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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심술로 밝혀진 재벌가 비밀

독심술로 밝혀진 재벌가 비밀

손아파

Last update: 2025-03-12

제1화 이혼

  • “사인해. 이혼하면 당신한테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거야. 그리고, 400억을 더 줄 거야. 또한 기획사도 당신한테 증여할게. 그리고 시내에 있는…”
  • 나지막하고 듣기 좋으나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소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참기 위해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 크고 예쁜 살구알같은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하나에는 400억이란 금액이 적혀있었고, 다른 하나에도 400억이 적혀있었다.
  • 소희는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이혼 합의서에 적혀있는 0을 세고 있었다.
  • 업무용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키 큰 남자는 청초하고 고귀한 눈매를 지녔는데 칠흑같이 까만 눈동자는 차가운 톤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소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그의 마음은 점점 차갑게 굳어져갔다.
  •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진현은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었다.
  • 소희라는 이름의 여자는 불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소희의 부모님은 진씨 가문과 대대로 친분을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소희가 채 성인이 되기 전, 그녀의 부모님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임종의 부탁으로 인해 진씨 가문은 소희를 진씨 가문의 사람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녀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을 바라지 않은 나머지 진현과 결혼을 시켰었다.
  • 그렇게, 결혼 후에 두 사람은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었다. 소희는 계속 여러 번 그를 미행했고, 공연히 사람을 괴롭히며 그의 삶을 망가트렸다.
  • 뿐만 아니라, 소희는 회사 기밀을 훔쳐 라이벌 회사에 전달하여 진현의 회사가 큰 프로젝트를 잃게 만들었었다. 때문에 회사 전체에서 원성이 자자했다.
  • 이사회 때문이라도 진현은 꼭 그녀와 이혼해야 했다.
  • “난 이미 당신한테 할 만큼 다 했어. 그러니 당신도 여기서 그만둬.”
  • 소희의 돌아가신 부모님 때문이 아니었다면, 진현은 그녀에게 살길을 남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 그는 원래 소희가 고집을 부리며 이혼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소희는 손을 덜덜 떨면서 펜을 집어들었다.
  • 이 모습에 진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보아하니 자기도 이번 일은 좀 지나쳤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군. 순순히 사인하는 걸 보니.’
  • 드디어 이혼할 수 있었다
  • [아싸, 드디어 이혼할 수 있게 됐어.]
  • 진현은 살짝 의아해했다.
  • ‘이건 소희 목소리인데?’
  • 진현은 여태껏 소희의 환호성을 거의 들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한동안 소희의 목소리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어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희는 한창 굳은 표정으로 사인을 하려고 했었다.
  • ‘저 표정은 화를 내는 거야 아니면… 기뻐하는 거야? 잠깐, 이제 보니 소희는 입을 열고 말을 꺼내지 않았잖아?’
  • [대박. 400억, 400억이라니? 그러면 얼마나 많은 집을 살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잘생긴 남자들을 만날 수 있는 거야? 역시 전남편은 통이 크다니까?]
  • 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 그는 소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소희의 목소리를 들었다.
  • ‘어떻게 된 거지?’
  • 진현은 항상 신중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옆에 있던 김 비서를 쓱 쳐다봤다.
  • 그때만 해도 김 비서는 소희가 이혼협의서에 사인하고 있는 모습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 잠시 후, 진현의 시선을 의식한 김 비서가 그에게 ‘동정'어린 눈빛을 보냈다. 마치 일이 이렇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 김 비서의 그런 눈빛에도 진현은 그를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중요한 점은 김 비서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사모님. 사모님께서는 이번에 정말 대표님께 큰 폐를 끼치셨습니다. 앞으로 이혼하신 후에 사모님의 새 삶을 시작하길 바랍니다. 다시는… 읍.”
  • 김 비서는 자신의 입꼬리를 애써 누르면서 마음속으로는 카운트다운을 하며 소희가 소란을 피우기를 바라고 있었다.
  • 아무래도 소희는 조금만 자극해도 쉽게 폭발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정말 소란을 피운다면 진현이 그런 후한 보상도 주지 않고 그녀를 빈털터리로 나가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김 비서는 소희는 진현처럼 좋은 남자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희는 그런 그녀를 그저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마치 한시라도 빨리 이혼하기를 기다린 것처럼 재빨리 사인을 했다.
  • [정말 화가 나. 비록 억울하게 누명을 썼지만, 아무쪼록 순조롭게 이혼할 수 있는데다 이렇게 후한 보상까지 받았으니 이런 재앙을 일으킨 원흉과는 상대하지 말아야겠어.]
  • 그 말에 이혼협의서를 건네받던 진현은 잠시 동작을 멈칫했다. 순간, 한차례의 폭풍이 그의 눈 밑을 휩쓸었다.
  • ‘뭐? 누명? 원흉?’
  • 진현은 갑작스레 귀에 들린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새로운 내용을 듣게 되었다.
  • ‘소희가 내가 자기한테 차갑게 대하는 것에 불만을 품어서 내 관심을 받으려고 일부러 말썽을 피우다가 이렇게 큰 화를 자초한 게 아니었어?’
  • 모두가 소희가 그 시간대에 대표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다른 회사의 부사장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사진 찍은 사람도 있었다.
  • 가히 증거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 비록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고 미친 듯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중에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었다.
  • “저를 그렇게 믿지 않을 거면 그저 저라고 생각하세요.”
  • 당시 진현은 소희가 일이 들통이 나 방구 뀐 놈이 성내는 식으로 화를 낸 건줄 알았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당시 소희는 그저 자포자기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대표님, 이제 사인하셔야 합니다.”
  • 옆에 있던 김 비서는 진현이 오랫동안 펜을 잡지 않자 순식간에 초조해졌다. 그녀의 평소 온화하고 담담했던 말투는 바로 바뀌어버렸다.
  • 그 말에 진현은 김 비서가 선을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조금 전 ‘원흉’이라는 말이 그의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