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2화 사건의 진실

  • 김 비서는 진현의 대학 동창으로서 꽤 오랜 시간동안 알고 지냈었다. 그래서 김 비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고 그녀를 매우 신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어떻게 회사를 배신하고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 그때, 김 비서가 다급하게 펜을 내밀었다.
  • 진현은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책임감이 아주 강해서 가족을 매우 아끼고 마음도 여린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희라는 바보 같은 여자에게 오랫동안 붙잡혀 살지 않았을 것이다.
  • 전에도 여러 번 이혼할 뻔한 적이 있긴 했지만 소희가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매번 흐지부지됐었다. 이번에야 말로 소희가 어렵게 이혼협의서에 사인하게 되었는데 진현 쪽에 오히려 문제가 생기게 할 수는 없었다.
  • [쯧쯧. 조급한가 보군. 아마 김 비서도 공든 탑이 무너질까 봐 두려운 거겠지.]
  • 그 말에 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 그때, 진현은 기다란 손으로 검은색 사인펜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와 함께 있던 소희와 김 비서는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 진현은 차갑고 어두운 눈빛으로 가만히 앉아 상황을 지켜보던 소희를 빤히 쳐다봤다.
  •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이 일, 정말 네가 한 짓이 맞아?”
  • 진현은 항상 신중한 사람이었다. 만약 자신이 들은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억울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을뿐만 아니라 회사에 헤아릴 수 없는 숨겨진 위험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니 반드시 진실을 검증해야 했다.
  • 순간, 김 비서는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소희는 그녀의 결백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소희는 진현의 압박감이 넘치는 시선에 조금 불안해했다.
  • [갑자기 무슨 말이지? 왜 이 와중에 저런 걸 묻는 거야? 설마 나한테 400억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가?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할 말 있으면 사인을 끝내고 할 것이지.]
  • 그 말에 진현은 마음속으로 멈칫했다. 그는 소희를 빤히 쳐다봤다. 마치 꼭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 그런 그의 모습에 소희는 두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울분을 토해냈다.
  • [당연히 내가 한 짓이 아니지. 글쎄 다 눈이 멀었다니까? 분명히 내가 사무실에서 나온 다음에 김 비서도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김 비서도 사무실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아예 무시하고 있어. 어떤 수상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는지 물어도 보지 않고, 심지어 CCTV도 조사하지 않았어. 그냥 목격자라는 사람이 나를 지목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런 걸 두고 잠재의식의 사각지대라고 하는 거야.]
  • 그 말에 진현은 깜짝 놀랐다.
  • ‘사무실에 드나들었던 게 소희뿐만이 아니라고?’
  • 당시엔 목격자와 물증이 전부 있었던 탓에 바로 소희를 범인이라고 확정 지었었다. 확실히 CCTV를 조사하여 재검증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현도 무의식중에 소희가 이런 짓을 할 것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만…
  • 진현이 막 말을 꺼내려던 순간, 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까 어서 사인하세요.”
  • 진현의 얼굴은 점점 차가워졌다.
  • 소희는 왜 진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걸까? 설마 말해도 진현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까 봐 두려운 걸까?
  • 이런 생각에 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그러자 옆에 있던 김 비서가 깜짝 놀란듯한 표정으로 진현을 쳐다봤다. 진현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눈으로 쓸어내렸다.
  • 마치 자신을 심판하는 듯한 시선에 김 비서는 저도 모르게 기분이 섬뜩해졌다.
  • 김 비서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진현은 긴 다리를 내딛고 밖으로 나갔다.
  • “따라와.”
  • 소희의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 “뭐… 뭐하는 거예요?”
  •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소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 진현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밖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던 비서들을 향해 소리쳤다.
  • “11일 밤 사무실 CCTV를 가져오도록 해. 당신들 사모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니 그분께 그날 밤 도대체 누가 드나들었는지 확인시켜 줄 거야.”
  • 바로 뒤따라 나온 김 비서는 그 소식을 듣고 안색이 돌변했다.
  • “대표님.”
  • [억울해. 내가 언제 승복하지 않았다고 그래? 내 얼굴에 승복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 소희 사건 때문에 진한 그룹의 직원들은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 왔었다. 특히 비서실은 더더욱 그랬다.
  • CCTV를 돌려보겠다고 하는 건, 그들이 소희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 그들은 모두 두 눈으로 직접 봤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감히 대표 사모님을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진현의 지시하에 CCTV 녹화본은 빠르게 진현의 손에 들어왔다.
  • 몇 배로 돌려감기를 한 상황에서도 소희의 모습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소희가 들어간 지 30분이 지나도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진현은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소희가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었다.
  • ‘이번에는 또 어떻게 억지를 부리는지 한 번 보자고.’
  • 한편, 김 비서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 잠시 후 CCTV에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자 김 비서의 동공은 한껏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진현을 힐끔 쳐다봤다.
  • 그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 영상이 재생 중지 되었다.
  • 진현의 얼굴에는 서리가 내려앉았다.
  • ‘정말이었어.’
  • 진현은 소희만 사무실에 드나들었다고 맹세했던 사람들을 보고 불쑥 질문을 던졌다.
  • “사모님 혼자였다고?”
  •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때, 선임 비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
  • “대표님. 문제될 게 없지 않습니까? 오직 사모님만 계신데요.”
  •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 [이 인간들은 대체 눈이 먼 거야 뭐야. 저게 안 보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