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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선물

  • 잠에서 깨어난 연혜빈은 머리와 목, 팔뚝에 감겨진 거즈를 발견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엄습하는 고통에 연혜빈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 깨어나 보니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 연혜빈에게 식사를 배달해 주던 경찰관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 “당신은 신혁 그룹 대표를 살인미수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니 얌전히 소환장을 기다리세요!”
  • 연혜빈은 송시훈을 탈출하게 내버려 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원망했다!
  • 언제까지고 유치장에 갇힌 채 기다릴 수는 없어 연혜빈은 지체 없이 경찰관을 불렀다.
  • “변호사한테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세요. ”
  • 하지만 경찰관은 차갑게 코웃음치기만 할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 깊은 밤, 낮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경찰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등 뒤에 서 있던 여인 두 명의 수갑을 풀어주며 철창 안으로 밀어 넣었다.
  •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여인들의 서슬 퍼런 기세에 연혜빈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 하지만 자정으로 넘어가자 연혜빈은 더 이상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깊이 잠들어 버렸다.
  • 그 순간, 다친 팔을 누군가 세게 꼬집는 듯한 느낌에 스르르 눈을 뜬 연혜빈은 이내 자신의 입이 틀어막힌 상태임을 알아챘다. 갖은 애를 써도 뭉개진 신음 소리만 간신히 내뱉을 뿐이었다.
  • “우리를 탓하지 마. 우리도 돈을 받고 일하는 거야!”
  • 말을 하면서도 연혜빈의 뺨을 후려갈기던 여인이 독살스럽게 웃었다.
  • “그분이 숨만 붙어있으면 되니까 실컷 괴롭히라고 했어!”
  • 송시훈의 짓이다!
  • 반사적으로 송시훈을 떠올린 연혜빈은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 그러자 여인이 무릎을 세우고서 연혜빈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온몸을 엄습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연혜빈은 몸을 웅크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연혜빈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뒤통수에 고통이 전해지더니 다른 여인이 연혜빈의 머리채를 부여잡고서 그녀의 뺨을 내리치며 피가 배어 나오고 있는 상처를 손가락으로 마구 꼬집어댔다.
  • “윽!”
  • 연혜빈은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그만 정신을 잃었다.
  • 유치장에 두 여인이 들어온 뒤로 몇 시간 간격으로 순찰에 나섰던 경찰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찰관도 매번 지정된 시각에 식사만 놓고 갈 뿐 바닥에 쓰러진 연혜빈에게는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 며칠 새 연혜빈은 넝마 조각처럼 시들시들해졌다.
  • 몸에 감은 거즈는 핏불에 젖은 채 피부에 바짝 말라붙어 있었고 칫솔로 그녀의 목을 찔러대는 무자비한 폭행에 침을 삼킬 때마다 혈향이 입가를 맴돌더니 끝내 말을 내뱉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
  • 그날도 낮 동안 두 여인에게 시달린 연혜빈은 시야마저 흐릿해져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 그 순간, 어렴풋이 들려오는 하이힐 소리에 연혜빈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 “누가 이 지경이 되도록 괴롭힌 거야. 우리 혜빈 아가씨 꼴이 말이 아니네.”
  • 몸을 웅크리고 앉은 여인은 손을 내밀고서 연혜빈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더니 이내 세게 꼬집었다.
  • “윽…”
  • 얼굴 위로 전해지는 고통에 연혜빈은 아픈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
  • 숨이 곧 끊어질 듯한 연혜빈의 모습에 윤지은은 마음이 더없이 후련해졌다.
  • “너한테 왜 이러냐고 물었잖아. 이유가 뭐냐면…”
  • 철창을 사이에 두고서 연혜빈에게 바짝 다가간 윤지은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그냥 네가 미웠어. 부모 잘 만난 덕분에 남부러울 게 없이 잘 사는 네가 너무 미웠고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네가 너무 원망스러웠어. 이제 너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사랑한 남자도 이제 내 것이고 우리 사이에는 아이도 있지. 더없이 행복한 가족… 악!”
  • 연혜빈은 윤지은이 잠시 한눈을 판 틈을 타 윤지은의 손가락을 힘껏 깨물었다.
  • 옆에 있던 두 여인이 황급히 달려들어 연혜빈을 잡아당기고 뺨을 때렸다. 연혜빈이 서서히 턱에 힘을 빼는 기미가 보이자 윤지은은 얼른 손가락을 빼냈다. 연혜빈에게 물린 자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 “이 미친년이!”
  • 윤지은은 욕설을 퍼부어대며 지혈을 위해 가방에서 휴재를 꺼내들었다.
  • 손가락에서 더 이상 피가 배어 나오지 않게 되자 또다시 철창으로 다가선 윤지은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 “오늘 우리 훈이 생일인데, 너도 축하해 주고 싶을 것 같아서 훈이 대신 내가 선물을 가져왔어.”
  •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든 윤지은은 이내 그 사진을 연혜빈에게 잘 보이도록 높이 들어 올렸다.
  • 사진 속에는 연 여사님이 한 손으로 심장 부근을 움켜쥔 채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초점이 풀린 동공과 병상 위에 축 늘어진 듯한 연 여사님의 모습에 연혜빈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 연혜빈은 서슬 퍼런 시선으로 사진을 노려보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 “그래, 네 생각이 맞아. 너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
  • 그렇게 말하며 윤지은은 연혜빈에게 더 잘 보이도록 철창 안으로 사진을 욱여넣었다.
  • “네가 살인 미수에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심장마비로 놀라 죽었어. 나 정말 착하지 않아? 이렇게 너희 할머니 죽기 직전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왔잖아. 너한테 보여주려고.”
  • “거짓말…”
  • 연혜빈이 말을 내뱉을 때마다 버석하게 메마른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 그날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할머니는 건강이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이렇게 한순간에 잘못되실 리가 없었다!
  • 현실을 외면하려는 연혜빈의 모습에 윤지은은 비릿하게 코웃음을 쳤다.
  • “난 단 한 번도 너한테 농담한 적이 없어!”
  • 아니야! 그럴 리 없어!
  • 그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성준의 전화번호에 연혜빈의 마음속에 일말의 희망이 불타올랐다. 안간힘을 쓰며 두 여인의 속박에서 벗어난 연혜빈은 인체에서 가장 취약한 부위가 목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그중 한 여인을 포박하고 목덜미를 힘껏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