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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약효

  • 그는 손으로 나의 온몸을 어루만졌다.
  • 약효와 그의 도발 때문에 내 안의 욕구는 더욱 커졌다.
  • 그러나 이때 그는 갑자기 멈추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 “천한 년.”
  • 이 말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들었다. 마음속의 수치심이 몸의 욕구를 이겨냈다.
  • 나는 벌떡 일어나 옷으로 몸을 가렸다.
  • “그런 쓰레기하고 집에 가? 그 사람하고 하겠다고? 그러고도 천한 년 아니야?”
  • 그는 경멸 조로 말했다.
  • “그게 아니라, 그가 술에 약을 타서….”
  • “당신이 그와 돌아가지 않으면 그가 술을 마시게 할 기회가 있어? 술을 안 마시면 약을 풀 수 있어?”
  • 그는 쌀쌀하게 물었다.
  • 나는 갑자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억울한데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눈물이 핑 돌았다.
  • “외롭다고 아무나하고 해? 돈 안 받고?”
  • 그는 쌀쌀하게 반문했다.
  • 나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 “도와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나를 제멋대로 모욕해도 되는 건 아니에요!”
  • 그는 아무 말 없이 외투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에 몸을 맡겼다. 또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 토하려 했다. 나는 빨리 체내의 치욕적인 약효에서 벗어나야 한다.
  • 두 시간 동안이나 되는 난리 속에 나는 매우 피곤했지만, 다행히 기력을 회복해갔다.
  • 아이가 걱정되어 어느 방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방에서 나왔다.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간병인이 말하기를 아이가 뜨거운 우유를 마시고 바로 옆방에서 이미 잠이 들었다고 한다.
  • 나는 살금살금 들어갔다.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옆 장난감 코너에는 내가 병원에서 본 장난감들이 쌓여 있었다. 아이의 예쁜 얼굴에는 놀랍게도 잠들기 전 옅은 행복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 나는 조용히 아이의 옆에 누웠다. 꿈결에 엄마를 부르고 모 아저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순간적으로 마음이 일렁이고 머릿속의 많은 의문과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을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 출근하는 습관 때문에 시간이 되자 나는 깼다.
  • 아이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나는 또 살며시 방에서 나왔다.
  • 모진풍이 말은 비록 모질게 하지만 그가 나에게 잘해 주는 것을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감사의 의미로 그에게 아침밥을 지어 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의외로 조식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다.
  • 계란 프라이, 커피, 빵, 그리고 샌드위치, 죽, 국수 등 조식은 아주 풍부했다.
  • 하인은 내가 평소에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여러 가지로 다 준비했다고 한다.
  • 나는 과분한 대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까지 내가 다른 사람을 보살펴 왔지 이런 대우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 아이만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별로 가리는 것이 없고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 “사부님이 말씀하셨어요. 아이가 잠시 이곳에서 살고 남은 일은 사부님이 사람을 보내 해결할 것이라 하셨어요. 병원 측도 재검사를 해보니 아이가 호전되었기에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입원이 필요할 경우 병원 측에서 통보할 거래요”
  • 하인이 말했다.
  • 나는 아이가 나와 같이 남의 집에 얹혀 살기를 원치 않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다.
  • 나는 황급히 아침을 먹은 후 아이를 돌봐 달라고 하인에게 부탁하고 별장을 나와 택시를 타고 백화점으로 출근했다.
  • 가는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모든 게 꿈만 같았고 또 다 가짜인 것만 같았다.
  • 백화점에 도착하니 동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이따금 작은 소리로 의논했다. 내가 그들을 쳐다보자 그들은 긴장한 듯 입을 다물었다.
  • 나는 나와 친한 동생을 구석에 불러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녀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 “대단해요. 언니, 사장님과 결혼식장에서의 영상을 보았어요.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뺏어간다는 건 정말 멋져요! 언니는 이미 사모님이 되었는데, 출근할 필요가 있나요?”
  • 나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그냥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
  • 이때 매니저가 굳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의 사무실에 잠깐 오라고 했다. 나의 마음은 또 안절부절못했다.
  •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매니저는 곧 환심을 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백화점 경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또 좋은 제안이 있으면 그에게 제기라고 했다.
  • 나는 이전에 정말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제안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매니저한테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다고 꾸중을 들었다. 경영에 관한 일이 나 같은 영업사원이 신경 쓸 일이냐고 했다.
  • 지금 매니저의 태도가 크게 바뀐 이유를 당연히 알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 나는 그냥 제안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는데 오히려 매니저님이 많이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고도 했다.
  • 매니저는 매우 긴장해 하며 양해해달라는 말 하지 말라고 했다. 힘들면 열흘 정도 쉬어도 문제없다고 했다. 급여와 보너스는 한 푼도 적지 않게 지급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옆방에 단독 사무실까지 마련했다고 했다.
  • 진짜 웃기는 일이다. 일개 영업사원에게 사무실이라니.
  • 매니저가 애써 잘 보이려 하고, 나는 애써 거절하고 있을 때, 동료가 달려와서 큰일 났다고 하며, 백화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왔는데, 보이는 대로 부순다고 보고했다.
  • 매니저가 얼른 나갔고, 나도 당연히 따라 나갔다, 멀리서 유리 진열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 “임안을 내놓지 않으면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박살 낼테니 알아서 해.”
  • 누군가 욕하는 소리도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