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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첫 승리를 거두다

  • 허안안은 최시환과 정율이 열애에 빠졌다는 것을 직접 듣고 나서, 그들이 한동안 연애하게 놔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머지않아 연애의 온도가 식으면 최시환이 다시 자기 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 먼저 후퇴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였다.
  • “허 비제이, 잘 가요.”
  • 최시환은 몸을 까딱이지 않은 채 덤덤히 말했다. 그는 허안안에 대해 아무런 흥취가 없었고 그녀의 태도 표시도 필요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두 여자가 화장실에 갔다가 온 후, 허안안이 자기한테 주동적으로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의자에 앉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던 정율은 금방 자기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 이렇게 하는 행위가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인지 의구심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 최시환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수단을 썼던, 결과에 대해 매우 만족하였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 그의 집중적인 시선을 받은 정율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 “최 대표님, 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 최시환은 몸을 털고 일어나면서 차갑게 말했다.
  • “가자! 월요일에 회사에 시간 맞춰 출근하고.”
  • 오늘의 연회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정율은 떠나는 최시환의 뒤를 냉큼 따랐다.
  • 최시환은 나오면서 술집 종업원더러 그녀에게 택시를 불러 주게 하였다. 분위기가 이상하여 자기 차로 데려다 주기 싫었다.
  • 집 앞에 도착한 정율은 늦은 시간에 노크하면 정천우가 깨날 까봐 카카오톡으로 윤하에게 메시지를 발송하였다.
  • “짐이 문 앞에 도착하였으나 어서 문을 열거라.”
  • 윤하는 정율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회신을 하였다.
  • “신첩이 폐하를 모시겠사옵니다.”
  • 윤하가 문을 열려고 문가로 가려는데, 잠든 줄 알았던 정천우가 눈을 비비면서 윤하를 불렀다.
  • “윤하 이모, 엄마가 돌아온 게 아니에요?"
  • “응. 근데 이 녀석 아직도 잠 안 잤어?”
  • 정천우는 청각이 민감하여 주위의 미세한 동정에도 쉽게 깨었다. 윤하는 정율에게 메시지를 재발송하였다.
  • “꼬물이 잠을 깼어. 토크백으로 해!”
  • 조금 후, 집안의 토크백이 울렸고 윤하는 토크백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율을 보고 정천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어머니랑 이모랑 저녁에 일찍 쉬세요. 여자들은 밤을 지새우면 빨리 늙는데요."
  • 포옹해 줄 줄로 알았던 아들애가 어른스럽게 냉정하게 말하니 정율은 윤하를 따지고 물었다.
  • “저 애가 왜 아직도 안 자고 그래? 네가 애한테 뭔 어른 사회 교육을 세뇌한 거야?”
  • 윤하가 반박하기 전에 정천우가 말했다.
  • “엄마, 너무 무단으로 추측하지 말아요. 전 엄마가 걱정돼 잠을 못 잔 거예요. 소리 낮게 말해요, 전 먼저 자겠어요.”
  • 정율과 윤하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윤하는 정천우가 자기 방에 들어가자 그의 방문을 살며시 닫고 정율의 곁에 잰걸음으로 다가와 그녀를 붙잡고 독촉했다.
  • “빨리 말해. 오늘 어떻게 된 거야?”
  • 그녀는 오늘 정율이 겪은 일에 대해 지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정율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그녀에게 설명하면서 환성 지주그룹에 입사하여 최시환의 개인 비서로 업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말을 들은 윤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변하면서 흥분한 나머지 소리낮춰 환성을 질렀다.
  • “와! 대박이야!”
  • “뭐가?”
  • 정율은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입술을 깨물고 애써 정색한 척하면서 물었다.
  • “너 정말 이럴 거야?”
  • 윤하는 그녀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 두 절친한 여자는 한바탕 웃으면서 미래에 대해 구상하였다. 허안안의 얘기가 나왔을 때 윤하는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말했다.
  • “그 여자가 굉장히 까다롭구나. 향후 내 업무가 이 여자 때문에 상당히 활력이 넘치겠는데.”
  • 윤하는 향후 허안안과 같이 일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녀의 조수로 될 가능성이 컸다.
  • “하하, 너희들 앞으로 잘 싸워 봐! 너 그런 거 좋아하잖아?”
  • 정율은 비꼬는 눈길로 윤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 “그래. 그런 재미도 없으면 인생이 즐겁지 않지.”
  • 윤하는 정율을 흘기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이번 주말에 각자의 필요한 일들을 끝마치고 정천우를 어린이 집에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 월요일 아침, 정율과 윤하, 정천우 세 사람은 서로가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먼저 정천우를 어린이 집에 보낸 두 사람은 각자의 회사로 헤어졌다. 둘 다 오늘 첫 출근이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마음이 설레었다. 회사의 로비에 들어서자 정율은 카운터의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물었다.
  • “안녕하세요. 저 오늘 입사한 정율이라고 하는데 수속을 어디서 밟죠?”
  • 로비의 두 여자애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서로 상대에게 물었다.
  • “너 이 사람 입사 내용을 알고 있어?”
  • “아니, 넌?”
  • 두 사람은 서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사람은 일단 정율더러 휴게실 대기용 소파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고, 조금 후 직원들이 출근하면 알아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 지금 한창 출근 시간이어서 직원들이 잇따라 로비에 들어오고 있었다. 정율은 소파에 앉은 채 출근하는 직원들의 정신 상태와 복장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장금연의 모습이 드디어 로비에 나타났다. 그녀는 오피스룩 차림으로 정율의 곁을 위엄 있게 지나갔다. 휴게실을 힐끔 바라보다가 정율이 앉아있는 것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걸어갔다. 정율을 보니 화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Boss가 지시한 일이라 주동적으로 챙길 수밖에 없었다.
  • “저를 따라오세요.”
  • 장금연은 정율의 앞에 서서 그녀를 노려보면서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 정율은 입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태도에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네. 알겠습니다.”
  • 장금연은 정율을 데리고 빌딩의 제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자기 사무실에 들어가자 즉시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 “대표님이 새로 뽑은 비서가 왔으니 지금 나한테 엘리베이터 임시 키 한 장 가져다주세요.”
  • “임시 키라니요? 인사팀에 보내어 정식 입사 수속을 밟게 해주세요.”
  • 인사팀 담당자는 회사의 규정 제도에 따라 정상적인 절차를 밟자고 주장해왔다.
  • “입사해도 얼마 있을지 불투명해서요. 금방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니깐요!”
  • 장금연은 고의로 정율이 듣게끔 목소리를 높이었다. 정율에게 무형의 매질을 한 셈이다. 정율은 입사 첫 단추부터 타인의 무시를 당하니 앞으로 고생할 일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타인이 자신을 저주할수록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티리라 다짐하였다.
  • “아, 그러세요? 그래도 이쪽에서 등록은 해야 하잖아요.”
  • 인사팀 담당자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필경 그들에게는 부서별 엄격한 계선이 있기 때문이었다.
  • “알았어요. 그럼, 사람을 그리로 보낼게요.”
  • 장금연은 부서별 계선의 한계를 느끼면서 동의하였다. 기실 장금연은 고의로 시나리오를 연출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회사 사람들에게 신입생이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정율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어 주동적으로 사직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냉랭한 어투로 정율에게 말했다.
  • “16층 인사팀에 먼저 가요.”
  • 정율은 장금연의 지시를 받고 지금 상황에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을 필요가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 문을 나섰다. 키가 없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기에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서성이고 있었다. 이때 엘리베이터가 땡 하고 멈춰 서더니 그 안에서 최시환이 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