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혜빈 씨, 당신 남편이 당신이 아닌 다른 여인과 란휴르 호텔 2588호 룸에 묵고 있습니다.」
연혜빈은 숨을 죽이고 엘리베이터 전광판을 응시했다.
뮌헨에서 한 달 동안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뜬금없이 받은 문자 한 통에 집에 들를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란휴르 호텔로 향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인 줄로 치부하고 무시했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닿지 않는 연락과 란휴르 호텔에 표시되어 있는 남편의 핸드폰 위치가 확인되자 연혜빈은 크게 당황했다.
2588호 룸 앞에 도착한 연혜빈은 반쯤 열려 있는 문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허리를 밀치는 거센 힘에 연혜빈은 비틀거리며 칠흑같이 어두운 방으로 들어섰다. 겨우 몸을 가누자마자 무섭게 다가오는 뜨거운 남자의 몸에 연혜빈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다가 문에 기대섰다.
“여보?”
연혜빈이 탐색하듯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 대신 어둠 속에서 거칠게 연혜빈의 입술을 덮쳤다. 키스는 난폭하고 뜨거웠다.
반쯤 열린 방 문과 들어오자마자 퍼붓는 키스 세례에 연혜빈은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이내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은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 남편이 꾸민 깜짝 이벤트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모든 경계를 풀고서 남자를 끌어안은 채 적극적으로 남자의 입맞춤에 응했다.
연혜빈은 잠결에 스르르 눈을 떴다. 통 창에서 비쳐 들어오는 환한 햇빛이 키스 마크로 가득한 가녀린 팔 위에서 부서졌다. 의식이 든 순간 낯선 통각이 밀려들어왔지만 마음은 달콤하기만 했다.
송시훈과는 결혼한 지 1 년이 넘었지만 송시훈의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같이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아 여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어젯밤, 두 사람은 마침내 명실상부한 부부가 된 것이다.
“여보…”
깜짝 이벤트도 좋지만 놀란 마음이 더 컸던 연혜빈은 남편한테 한 마디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 허전한 옆자리를 발견하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밤새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언제 나갔지.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은 옆자리에는 남자 대신 T 브랜드 ‘순수한 사랑’ 시리즈의 컬렉션 펜던트가 놓여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나 보네.
연혜빈은 달콤하게 웃으며 펜던트를 집어 목에 걸었다. 그 순간, 굳게 닫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대포카메라를 멘 기자들이 비집고 들어오더니 연혜빈이 앉아있는 침대 주변을 물샐틈없을 정도로 겹겹이 에워쌌다.
“찰칵찰칵!”
쉴 틈 없이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들이 이불 밖으로 드러난 연혜빈의 헐벗은 몸을 거침없이 훑고 지나갔다.
“연혜빈 씨,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공공연히 애인을 데리고 호텔을 찾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송시훈 씨와는 사이가 틀어졌나요?”
“송시훈 씨와는 이미 이혼한 사이입니까?”
“연혜빈 씨, 저희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
느닷없이 들이닥친 기자들의 악의에 찬 추궁에 황망한 얼굴로 허둥지둥 뒷걸음질을 치던 연혜빈은 등에 닿는 차가운 침대 헤드의 감촉에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그,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전 어젯밤에 저희 남편이랑 있었어요!”
이불을 들어 자신의 몸을 꽁꽁 감싼 연혜빈은 문을 가리키며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다들 나가…”
“연혜빈!”
그 순간, 울려 퍼지는 노기등등한 목소리에 연혜빈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연혜빈은 온화하고 우아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둡게 가라앉은 남편의 얼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여보, 마침 잘 왔어.”
그녀를 버려두고 먼저 간 이유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원인도 물을 겨를이 없었다. 연혜빈은 송시훈의 팔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여보가 어젯밤에 나한테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잖아. 여기 있는 기자들이 글쎄 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연혜빈이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그녀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거센 남자의 힘에 꼼짝없이 뺨을 맞은 연혜빈은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바래졌다.
연혜빈이 넋을 잃은 얼굴로 침대 위에 꿈쩍도 하고 있지 않자 송시훈이 품 안에서 사진 뭉치를 꺼내들더니 그녀의 얼굴 위로 내던졌다. 날카로운 사진의 가장자리가 연혜빈의 뺨을 긁으며 지나간 자리에서 금세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내일 아침 9시, 구청에서 만나!”
송시훈은 매몰차게 한 마디 내뱉고는 몸을 돌렸다. 마치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멸시가 깃들었다.
연혜빈은 따끔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바로 눈앞에 떨어진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에는 2588호 룸을 나서는 남자의 옆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남자는 송시훈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진에 찍힌 시간 또한, 오늘 아침 6 시 즈음이었다!
사진을 움켜쥐고서 찬찬히 훑어보던 연혜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망한 얼굴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