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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재회하다

  • 그 아나운서가 떠나고 유정은 하영에게 다가가 말했다.
  • “ 남지호가 이번에 대작을 맡게 됐대. 그전까진 북아메리카에서 6개월 동안 영화를 찍고 저번 주에 다시 돌아왔다더라… 원래 리스트에 없었는데 오늘 아침 리스트가 바뀌어있더라고. 그 사람 매니저가 우리 방송국에 연락해서 이 프로그램 나오겠다고 했대. ”
  • 유정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고 마지막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하영아, 너 그냥 집에 가… ”
  • “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내가 빠져서야 되겠어? ”
  • 하영은 머리를 넘기며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남우 주연상 받으신 남지호 씨께서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신다는데, 우리 프로그램 이번엔 진짜 대박 나겠다. ”
  • “ … ”
  • 하영은 자신의 감정을 잘 숨겼다. 유정이 만약 그녀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가 아니었다면, 하영이 남지호에게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면, 유정은 하영이 남지호를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그러나 하영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 유정도 더는 할 말이 없어 그냥 대본을 건넸다.
  • “ 그럼 네가 알아서 해. ”
  • “ 내가 진행잔데, 무대 위에서는 가장 빛나야지. ”
  • 하영은 유정을 끌어안으며 그녀의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
  • “ 최성운 이젠 다른 사람 만나서 저녁에 나 부르는 일 없을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내 저녁은 네가 책임져야 해, 알겠지? ”
  • “ 알았어. ”
  • 유정은 하영의 손을 쳐내며 자리를 떴고 하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유정의 모습이 시선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를 지웠고, 손에 들고 있는 대본이 무겁게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하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본을 손에 든 채로 대기실로 향했다.
  • 그 메이크업 아티스트분도 남지호의 팬으로 오늘 게스트에 남지호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하영에게 메이크업을 해주면서 신이 나 얘기했다. 남지호는 얼굴도 천상 연예인이다, 데뷔하자 같이 떴으면서도 스캔들도 없고 연기만 열심히 해서 두 번째로 찍은 작품으로 남우 주연상을 받았으니, 그의 팬이라서 행복하다 같은 말들이었다.
  • 하영은 가끔 미소 지으며 그녀의 말에 리액션을 보였지만 대본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 오후 한 시 십분, 6명의 게스트들이 모두 촬영장에 모였고 적지 않은 스태프들이 남지호를 보기 위해 촬영장에 모여들어 평소보다 더 붐볐다.
  • 하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게스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쯤에 남지호의 훤칠한 자태가 하영의 시선 안에 들어왔다. 하영은 자기도 모르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갑자기 나타난 큰 손이 그녀의 손을 힘을 주어 꽉 마주 잡았다.
  • “ 영아. ”
  • 깔끔하게 정리된 손톱에 큰 손, 남자의 손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하영은 순간 넋을 놓았다. 다시 만나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최성준의 모습과 그의 건조하던 손의 감촉이 떠올랐던 탓이다. 최성운의 그 이상한 취미가 떠올라 하영은 엉덩이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영이’라 부르면서 먼저 손을 내밀어 하영의 손을 다잡은 그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집중되었고 모두 퍽 놀란 모습이었다. 하영은 매니저의 표정이 안 좋은 걸 곁눈질하고는 방금까지 들던 오만가지 생각을 내리누르고는 차분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선 남자와 눈을 맞췄다.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옅은 미소를 띤 하영이 입을 열었다.
  • “ 남지호님께서 그렇게 부르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저도 남지호님 나오시는 영화 진짜 좋아해요. 팬이라고도 할 수 있죠. ”
  • 진짜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만난 듯이 긴장한 목소리였다.
  • “ 남우 주연상 받으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스케줄도 엄청 빡빡하실 텐데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신다니, 직접 만나 뵈니까 더 현실감이 없는 것 같네요. ”
  • 하영의 말은 얼었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녹아내리게 했고 주변인들 역시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 한 게스트가 장난스레 말했다,
  • “ 그럼 남지호 씨한테 잘 보이셔야겠네요. 남지호 씨가 이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게 되면 좀 현실감이 생기지 않겠어요? ”
  • “ 당연하죠. ”
  • 하영의 웃는 얼굴로 그 말에 대꾸하며 자연스레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남지호와 거리를 두었다.
  • “ 남지호 씨 말고도 기영 씨도 스케줄 꽉 찼다면서요? 제가 한참 전에 매니저님이랑 연락해서 겨우 출연하시는데, 벌칙 게임 기대해 주세요.”
  • 기영이라 불린 이는 난처한 듯 쓰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 “ 영이 씨 진짜 안 봐주네요. ”
  • “ 저희 친구잖아요, 그렇죠? ”
  • 하영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남지호를 데리고 대기실로 향하게 하고 자신은 기영이라 불린 이를 데리고 대기실로 향했다.
  • “ 게임들도 전부 팬분들이 준비해 주신 거예요. ”
  • “ 어휴, 팬은 무슨. 그냥 망신당하는 걸 보고 싶은 거겠죠. ”
  • “ … ”
  • 남지호가 시선에서 사라지고서야 하영은 긴장했던 마음을 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