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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임자 있는 여자가 가장 흥미로운 법

  • 대체 왜!
  • 그녀의 부모님은 송시훈을 친아들처럼 키운 거로도 모자라 신혁 그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재산을 송시훈에게 넘겨주었다.
  • 그런 분들한테 어쩜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단 말인가!
  • 그 순간, 송시훈이 서늘한 얼굴로 윤지은의 턱을 움켜쥐고서 냉랭하게 물었다.
  • “이 사장이 갑자기 방을 옮긴 이유와 그날 아침 2588호 룸에서 나간 남자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 “아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 턱이 으스러질 듯한 억센 악력에 윤지은은 애써 신음을 삼키며 송시훈의 비위를 맞추었다.
  • “그 남자가 누구든 상관없잖아. 이미 이혼도 한 마당에 연혜빈에게는 곧 죽어가는 할머니 말고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고 몸도 더러워졌어. 그런데도 만족할 수 없어?”
  • 그 말에 문득 빗속에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던 초라한 여자의 모습을 떠올린 송시훈은 괜히 기분이 더러워졌다.
  • “그럴 리가!”
  • 서늘하게 한 마디 내뱉은 송시훈은 이내 윤지은을 침대로 밀어붙이고는 그 위로 몸을 드리웠다.
  • 연 씨 가문에서 먼저 자초한 일이었다.
  • 그는 단지 애초에 그의 것이었던 것들을 되찾았을 뿐이었다!
  • “훈아, 서두르지 마…”
  • 윤지은은 송시훈의 셔츠 단추를 능숙하게 풀어헤치며 간간이 신음을 흘렸다.
  • 이내 방 안에서 낯 뜨거운 신음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 침대 위에 한 몸처럼 뒤엉켜있는 두 사람을 보며 연혜빈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얼음 창고에 갇힌 것처럼 온몸이 차게 식었다.
  • 모든 게 송시훈과 윤지은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호텔에 들이닥친 기자들도 그녀의 추잡한 행보를 인터넷에 퍼뜨리기 위해 송시훈이 미리 불러들인 게 틀림없었다.
  • 이혼할 때 그녀를 빈털터리로 내쫓고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도록!
  • “왜…”
  • 연혜빈은 처량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 “당신이 그 이유를 알려주면 안 돼?”
  • 송시훈은 그녀의 반쪽이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 그런데 그런 송시훈이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고 궁지에 내몰았다!
  • 남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몇 시간 동안 비를 맞고 화면으로 보이는 장면들에 잇달아 충격을 받은 연혜빈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그 모습에 반우석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반우석은 이내 연혜빈을 들쳐 안고 방을 빠져나갔다.
  • “단지운한테 연락해.”
  • “네, 알겠습니다.”
  • 반우석은 연혜빈을 데리고 시중심에 위치한 최고급 별장 구역인 에반으로 향했다.
  • 현관으로 들어서는 반우석의 모습에 소파에 앉아있던, 흰 가운 차림의 젊은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 “우석 형.”
  • “그래.”
  • 연혜빈을 안고서 2 층으로 향한 반우석은 이내 남자에게 치료를 부탁하고서 1 층에서 담배를 피우며 진료가 마치기를 기다렸다.
  • 그로부터 30 분이 흐른 뒤, 단지운이 2 층에서 내려왔다.
  • “우석 형, 능력 좋으시네요. 만 분의 일의 가능성도 찾아내시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저 여자 요즘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달군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이죠?”
  • “그 상대가 나야.”
  • 그렇게 말하며 단지운을 힐끗 바라본 반우석은 이내 담담히 말을 덧붙였다.
  • “문제 있어?”
  • 그러자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한 단지운은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 “역시 우석 형! 예로부터 임자 있는 여자가 가장 흥미롭다고 했잖아요! 진정제를 투여했으니까 푹 잘 거예요. 몸이 괜찮아지면 언제 한 번 검진받으러 병원에 찾아오라고 전해주세요.”
  •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한 단지운은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별장을 빠져나갔다.
  • 단지운을 배웅하고서 거실로 돌아온 운전기사는 울려대고 있는 휴대전화를 힐긋 바라보았다.
  • “대표님, 본가에서 연락 왔습니다.”
  • 운전기사가 남자의 옆으로 다가서며 보고를 이었다.
  • “대표님께서 귀국하셨는지 여쭙고 계십니다.”
  • 그 말에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반우석은 냉담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 “내가 운전해서 갈게. 사람들을 더 고용해서 그 여자를 보살피도록 해.”
  • 온실 속의 꽃이라 그런지 여자는 역시나 충격에 약했다.
  • 잠에서 깨어난 연혜빈은 유럽풍으로 되어있는 낯선 방과 입고 있는 낯선 잠옷을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러다 이내 호텔에서의 소동과 빗속에서 신혁 그룹 회사 입구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던 일, 그리고 티브이 화면으로 보았던 송시훈과 윤지은의 애정 행각까지… 지난 며칠 동안 겪었던 모든 일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연혜빈은 이 모든 게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 방을 나서자마자 머리 없는 파리처럼 여기저기 서성이던 연혜빈은 간신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내고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성급한 마음에 그만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어떨어졌다.
  • 마침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남자는 기민하게 팔을 뻗어 넘어지려는 연혜빈의 몸을 안정적으로 받아안았다.
  • “깨어나자마자 또 어디로 도망가려고?”
  • 코끝을 간지럽히는 차갑고 은은한 향기에 연혜빈의 마음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연혜빈은 그제야 그날 밤 자신을 안은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었다. 또한 진실을 파헤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했다.
  • “고마워.”
  • 몸을 바로 세운 연혜빈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차를 좀 빌릴 수 있을까?”
  • 이 모든 것을 계획하여 그녀를 모함한 이유가 무엇이며 부친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재산마저 전부 빼앗은 이유 또한 무엇인지, 송시훈한테서 해명을 듣고 싶었다.
  • 연혜빈의 얘기에 반우석의 등 뒤에 서 있던 운전기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연혜빈 씨,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 “성준아, 차 키 줘.”
  • 그 순간, 반우석이 운전기사의 말허리를 자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 “이미 함정에 빠져서 모든 것을 잃었으니 한 번 더 당한다고 달라질 거는 없어.”
  • 남자의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에 연혜빈은 괜히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서 운전기사의 손에서 차 키를 건네받고는 황급히 별장을 나섰다.
  • 신혁 그룹은 이미 송시훈의 손에 넘어간 뒤였고 또다시 찾아간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연혜빈은 주저 없이 윤지은의 집으로 향했다.
  • 목적지에 도착하여 차를 멈춰 세운 연혜빈은 곧장 대문을 밀어젖혔다.
  • 정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디려던 연혜빈은 정원에서 목마에 걸터앉은 채 놀고 있는 남자아이를 발견하고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