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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연 씨 가문을 망가뜨리고 그녀도 망가뜨리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오는 윤지은의 모습이 보였다.
  • “아가, 이른 아침부터 여기서 놀기만 할 거야? 아침도 안 먹고?”
  • “엄마!”
  • 윤지은의 목소리를 들은 아니는 곧바로 목마를 옆에 제쳐두고는 윤지은의 품에 안겼다.
  • “아빠가 자기 전에 이야기 들려 주신하고 하셨는데 저녁 먹자마자 가셨어요.”
  • “엄마가 이따 출근하면 아빠한테 영상통화로 사과하라고 할게. 됐지?”
  • “네!”
  • 연혜빈은 뻣뻣해진 다리를 움직이며 윤지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이 파리하게 굳었다.
  • “너, 이게…”
  • 남자아이는 세 살은 족히 됨 직한 모습이었다.
  •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윤지은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몸을 돌렸다. 연혜빈을 발견한 윤지은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 “혜빈아, 여, 여긴 어쩐 일이야?”
  • 그 말만 내뱉고서 도로 몸을 돌린 윤지은은 이내 아이를 안고서 황급히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재빨리 뒤쫓아간 연혜빈은 윤지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서 뺨을 후려갈겼다.
  • “나한테 왜 그런 거야? 난 시골에서 상경한 네가 불쌍해서 대학교 학비를 지원하고 신혁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줬어. 이 집도 내 돈으로 마련한 거잖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 송시훈과 윤지은이 붙어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이렇게 큰 아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 그녀는 정말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손잡고 그녀를 기만해 왔었다. 두 사람의 뼈저린 배신에 연혜빈은 가슴을 갈퀴로 긁어대는 것처럼 아팠다.
  • 연혜빈은 핏발이 선 눈으로 윤지은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쉼 없이 뺨을 내리쳤다. 옆에서 고용인들이 사력을 다해 뜯어말렸지만 연혜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그 순간, 돌연 옆에서 나타난 큼직한 손바닥이 연혜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서 옆으로 힘껏 밀쳤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연혜빈은 질식할 것 같은 고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 눈꺼풀을 들어 올린 연혜빈은 지극히 무감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송시훈을 발견했다.
  • “미쳤어?”
  • “이유가 뭐야?”
  •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연혜빈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 “우리 아빠는 양친 모두 돌아가신 너를 집에 데려와서 친아들처럼 키웠어! 연 씨 가문의 모든 것을 너한테 남겨 주신 분들을 대체 왜 죽인 거야!”
  • 그 말에 송시훈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 윤지은을 시킨 일이라 윤지은과 자신 외에는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그런데 연혜빈은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것이지.
  • 송시훈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연혜빈은 송시훈을 올려다보며 잇새로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 “날 사력을 다해 모함하고 다른 남자의 침대로 보낸 저의가 뭐야?”
  • “연 씨 가문을 망가뜨리고 널 망가뜨리고 싶었으니까!”
  • 송시훈이 서슬 퍼런 눈으로 연혜빈을 응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 “신혁은 애초부터 너희 아버지 것이 아니었어. 30여 년 전, 너희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께서 함께 신혁을 설립하셨고 최대 주주는 우리 아버지셨어. 너희 아버지는 신혁에 실권이 없는 자신의 자리에 불만을 품었고 회사가 막 상장되자마자 우리 가문을 피로 물들였지. 난 친구 집에서 외박하고 있었던 덕분에 화를 면할 수 있었고…”
  •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 연혜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 “우리 아빠는 당신을 친아들로 생각했어. 연 씨 가문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내어주며 당신과 날 결혼시켰고…”
  • “그건 너희 아버지의 죄책감 때문이야. 그 사람이 과연 좋은 마음으로 날 받아들인 거라 생각해?”
  •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굽힌 송시훈은 음산한 빛을 내는 눈동자로 연혜빈을 내려다보며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 “내 후견인이 되어 우리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신혁 그룹의 지분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지!”
  • 사실 처음에는 송시훈도 까맣게 모르고 지냈던 사실들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진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전해 들었다.
  • 그 즈음 지나치게 잘해주시는 양부에게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송시훈은 모든 게 양부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호의임을 깨닫고는 남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 창백하게 질려있는 와중에도 고집스러운 연혜빈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던 송시훈은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라 연혜빈의 머리채를 움켜잡고서 대문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 “이번이 마지막이야.”
  • 송시훈이 서슬 퍼런 어조로 경고했다.
  • “또다시 눈에 띄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굳게 닫힌 문을 지켜보며 연혜빈은 절망했다.
  • 십여 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하늘이 그녀에게 보낸 천사인 줄 알았는데 복수심에 불탄 악마일 줄은 몰랐다.
  • 연 씨 가문을 망가뜨리고 그녀도 망가뜨린 장본인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 연혜빈은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안혜빈이 길을 건너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디려던 찰나, 돌연 튀어나온 차량 한 대가 플래시를 켠 채 속력을 높이며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 눈부신 플래시에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린 연혜빈은 이내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미동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 이미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 몸이었다.
  •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