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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안고, 너에게 취하고

널 안고, 너에게 취하고

우울한밤

Last update: 2024-01-17

제1화 어젯밤 그 남자의 정체

  • 「연혜빈 씨, 당신 남편이 당신이 아닌 다른 여인과 란휴르 호텔 2588호 룸에 묵고 있습니다.」
  • 연혜빈은 숨을 죽이고 엘리베이터 전광판을 응시했다.
  • 뮌헨에서 한 달 동안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뜬금없이 받은 문자 한 통에 집에 들를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란휴르 호텔로 향했다.
  • 처음에는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인 줄로 치부하고 무시했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닿지 않는 연락과 란휴르 호텔에 표시되어 있는 남편의 핸드폰 위치가 확인되자 연혜빈은 크게 당황했다.
  • 2588호 룸 앞에 도착한 연혜빈은 반쯤 열려 있는 문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 순간, 허리를 밀치는 거센 힘에 연혜빈은 비틀거리며 칠흑같이 어두운 방으로 들어섰다. 겨우 몸을 가누자마자 무섭게 다가오는 뜨거운 남자의 몸에 연혜빈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다가 문에 기대섰다.
  • “여보?”
  • 연혜빈이 탐색하듯 목소리를 냈다.
  • 하지만 남자는 대답 대신 어둠 속에서 거칠게 연혜빈의 입술을 덮쳤다. 키스는 난폭하고 뜨거웠다.
  • 반쯤 열린 방 문과 들어오자마자 퍼붓는 키스 세례에 연혜빈은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이내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은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 남편이 꾸민 깜짝 이벤트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모든 경계를 풀고서 남자를 끌어안은 채 적극적으로 남자의 입맞춤에 응했다.
  • 연혜빈은 잠결에 스르르 눈을 떴다. 통 창에서 비쳐 들어오는 환한 햇빛이 키스 마크로 가득한 가녀린 팔 위에서 부서졌다. 의식이 든 순간 낯선 통각이 밀려들어왔지만 마음은 달콤하기만 했다.
  • 송시훈과는 결혼한 지 1 년이 넘었지만 송시훈의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같이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아 여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 그런데 어젯밤, 두 사람은 마침내 명실상부한 부부가 된 것이다.
  • “여보…”
  • 깜짝 이벤트도 좋지만 놀란 마음이 더 컸던 연혜빈은 남편한테 한 마디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 허전한 옆자리를 발견하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밤새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 언제 나갔지.
  •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은 옆자리에는 남자 대신 T 브랜드 ‘순수한 사랑’ 시리즈의 컬렉션 펜던트가 놓여 있었다.
  •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나 보네.
  • 연혜빈은 달콤하게 웃으며 펜던트를 집어 목에 걸었다. 그 순간, 굳게 닫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대포카메라를 멘 기자들이 비집고 들어오더니 연혜빈이 앉아있는 침대 주변을 물샐틈없을 정도로 겹겹이 에워쌌다.
  • “찰칵찰칵!”
  • 쉴 틈 없이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들이 이불 밖으로 드러난 연혜빈의 헐벗은 몸을 거침없이 훑고 지나갔다.
  • “연혜빈 씨,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공공연히 애인을 데리고 호텔을 찾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송시훈 씨와는 사이가 틀어졌나요?”
  • “송시훈 씨와는 이미 이혼한 사이입니까?”
  • “연혜빈 씨, 저희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 “…”
  • 느닷없이 들이닥친 기자들의 악의에 찬 추궁에 황망한 얼굴로 허둥지둥 뒷걸음질을 치던 연혜빈은 등에 닿는 차가운 침대 헤드의 감촉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 “그,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전 어젯밤에 저희 남편이랑 있었어요!”
  • 이불을 들어 자신의 몸을 꽁꽁 감싼 연혜빈은 문을 가리키며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 “다들 나가…”
  • “연혜빈!”
  •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노기등등한 목소리에 연혜빈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연혜빈은 온화하고 우아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둡게 가라앉은 남편의 얼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 “여보, 마침 잘 왔어.”
  • 그녀를 버려두고 먼저 간 이유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원인도 물을 겨를이 없었다. 연혜빈은 송시훈의 팔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 “여보가 어젯밤에 나한테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잖아. 여기 있는 기자들이 글쎄 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 연혜빈이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그녀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 거센 남자의 힘에 꼼짝없이 뺨을 맞은 연혜빈은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바래졌다.
  • 연혜빈이 넋을 잃은 얼굴로 침대 위에 꿈쩍도 하고 있지 않자 송시훈이 품 안에서 사진 뭉치를 꺼내들더니 그녀의 얼굴 위로 내던졌다. 날카로운 사진의 가장자리가 연혜빈의 뺨을 긁으며 지나간 자리에서 금세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 “내일 아침 9시, 구청에서 만나!”
  • 송시훈은 매몰차게 한 마디 내뱉고는 몸을 돌렸다. 마치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멸시가 깃들었다.
  • 연혜빈은 따끔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바로 눈앞에 떨어진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에는 2588호 룸을 나서는 남자의 옆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남자는 송시훈이 아니었다.
  • 그리고 사진에 찍힌 시간 또한, 오늘 아침 6 시 즈음이었다!
  • 사진을 움켜쥐고서 찬찬히 훑어보던 연혜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망한 얼굴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어젯밤의 그 남자는 송시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