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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미련

  • 차에 오르니 모진풍의 얼굴빛이 또 싸늘해졌다.
  • “내가 듣기로는 네가 스스로 나서서 그들이 너를 납치해 가게 했다며?”
  • 순식간에 말속에 온기가 사라졌다.
  • “그들은 백화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어요.”
  • 나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 “그래서 네가 책임질 만하다고 생각해? 아니면 네가 영웅이라도 된다고 생각해?”
  • 그의 말투는 더욱더 싸늘해졌고 또 약간의 조롱도 섞여 있었다.
  • 나는 염치 불고하고 해석했다.
  • “나는 영웅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온 거니깐 내가 나서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다치고 더 큰 피해를 볼 텐데….”
  • “미련해.”
  • 그는 딱딱한 말로 나의 말을 끊었다. 나는 내가 어디가 미련한지 정말 모르겠다. 설마 내가 비겁하게 숨어 있으면 똑똑하단 말인가? 하지만 일이 이미 해결된 이상 나는 더 그와 다툴 필요가 없다. 그렇게 독선적인 사람인데, 나는 또 어떻게 그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 잠시 후 그는 또 쌀쌀맞게 한마디 내뱉었다.
  • “아이를 가진 여자라면 언제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야.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 이것은 아마 내가 그를 안 이래 그가 나에게 한 가장 인간미가 있는 말일 것이다.
  • 내 기억에 아무도 나에게 이런 감동적인 말을 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 작은 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 그는 오히려 얼굴을 창밖으로 돌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차는 시내로 향해 달리다가 어느 건물 앞에서 모진풍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장헌용은 나를 태우고 계속 앞으로 갔다. 나는 장헌용에게 물어보고픈 일이 많았지만 그의 굳은 얼굴을 보고 나는 이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
  • “도착했어요. 임안 씨, 내려주세요.”
  • 장헌용이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줬다.
  • “장 선생님, 이제 저를 임안 씨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요. 저를 안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 그도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이쪽으로 오시라고 했다.
  • 내가 고개를 들어 보니 그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화태 변호사 사무소다.
  • 장헌용은 주동적으로 설명하기를 유군이 이미 이혼 협의서에 서명했고 나를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은 날 서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안배된 느낌은 나는 매우 싫다. 하지만 유군이 나에게 한 일을 생각하니 나도 서명하는 것에 동의했다.
  • 아이의 양육권을 내가 갖기로 확정한 후 다른 세칙을 나는 검토하지 않고 협의서에 서명했다.
  • 사실 그 순간도, 나는 조금 슬펐다. 유군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허비해버린 3년의 세월 때문이었다.
  • 변호사 건물에서 나와 풍림별원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장헌용에게 물었다.
  • “장선생님, 서가경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끽소리 못하나요?”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좀 창피를 당했다. 그만둘 수밖에 없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
  • “임안씨가 궁금한 것은 넷째 형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나는 대답할 권리가 없어요.”
  •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실쭉 꺼리며 생각했다. 모진풍의 그 성격에 내가 물어보면 그는 더 말하지 않을 것이다.
  • 침묵 속에 풍림별원에 도착했다.
  •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소양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들어가 보니 소양이 아동용 수영복을 입고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 내가 오는 것을 보고 그는 기뻐하며 엄마를 불렀다. 그가 곧 수영을 배운다고 한다.
  • 모 선생님이 말하기를 아이가 체질이 안 좋고 운동도 많이 해야 해서 일부러 수영복과 수영 모자를 보내왔다고 하인이 나에게 설명했다.
  • “모 아저씨가 말했어요. 내 몸이 좋아지면 농구를 가르쳐 주시겠대요. 고수라고 했어요.”
  • 소양이 말했다.
  • 소양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즐거우면서도 슬프다. 눈앞의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이 느닷없이 찾아오다니. 호화 별장, 금의옥식.
  • 소양은 갑자기 총애를 받았다.
  • 걱정된다, 이 모든 아름다움은 꿈일 뿐. 이 모든 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옛날의 궁핍한 생활로 돌아가게 되면 소양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 자신은 또한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엄마, 무슨 생각해? 같이 수영할래?”
  • 소양의 말이 나의 생각을 되돌렸다.
  • “아니, 엄마는 수영 못해. 아줌마가 데리고 하면 돼.”
  • 나는 웃으며 말했다.
  • “엄마가 수영할 줄 모르면, 모 삼촌 보고 가르쳐 달라고 하면 돼.”
  • 소양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 하인들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모진풍이 없었지만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 한창 웃고 있는데 검은색 아우디가 별장 주차 구역으로 들어왔다. 기사가 내려서 뒷좌석 차 문을 열자 차에서 50세 정도의 예쁜 여인이 내렸다. 그녀는 화려한 옷매무새에 진주와 보석들로 단장했다.
  • 어디선가 본 듯하여 기억을 더듬었다. 모진풍의 결혼식장에서였다.
  • 하인들은 이미 마중 나와 얼굴 가득히 겁에 질려 일제히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췄다.
  • 예의상 나도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 그녀는 오만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 “내가 누군지 알아?”
  • 나는 사실 그녀가 누군지 짐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 “나는 진풍의 어머니다. 이 아이가 그의 아이라는 게 사실이냐?”
  •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에게 물었다.
  • 이 말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지금까지 나도 이 일이 도대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도 모진풍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수모를 당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
  • “왜 말을 안 해?”
  • 그녀는 이미 노한 기색이 역력했고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 나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맞다고 했다가 만약 아니라면? 반대로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모진풍이 결혼식에서 거짓말한 격이 된다.
  • “자기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몰라?”
  • 그녀의 말투는 더욱더 엄해졌다.
  • “아니면, 네가 우리 모가 집안의 가산을 탐내서 애를 갖다 이득을 좀 가로채려고? 너 같은 여자, 내가 많이 봤어. 만약 아이가 정말 진풍의 애라면, 아이는 두고, 너는 꺼져. 만약 아이가 진풍의 애가 아니라면 네가 데리고 같이 꺼져라.”
  • 그녀의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고, 조금도 상의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