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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좁은 길에서 다시 만나다

  • 3년 후, 어느 아침의 C 시 한 낡은 아파트.
  • 똑똑!
  • 문 두드리는 소리가 정율을 잠에서 깨게 만들었다.
  • 그녀의 절친 윤하가 소리쳤다.
  • “착한 토끼야! 어서 나무 문을 열어줘!”
  • 정율은 말문이 막혀 눈을 비비며 말했다.
  • “왜 이렇게 일찍이야?”
  • 수건은 윤하의 젖은 머리를 감싸고 있었고 팔짱을 끼고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 "일찍 하지 않아, 빨리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고 A 시로 돌아가, 늦어서 면접을 망치겠다!”
  • “왕비님께서 친히 잠을 깨워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이죠, 지금 당장 가서 나갈 준비를 하지요.”
  • 정율은 윤하를 향해 웃어 보이며 그녀를 웃게 하려고 했다.
  • “쳇! 그런 닭살 돋는 말도 다 입 밖으로 내뱉다니!”
  • 윤하는 끄덕하지 않고 곧장 포동포동한 작은 손을 잡고는 그녀를 무시했다.
  • “자, 아가야, 윤하 이모가 치카치카도 해주고 얼굴도 씻겨줄게요.”
  • 정율은 슬리퍼를 끌고 옷장으로 가서 적합한 옷을 찾았고 귓가에는 귀엽고 잘 생긴 만두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 “윤하 이모, 유치원 선생님이 복어를 쓰지 말라고 했어요. 이 닦는 거 치카치카 하지 말래요. 왜냐면 저는 이제 다 컸으니까요.”
  • 풋!
  • 정율과 윤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릴 뻔했고, 두 단짝은 눈을 마주치며 참았다.
  • “알았어. 천우 어린이가 한 말이 맞아. 이제는 이모가 꼭 주의해서 말할게요.”
  • 윤하는 표정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응답했다.
  • 급하게 셔틀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면 정율은 가서 아들과 단짝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 요 3년 동안 그들이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데리고 인생에서 가장 타락된 순간을 보내게 되어 다행이었다.
  •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참지 못하고 미쳐버렸을 것이다.
  • 씻고, 메이크업을 하고 방에서 나오는데, 정천우꼬마가 작은 손으로 티 테이블 가장자리에 엎드려 진지한 얼굴로 영어 자모를 쓰고 있었다.
  • 그 진지한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 “꼬물아, 그만 쓰고 아침 먼저 먹자.”
  •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아들에게 맞댔다.
  • 정천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정율, 저를 학명 정천우라고 불러요. 지금 영어 글씨를 쓰고 있잖아요. 방해하지 말아요. 빨리 버스 타러 가면 안 돼요?”
  • 헉, 정율은 무안해났다.
  • 철이 든 아들이 도리어 그녀의 철없음을 드러내다니!
  • "봐, 현실판 천재 아들과 둔한 엄마 마지? 정천우 선생이 네 뱃속에서 나왔다고 알려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 한쪽에 서있던 윤하가 정율을 건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 “내 아들을 어린 나이부터 더하기 뺴기를 가르치고 알파벳 26자를 가르치고! 윤하, 내가 경고하는데, 내 아들을 애늙은이로 만들지 말라!"
  • 정율은 못마땅하게 윤하를 노려보았다.
  • “됐어, 빨리 버스 타러 가!”
  • 윤하와 정천우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정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 윤하는 얼른 가방을 정율의 품에 안기고는 그녀를 문밖으로 밀면서 잊지 않고 잔소리하였다.
  • “가면서 잊지 말고 내가 다운로드한 보보경심 려를 보도록 해, 직장 마인드 좀 심어둬.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면 안 보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그래야 실수하는 걸 피하지.”
  • 정율은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 “그 드라마 이미 수십 번이나 봤어. 직장 마인드랑 완전히 안 맞던데!”
  • “아이참, 너무 시끄럽잖아요!”
  • 정천우 어린이가 툴툴대면서 항의했다.
  • 정율은 정천우 어린이를 향해 억울한 표정을 지우며 입술을 삐죽내밀었다.
  • 윤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 “계속 안 가면 진짜 지각한다?”
  •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본 정율은 중얼거리며 빠르게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나갔다.
  • 겨우 A 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후 택시를 타고 환성 지주그룹 본사 사옥에 도착했다.
  • 다행히 11시에 면접이라 아직 시간이 넉넉했다.
  • 정율은 프런트에 가서 물어보자 유니폼을 입은 여종업원이 그녀에게 안내하려 했다.
  • 그 종업원은 두 눈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허리를 곳곳이 펴고 두 손은 모아 몸 앞으로 놓았다.
  • 그녀의 눈빛을 따라 뒤돌아 보니, 몇 명의 양복차림의 남자들이 로비로 들어오는데 마치 군계일학인 무리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었다.
  • “최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 여종업원은 그 남자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 아! 이분이 환성 지주그룹의 CEO 최시환 대표님이시구나!
  • 정율의 그의 신분을 확인한 후 다시 여러 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최시환는 옅은 표정으로 로비에 모인 직원들의 인사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대하다가 무심코 정율의 몸을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다시 발길을 돌렸다.
  • 그의 뒤에 서있던 김명이 정율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 ‘귀신일 곡할 노릇이네! 이 여자가 왜 여기에?!’
  • 빨리 몸을 돌려 마음을 추스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먼저 들어간 그는 선 채로 고개를 돌려 김명에게 눈짓을 보내고 김명은 곧 알아차린 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전용 엘리베이터가 오자 최시환은 안으로 들어가고 김명도 급히 따라갔다.
  • 다른 부하 직원들을 공손히 인사하고 배웅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김명은 낮은 소리로 알렸다.
  • “대표님, 그 여자 비서 자리에 면접 보러 온 거라고 합니다.”
  • 최시환은 잠시 고민하더니 명령했다.
  • “면접은 참가하게 해, 근데 고용하지는 마.”
  • “네.”
  • 김명은 등한할 수 없어 다시 전화를 걸어 그대로 처리하였다.
  • 그런데 이를 전혀 알 리가 없는 정율은 면접관과 비서실장 장금연의 돌아가서 소식을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 정율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 장금연의 태도에서 자신이 합격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환성 그룹을 나올 때 신문을 사서 공원에 앚아 일자리 광고와 주택임대에 대해서 읽어보고 있었다.
  • 3년 전 갓난아기를 안고 C 시로 떠나 절친 윤하한테 온후, 정율은 매달 중, 월말에야 A 시의 요양원에 와서 식물인간 엄마를 병문안하였다.
  • 그러나 C 대 신문학과를 졸업한 윤하는 현재 A 시 방송사에 입사했고 정율도 전문대를 졸업한 뒤 A 시로 옮겨와 자리를 잡아야 하는 시기였다.
  • 지금 일자리를 찾고 집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 오후 내내 정율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이끌려 여러 채의 집을 둘러봤지만 임대료가 비싸거나 환경이 너무 나빠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 밤이 깊어서야 그녀는 피곤에 찌든 몸을 끌고 친한 친구인 박연정의 독채에 가서 투숙해야 했다.
  • 박연정은 호족 가문인 박씨 가문의 외동딸이다.
  • 정율의 고등학교 친구인데 둘 사이는 친한 친구 그 이상이었으나 절친보다는 못한 관계였다.
  • 이번 환성 지주그룹이 비서를 뽑는다는 소식 또한 그녀가 정율에게 알려준 것이다.
  •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켜져 있었다.
  • 눈부신 빛에 정율은 눈을 반쯤 뜨고 박연정이 집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즉시 양 어깨를 걸치고 있던 가방을 들고 비틀거리며 객실로 들어갔다.
  • 윙윙!
  • 휴대전화가 때맞춰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했다.
  • 꺼내 보니 박연정의 번호였다.
  • “너 언제 집에 올 거야?"
  • "율아, 어서 문 앞으로 와."
  • 박연정은 한마디 던지고 끊어버렸다.
  • 그녀의 말투가 매우 급하다는 것을 들은 정율은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열고 뜰의 대문 앞에 서서 두리번거렸지만 밖에는 박연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이게 무슨 소동을 일으키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