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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첫사랑

  • 김 비서는 자신이 사무실에 드나들었다는 것이 밝혀지더라도 진현의 성격에 치밀하게 조사할 지라도 이 정도까지 섬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CCTV 기록을 삭제하지 않은 것이었다.
  • 그녀는 진현이 자신과 관련된 일을 처리할 때에도 이렇게 냉혹하고 무자비할 줄은 정말 몰랐다.
  • 김 비서는 바닥에 초라하게 주저앉았다. 이런 생각은 그녀의 멘탈을 완전히 무너지게 했다.
  • 더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강진우였다.
  • “이게 진짜 김 비서가 한 짓이에요? 왜… 왜 그랬어요?”
  • 강진우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정이 격해진 그는 손을 들어 김 비서의 팔을 잡으며 미친 듯이 되물었다.
  • 한편, 강 이사는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너무 창피한 나머지 강진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 “무엇 때문이긴? 사모님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대표 와이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런 거지.”
  • 그 말에 강진우는 마치 청천벽력을 맞은 듯했다.
  • “김 비서님이 대표님을 좋아한다고요? 아니요. 설마 그럴 리가요?”
  • 강 이사는 이마를 짚었다. 강진우는 어찌나 멍청한 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을 그는 뜻밖에도 알아채지 못했었다.
  • 소희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 [강진우 씨는 정말 눈이 멀었군. 김 비서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어떻게 김 비서가 진현 씨를 좋아하는지 조차 모를 수 있는 거지?]
  • 소희는 속으로 한바탕 하소연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진현의 담담한 표정에 의아한 빛이 스쳐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 [설마 김 비서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줄곧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하여튼 정말 눈치가 없다니까?]
  • 진현은 소희의 목소리에 귓볼이 뜨거워졌다. 수려한 얼굴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졌다.
  • ‘뭐지? 그럼 이 일은 라이벌 회사가 김 비서를 매수해 영업비밀을 훔친 다음 소희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아니란 말이야? 김 비서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그녀는…’
  •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전 대표님한테 전혀 사심이 없어요.”
  • 그때, 김 비서는 갑자기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 그녀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진현을 바라보았다.
  • “제가 한 짓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하는 건 바로 여나경을 도와주기 위해서예요.”
  • 그 말에 현장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 여나경, 그녀는…
  • 진현의 안색도 굳어졌다.
  • “뭐라고?”
  • 김 비서는 서둘러 해명하기 시작했다.
  • “나경이가 곧 귀국해요.”
  • 그 말에 진현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소희를 훑어보았다.
  • [여나경… 나도 알고 있어. 진현 씨의 첫사랑이자 몇 년 전에 그를 무자비하게 버린 여자. 한때 선남선녀라면서 명문가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플로 불리웠었지.]
  • ‘… 아는 게 참 많군.’
  • [하지만, 그게 김 비서랑 무슨 상관이지?]
  • 진현도 정색을 하고 김 비서를 쳐다봤다.
  • ‘그래, 이게 김 비서가 저지른 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
  • 김 비서는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 “나경이와 저는 가장 친한 친구예요. 그때 나경이가 대표님을 떠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전 두 분이 오해로 서로의 인연을 놓치길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전 대표님께서 함부로 이혼하지 않을 걸 알고 차라리 제가 악인이 되어 대표님과 나경이를 도울 기회를 찾아본 거예요.”
  • 말을 마치고, 김 비서는 마치 자신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고개를 떨궜다.
  • 김 비서는 확실히 여나경의 절친한 친구였다. 이런 관계로 인해 두 사람이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 비서가 처음 진한 그룹에 채용되었을 때, 그녀를 비서 자리에 앉혀 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더욱 그녀에게 무한한 신뢰를 줄 수 없었을 것이고.
  • 풋풋한 대학생 시절에 김 비서는 두 사람의 연애를 전부 목격했었다. 게다가 수시로 두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랐었다. 그래서 그동안 김 비서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 김 비서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몇 명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누구도 두 눈이 멀지 않았으니 김 비서의 눈과 마음속에 진현만 있다는 사실을 모를리가 없었다.
  • 다만 김 비서가 진현의 첫사랑의 절친이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이전에 김 비서에게 조금도 귀띔을 들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김 비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 ‘잠깐만. 여기 또다른 가십거리가 있잖아? 대표님의 첫사랑이 다시 돌아온다고? 애당초 헤어졌던 게 다 오해였다고?’
  • 많은 사람들은 눈빛으로 진현을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가 추궁할 줄 알았었다. 어쨌든 소희도 지금 이 자리에 있으니까 말이다.
  • 사람들 모두가 흥분해,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어쩔 수 없긴, 오해는 무슨 오해? 도대체 무슨 일인지 한 번 봐야겠어…]
  • 그러자 진현은 다급히 말을 돌렸다. 그는 소희에게 염탐당하고 싶지 않았다.
  •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우리 회사에 이렇게 큰 손해를 입히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데 연루되었다면 어떤 이유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어.”
  • 진현은 냉혹한 발언을 했다.
  • [맞아, 맞아. 더군다나 저 이유는 다 지어낸 거야.]
  • 소희의 주의력이 갑자기 이동했다. 이건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질병으로,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워한다.
  •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댄 건지 한 번 봐야겠어.]
  • 진현은 원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지 방법을 말하려다가 소희의 말을 듣고 좀 궁금해했다.
  • [대박. 그동안 은연중에 자신과 진현 씨의 사이가 평범하지 않다고 암시하고 나를 소란을 피우도록 유도한 것은 다 나를 쫓아내고 진현을 차지하려고 그런 거였구먼. 그러면서 여나경이 귀국하는 건 바라지 않고 있어. 왜냐면 자신은 여나경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여나경이 귀국하기 전에 시간을 벌어 자기가 진현의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