, 넌 이미 나 많이 도와줬어. ”
  • 하영은 씩 웃으며 유정의 손을 맞잡았다.
  • “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도 이겨낸 나인데, 지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난 네가 나 도와주겠다고 중간에 껴서 힘들어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
  • 유정이 또 무슨 소리를 할까 하영이 그녀 먼저 입을 열었다.
  • “ 게스트들 리스트는 나왔어? 이번엔 누가 온 대? 대본 썼으면 나한테 미리 알려주고. ”
  • 말을 하면서 하영은 유정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유정이 여전히 아무 말이 없자 하영이 고개를 돌려 보았고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가득한 유정을 보고 하영이 물었다.
  • “ 또 어떤 게스트가 갑질하면서 출현 안 한대? ”
  • “ 아니. ”
  • 유정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너 오늘 그냥 휴가 내고 집에 가서 쉬어. 뭐 대단한 게스트 온 것도 아니고, 너 하나 빠진다고 해도 시청자들 뭐라 안 할 거야. ”
  • 그에 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 “ 나 아픈 데도 없는데 왜 가서 쉬래? 그리고 최성운이 진짜 날 차기라도 한다면 이 일로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데, 이미지 관리 잘 해둬야지. ”
  • 하영은 책상 위에 물컵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 “ 말해, 왜 그러는 건지. ”
  • “ 그냥 내 말 들어. 너 오늘 그냥 집에 가. 진행 안 해도 돼. ”
  • 유정은 하영을 바깥으로 끌고 나가려 하면서 말했다.
  • “ 혼자가 싫은 거면 나도 휴가 내서 같아 쇼핑하러 가든지 하자. ”
  • “ … ”
  • 유정이 자신을 자꾸 보내려 하자 하영은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보도부의 다른 아나운서와 마주치게 되었다.
  • “ 좋은 아침이에요, 하영 언니! ”
  • 그녀는 하영과 인사를 나누며 말했다.
  • “ 오늘 남지호 씨가 언니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서요? 저 남지호 씨 팬인데 조금 이따 뉴스 나가야 해서 저 대신 사인받아줄 수 있어요? ”
  • 남지호…
  • 그 이름에 하영은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영의 낯빛이 창백하게 뒤바뀌며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 아나운서는 하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 “ 하영 언니, 몸 안 좋으세요? ”
  • “ 어,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가, 당이 좀 떨어졌나 봐. ”
  • 하영은 숨을 골랐고 짧은 몇 초 사이 낯빛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 “ 조금 이따 사인받아 줄게. ”
  • “ 고마워요, 하영 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