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안 씨, 아무런 걱정 하지 말고 다녀와, 월급은 그대로 지급할 테니 출근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돼.”
매니저는 내 비위를 맞추느라 애를 썼고 이런 행동은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긴 평소에는 절대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아마도 그는 내가 모진풍과 가까운 관계인 줄 알고 나한테 미움을 사면 자기한테 불리해질 가봐 잘 보이려고 이러는 듯싶었다.
운전하는 남자는 서른 살쯤 되는 훈남이었다, 키도 크고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는 줄곧 백미러로 나를 주시하더니 말을 건넸다.
“장헌용입니다, 넷째 형 밑에서 일을 하는 동생이에요.”
“안녕하세요, 혹시 넷째 형이라고 하시는 분이 모진풍 씨인가요?”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얘기를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나를 쳐다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모르시는 거예요?”
그는 내가 당연히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한창 어리둥절해하자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모 도련님은 이곳에서 엄청 유명한 사업가예요, 형제 중 넷째여서 정부나 각 계 사람들은 모두 그를 넷째 형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이름을 직접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나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고 머릿속은 또다시 복잡해졌다.
‘내 아들이 어떻게 모진풍의 자식 일수 있지? 나는 전에 이 사람에 대해 일면식도 없는데 어떻게 이 사람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단 말이지?’
‘혹시 서로 다른 넷째 형이 아닐까?’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게 지금 상황이랑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해시에는 주요인구가 몇천만 명인데 “넷째 형”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고 유군 씨가 말하는 넷째 형은 아마 모진풍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혹시 진짜 넷째 형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모진풍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치욕스러웠다, 나는 그와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부끄러웠다.
내가 한창 터무니없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 차가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이 바로 보이는 회백색의 유럽풍 호텔이 눈앞에 나타났고 나는 이 건물을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 호텔은 미국 대통령이 근무할 것 같아서 사람들이 “해성 백악관” 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이 건물 소유주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고 다만 해성에 사는 엄청난 부잣집 소유라고만 알고 있었다.
백악관 앞 축구장 만한 잔디밭이 있었고 대문은 꽃으로 둘러쌌다, 그리고 중앙에는 하얀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임시로 설치한 무대 배경의 대형 스크린에는 익숙한 결혼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몰라도 모진풍의 결혼식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모진풍의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결혼식에 왜 나를 부르는 것일 가?’
장헌용은 나를 맨 뒷자리에 안내하면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몇 분 동안 멍하니 앉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마음이 점차 불안해지더니 이곳을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모진풍을 만나지 못했고 그한테 아이에 대해 도움을 청할 일이 남아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하객들이 연이어 예식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백화점 작업복 차림에 머리는 기름졌고 피부가 칙칙해서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온종일 안절부절못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자리는 현재 내 모습이랑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곧바로 정장 차림의 남자 두 명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넷째 형의 부탁을 받고 나를 지키러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나를 돌볼 의무가 있으니 협조를 부탁한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나는 무슨 얘기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지키러” 온다는 얘기는 사실 나를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감시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더욱 불안해졌다.
‘모진풍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내가 빠져나갈 방법을 고민하는 사이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모진풍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악기가 울려 퍼지고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신부는 행복한 표정으로 하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이번 결혼식의 사회를 맡은 사람은 해시에서도 제일 유명한 프로그램의 MC였고 주례는 더욱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해시에서 공상을 주관하는 상무 부시장이었던 것이다.
결혼식은 축복과 감동 속에서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제일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다, 주례가 신부한테 물었다.
“서가경 씨는 모진풍 씨와 결혼해서 그의 아내가 될 것을 동의합니까? 가난하든 부유하든, 어떤 곤란이나 질병이 있든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신부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끄덕였는데 그 모습은 부러울 만큼 행복해 보였다.
주례사가 똑같은 질문을 신랑한테 했다, 모든 사람들이 신랑도 당연히 같은 대답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신랑은 의외로 묵묵부답이었다.
예식장은 삽 시에 고요해졌고 모든 이목이 신랑한테 집중되었다. 하지만 신랑은 여전히 침묵했다, 그러고는 신부를 바라보는 눈빛을 점차 하객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 심장은 쿵쾅거렸다, 그의 눈빛이 점차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