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내놓지 않으면 백화점 전체를 때려 부수겠다고 소리치던 사람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그들도 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니저가 나서서 그들을 제지하다 오히려 맞고 엎드러졌고 동료가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핸드폰도 부수고 몽둥이로 때리기까지 하였다.
나를 찾아온 이상 나는 침묵할 수 없었다. 내가 주동적으로 나서서 내가 바로 임안이니 멈추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둘러쌌다. 그들 중 한 명이 핸드폰을 꺼내서 비교하더니 나라고 확신한 후 데리고 나갔다. 그런 후 나는 남자들에게 잡혀 문 앞에 세워진 승합차에 올라탔다.
가는 도중에 누군가가 전화로 보고를 했다. 그 여자를 찾았다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전화 속의 사람 지시를 받고 차를 교외로 몰았다.
폐교된 초등학교로 끌려갔는데 학교를 옮긴 지 얼마 안 됐는지 농구 보드와 기타 시설은 아직 멀쩡했다. 나는 손발이 묶인 채 운동장에 내동댕이쳐졌다.
마침 6월이라 점점 뜨거워지는 햇볕에 쬐여 나는 땀을 줄줄 흘렸다.
햇볕에 쬔 지 한 시간 만에 또 차 한 대가 학교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내가 결혼식에서 만났던 서가경이었다. 바로 모진풍과 결혼하지 못한 신부였다.
그녀는 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허리를 굽혀 나를 응시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그러고 나서 뺨을 연거푸 때렸다. 가뜩이나 햇볕에 좀 어질어질했는데, 몇 번을 후려치니 더 어지러웠다.
“천한 년, 네가 모진풍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그가 나를 배신해?”
말하면서 나의 머리를 걷어찼다.
그녀의 하이힐은 뾰족해서 나를 찼을 때 너무 아팠다. 나는 입술을 악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앞에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용서는 더욱 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내가 전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모진풍이 주범이고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녀의 신랑과 함께 도망간 것은 사실이다. 나 같았어도 미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워낙 해명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독하면서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면서 모진풍이 그녀에게 장가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정말 엉망이었다.
그녀의 능욕은 멈추지 않고 또 나를 발로 차고,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때 내가 수그러들면 그녀가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더 괴롭힐 것이다.
나는 그녀를 한 번 노려보고는 애써 웃음기를 머금고 여유로운척하였다.
내가 두려워할수록 그는 더욱 나를 괴롭히리라는 것을 알았다.
“천한 년, 넌 오늘 죽었어. 아직도 웃음이 나와?”
“나와 모진풍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하지만 지금 당신한테 말하고 싶지 않아. 당신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날뛰고 교양 없이 구니 명문가 출신이라는 말이 부끄럽네. 내가 모진풍이라도 너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얼굴까지 파래졌다.
“천한 년, 입은 아직도 살아 있구나. 자, 이 년의 옷을 벗기고 너희들 몇 명이 줄을 서서 그녀에게 올라가. 그리고 찍어둬. 모진풍에게 그가 좋아하는 여자, 그가 보호해야 할 여자가, 어떤 천한 년인지 보여주게.”
그의 수법은 유군과 얼마나 비슷한가.
출신이 아무리 좋아도 뼛속까지 나쁜 사람은 모두 똑같이 저급하고 더러웠다.
“모진풍이 곧 올 거야. 네가 나를 그렇게 대하면 그가 너를 더 미워할 것이고, 그러면 너는 더더욱 기회가 없을 거야.”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다. 사실 조금 겁이 났었다. 나는 가까스로 유군의 손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는 순간 머뭇거렸다.
“모진풍이 여길 찾아올 줄 알았니? 그가 백마를 타고 와서 구해줄 줄 알아?”
나는 가능한 한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비록 확실치 않지만 계속 그녀와 말을 해야 했다.
“안 믿어? 곧 도착할 거야.”
“그래, 모진풍이 와도 나는 두렵지 않아.”
서가경이 이 말을 할 때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래?”
그때 갑자기 누군가 한마디 대꾸했다.
나와 서가경은 약속이나 한 듯 머리를 돌렸다. 하얀 양복을 입은 모진풍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손에 검은 파라솔을 들고 있었고 그 뒤를 장헌용이 따랐다.
나는 멍하니 있는 서가경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그가 왔잖아?”
서가경도 잠시 당황하더니 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얼굴에 억지웃음을 짜내면서 말했다.
“진풍아, 너 왜 왔어?”
모진풍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곧장 나에게로 향해 다가왔다. 검은 파라솔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서 태양을 가리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내 몸에 있는 밧줄을 풀어주었다.
“내가 올 줄 어떻게 알았지?”
“내가 그들에게 끌려간 뒤 매니저가 분명히 당신한테 전화했을 거예요. 그들이 차량 번호판을 가리지 않았으니 도처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여기까지 오기란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난 거의 두 시간째 묶여 있었으니까 당신이 도착할 때도 됐죠. 그렇지 않으면 넷째 형의 위명에 금이 갔을 거예요.”
이 말에 그는 내심 기뻤다.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서가경을 돌아보았다.
“너도 봤지, 그녀가 너보다 몇 배는 영리하다는걸. 네가 나라면 너도 그녀를 선택했을 거야.”
서가경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모진풍, 이 여자 못 데려가!”
말하면서 나를 묶어 온 사람들을 한 번 보았다. 막으라는 눈치였다. 거기에는 대여섯 사람이 있으나 모진풍 쪽에는 그와 장헌용이 있을 뿐이다. 수적으로는 서가경 쪽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그전에 날뛰던 건달들이 지금, 이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두 눈을 들지 못하고 얌전하게 서 있었다. 이따금 곁에서 냉담한 표정으로 말 없는 장헌용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이 모진풍의 이 수하를 매우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모진풍은 손을 뻗어 나를 부축하려 했지만 나는 발이 저려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다. 그러자 그는 손을 내 허리에 대고 나를 받쳐 세웠다.
나는 그가 나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계속 서가경 앞에서 연기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정말 감동했다.
“괜찮아? 가자.”
모진풍이 말했다.
서가경이 길을 가로막았다.
“모진풍, 너희 집안에서 이 땅을 개발할 때 우리 아빠의 도움이 없었으면 철거가 그렇게 순조로웠을까? 우리 집에 밉보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할지 똑똑히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모진풍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장헌용을 보았다.
장헌용은 서가경에게 걸어가서 귓가에 작은 소리로 몇 마디 말을 건네자 서가경이 안색이 변하여 나와 모진풍이 밖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