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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조종

  • 내가 멍하니 아무 말도 안 하자 그는 말투가 좀 싸늘해졌다.
  • “왜, 싫어?”
  •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 “나랑 결혼한다고요? 어떻게…”
  • “그냥 너에게 합리적인 신분을 주고 아이에게도 좋은 미래를 주고 싶은 것뿐이야, 네가 정 싫으면 됐어.”
  • 모진풍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
  • 나는 싫은 게 아니라 그저 너무 갑작스러워 멍했을 뿐이었다.
  • “모 사장님…”
  • 그는 몸을 돌려 손을 저으며 나의 말을 끊었다.
  • “다 나를 넷째 형이라고 불러, 너도 앞으로 그렇게 불러.”
  • “넷째…형.”
  • 처음으로 넷째 형이라고 부르니 어색해났다.
  •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왜 저희 모자에게 그렇게 잘해줘요? 전에 제가 물은 적이 있어요, 아이가… 혹시 모 사장님 자식인지, 그런데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또 저랑…”
  • 이건 민감한 문제여서 나는 어눌어눌 말했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서 씨 가문이랑 결혼하지 않은 이상 명분이 필요해. 결혼하고 아이를 내 호적으로 올려야 내가 보호할 수 있어, 더 좋은 환경에서 잘 살수 있을 거야. 엄마로써 너도 바라는 바 아니야?”
  • “하지만 저한테는 중요한 문제에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 나는 끝까지 캐물었다.
  • “나 못 믿어서 계속 캐묻는 거야?”
  • 그의 말투는 또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 “내가 아이 해칠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계속 유 씨 성을 따르게 하고 싶은 거야?”
  • 유군과 모진풍 중 누가 보호자로 되느냐 이 문제는 고민할 여지도 없이 나는 당연히 모진풍을 택할 것이다.
  • 게다가 소양의 치료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모진풍은 나와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고 그럼 나는 다시 곤경에 처할 것이다.
  • “좋아요.”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모진풍은 깊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 “그래, 잘 생각했어.”
  • 이상하게도 그의 눈에서는 나를 무섭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 그는 몸을 돌리고 장헌용에게 말했다.
  • “차 준비해, 아이 데리러 가자.”
  • “넷째 형, 진짜 사모님과 정면충돌하실 겁니까?”
  • 장헌용이 말했다.
  • 모진풍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얼음장 같은 얼굴로 말했다.
  • “가자고.”
  •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했다.
  • “넌 집에서 기다려, 아이 데려갈 테니까.”
  • 집이라는 말에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가 분명 소양을 데려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한 시간쯤 후에 모진풍의 차가 드디어 돌아왔다.
  • 차 문이 열리고 모진풍은 소양을 안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 나는 바로 달려갔고 모진풍은 소양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 “내가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켜.”
  • 소양은 나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 “엄마, 나 그 할머니 미워, 다시 보고 싶지 않아.”
  • “미안해, 엄마가 널 보호하지 못했어.”
  • 나는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 혼자 끙끙 대지 말고.”
  • “나 출장 가야 돼, 내일 아침 일찍 돌아오니까 그길로 구청에 가자.”
  • 말을 마치고 그는 부랴부랴 자리를 떠났고 몇 걸음 가지 않아 무언가 생각난 듯 또 돌아와 소양의 머리를 쓰다덤었다.
  • “엄마랑 집에서 잘 놀고 있어, 엄마 잘 지켜줘야 돼, 알지?”
  • 이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맑고 순수했으며 온통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평소의 냉혹한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 오랜만에 느끼는 보호 받는 따뜻한 느낌에 나는 마음이 또 약해졌다.
  • 이런 든든한 느낌은 너무 좋았다.
  • 소양은 그와 인사를 나눴고 그의 차가 보이지도 않는데 소양은 여전히 아쉬운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소양, 만약 모 삼촌이 아빠가 된다면 어떨것 같아?”
  •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 “좋아, 아빠는 나쁜 아빠야, 모 삼촌은 좋은 아빠야.”
  • 소양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소양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모진풍이 다른 건 몰라도 아이에게 잘해주는 건 확실했다. 이것 하나면 충분했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 이튿날 아침, 나는 일어나 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옷장을 열자 안에는 모진풍이 보내온 몇별의 옷이 걸려있었다. 내가 전에 엄두도 못 냈던 고가의 브랜드들이었다.
  • 나는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 꾸미기 시작했다. 이렇게 열심히 화장을 한지도 참 오랜만이었다. 삶의 고단함 속에 내가 겨우 24살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 아침을 먹고 장헌용에게서 전화가 왔다. 넷째 형은 점심에나 도착하니 먼저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 생각해 보니 구청은 화동 병원과 멀지도 않고, 소양과 외출하는 김에 의사를 찾아가 다음 치료 방안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 의사를 찾고 나는 소양의 앞으로 치료 일정과 어떤 준비들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 하지만 그는 어눌어눌하더니 과장님과 상의해야 한다고 나보고 먼저 기다리라고 했다.
  •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소양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일부러 나에게 숨기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그를 따라갔고 과장 사무실 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 “과장님, 임 아가씨 또 오셨어요, 아이 치료에 대해 계속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답해요?”
  • “프로세스대로 답하면 되지, 이것도 나한테 물어?”
  • “하지만 과장님. 아시다시피 그 검사 보고서의 데이터는 모두 모 사장이 조작하라고 시킨 거잖아요. 그 아이 사실 아무 병도 없는데 계속 숨길 수는 없잖아요. 만약 애 데리고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하면 어떡해요?”
  • ‘뭐, 소양의 병이 가짜라고? 검사 보고서는 조작된 거라고? 모 사장이 시킨 거라고? 어느 모사장? 모진풍? 그럼 이 모든 게 그가 조종한 일이라고?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