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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음식을 주문하다

  • 최시환은 그녀들더러 빨리 나가라 손짓하였다. 업무를 볼 때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신경이 쓰여 업무에 지장을 받게 된 것이다. 장금연은 정율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었기에 내뱉는 말에서도 그것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었다.
  • 사무실에서 나온 후 그녀는 매섭게 정율을 노려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 “정율 씨, 수단이 보통을 넘는군요. 대표님이 여자를 많이 다뤄봤기에 정율 씨의 꼼수를 환히 다 알아요. 정율 씨가 그이를 좋아하는 것도 일시에 불과해요.”
  • 그녀는 최시환의 옆에 몇 년 간 있으면서 그가 여자를 마음에 두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예외가 한사람 있긴 한데, 그녀는 지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었다.
  • 정율은 장금연과 입씨름하기 싫었고 금방 그녀가 꼼수라 오해하는 부분을 지금 당장 해석할 수도 없었다. 먼저 업무를 배우고 후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해석해 주려 하였다.
  • “장 실장님, 먼저 대표님께 음식을 주문하시죠.”
  • 정율은 최대한 공손한 어조로 말을 했지만 장금연의 마음에는 그녀의 말이 가시처럼 찔러 왔다.
  • “그러죠!”
  • 장금연도 입씨름보다 당면한 업무가 우선순위임을 느끼고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장 실장의 사무실에 갔고, 장금연은 책상 서랍에서 전화 명부를 꺼내었다. 그녀는 책장을 번지더니 연락처를 찾고 말했다.
  • “대표님은 이 세 집의 음식밖에 드시지 않아요.”
  • 정율은 그 속에 이해관계가 있음을 눈치채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아까부터 그녀의 지시를 녹음해두려고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틀어놓았기에 방금 말한 그녀의 말도 이미 녹음되어 있었다. 아무리 좋은 기억력도 종잇장에 써넣는 것보다 못하다고, 지금 선진적인 전자 기기들이 많아서 일하는데 많이 편리하였다.
  • 장금연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서 말했다.
  • “지금 녹음하고 있죠? 당장 삭제하세요. 노트를 준비하거나, 핸드폰 노트 기능을 이용하여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녹음은 안 돼요.”
  • “아, 네.”
  • 정율은 얼떨결에 대답은 했으나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놀란 탓인지 몸과 마음이 분리 상태에 처해 있었다.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보고 장금연은 그의 핸드폰을 와락 빼앗고 그 안의 녹음 기록을 전부 삭제하였다.
  • “좀 있다 직원 수칙을 잘 읽어보세요. 불량한 습관을 회사에 가져오는 것은 금물이에요. 핸드폰의 녹음 녹화 기능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돼요.”
  • 장금연은 공적인 일에 사적 감정이 개입할 수 없다는 듯 냉철하게 말했다. 회사의 수칙에 관한 말이 나오자 정율은 급히 알겠노라 머리를 조아리었다.
  • 그녀는 느슨했던 마음을 추스르면서 모든 것을 회사의 제도와 이익에 초점을 맞추리라 다짐하였다. 만사가 시작이 어렵다는 말처럼, 첫 며칠을 잘 견디어 내면 향후의 일들이 순리로 울 것이라 생각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진통을 겪기 마련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장금연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더니, 전화 명부에 적힌 번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 “지금 빨리 주문을 해요. 이 술집에 전화하세요.”
  • 아까 장금연이 친히 시범을 보이겠다고 말하고 선, 지금 와서 자기 보고 전화하라니 정율은 약간 의아해했다. 의아함도 잠시, 그녀가 정율의 상사이고 선배인 만큼 그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어 전화기를 들면서 물었다.
  • “알겠습니다. 제가 전화상 우리 회사의 명칭을 알려주면 되나요?”
  • 예전에 아르바이트로 하던 일과 달리 처음 겪는 일이라 상세한 것은 짚어 넘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장금연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고 차갑게 말했다.
  • “동작을 빨리 서둘러요. 아직 교대해야 할 다른 일도 많은데.”
  • 장금연은 눈을 똑바로 뜨고 정율이 어떤 특수 공능으로 최시환을 삶아 놨는지 지켜보려 하였다.
  • 정율은 복잡한 생각을 접고 지시대로 음식 주문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다가가 다음번 지시를 기다리었다. 장금연은 이미 프린트한 종이 몇 장을 그녀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 “이것을 잘 읽어보세요. 내용은 모두 대표님의 습관과 애호에 관한 것을 적은 거예요. 그리고 일상적 대처 방법도 적어 놓았으니 잘 외워둬요. 사무실을 청소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대표님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니깐.”
  • 정율은 종이를 받자 신속하게 훑어보았다. 그녀는 당장 닥친 점심에 해야 할 일들을 찾고 있었으나 종이에는 그 내용이 없었다. 정율이 더 상세한 것을 물으려 고개를 쳐들어 보니 장금연은 이미 자리에서 저만치 떠나 있었다. 장금연이 고개를 돌려 정율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 “눈치 빠르게 일하세요. 미세한 일이라도 신경을 잘 써서 하세요. 난 일이 있어 나가봐야겠어요.”
  • 장금연은 그녀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게 더 편했다. 그리고 신입사원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정율은 장금연이 건네준 서류를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이었다. 일하면서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 사무실에는 아직 그녀의 책상이 배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서류를 들고 사무실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내용을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자기를 향한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지하였고, 그 느낌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쓸쓸하였다. 이때 김명이 그녀의 곁에 다가와 덤덤히 말했다.
  • “정율 씨, 최 대표님이 부르십니다.”
  • 김명의 말은 그녀를 난처한 경지에서 구해주었다.
  • “알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 정율은 말을 마치고 김명을 따라 사무실 문을 나섰다. 대표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김명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간 후 최시환과 약간한 거리를 둔 위치에서 공손하게 물었다.
  • “대표님, 절 부르셨어요?”
  • 정율은 최시환이 자기한테 일을 시켜줄 것을 내심 바랐다. 업무도 없이 사무실에서 멍때리는 것이야말로 제일 힘든 고역이라 생각하였다.
  • “차와 커피를 준비해. 좀 있다 손님이 올 거니까.”
  • 최시환은 정율을 보고 덤덤히 말하고, 손에 든 서류를 김명한테 넘기면서 말했다.
  • “이대로 진행해!”
  • 김명은 서류를 공손하게 받고는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 정율은 최시환의 지시 내용을 어디서부터 진행할지 몰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물었다.
  • “대표님, 어디서 손님을 접대하시는지요?”
  • 어리둥절해 하는 정율을 보고 최시환은 귀찮은 듯 말했다.
  • “너한테 나의 일정표가 없어?”
  • “네. 있습니다.”
  • 정율은 급히 손에 쥔 자료를 훑어보았는데 거기에는 접대 장소가 적혀있지 않았다.
  • “대표님, 죄송해요. 오늘 처음이라 손님을 어느 방에서 접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 정율은 최시환이 불같이 화를 낼 까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최시환은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여자들의 마음이란 쉽게 질투하는 것이고 질투의 마음이 있어야 서로 견제하면서 평형을 이룰 것이라 믿고 있었다. 장금연이 우수하다고 혼자 독불장군으로 놔두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연장을 잘 갈아야 한다고, 앞으로의 일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이 필요한 인재를 잘 배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 그는 인내심을 갖고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 “일정표에 M이라 쓰여있는 것은 회의실이고, 기타는 모두 사무실이야.”
  • 비록 큰일은 아니었지만 세부적인 사항으로부터 입문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 “알겠습니다.“
  • 정율은 말하면서 일정표를 쳐다보니 과연 거기에 M이라고 적힌 표시가 있었다. 어떤 곳의 비고란에 회의 목적에 관한 내용도 깨알 같은 글씨로 씌어 있었다. 그녀는 세상의 어떠한 업무를 막론하고 잘하려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