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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아가씨가 아니야

  • 매니저는 나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사장님한테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공손하게 옆에 서있었다.
  • 모 사장은 의자에 앉아서 문서를 보고 있었는데 고개도 들지 않았고 손가락을 까딱 까닥 움직이더니 매니저가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매니저가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 나가려고 했지만 매니저는 나한테 남아있어라는 눈짓을 했다, 그리고 나가면서 문도 닫아버렸다, 지금 사무실에는 나와 모 사장 단둘이 남아있었다, 나는 더욱 긴장해서 머리를 숙였다.
  •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볼 가봐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이런 복잡 미묘한 심정을 어떻게 설명할지 몰랐다.
  • 그리고 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 가까워지더니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머리를 푹 숙인 채 꼼짝 않고 서있었다.
  • “고개를 들어봐.”
  • 목소리는 굵고 매력적이었지만 말투가 차가워서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 “공교롭게도 또 만났네.”
  • 목소리에는 약간의 농담과 조롱이 섞여있었다.
  • 역시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침착한 척 태연하게 말했다.
  • “모 사장님이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닌가요? 우린 만난 적이 없어요.”
  • 솔직히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둘은 단지 한차례 거래를 한 것이고 이왕 거래가 끝났으니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고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예전 일을 꺼내면 그가 괜히 내가 돈을 보고 그한테 매달리는 여자로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아마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그한테 매달리면서 환심을 사고 싶어 하니 그는 아마 그한테 순종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내 대답이 그한테 마음이 안 들었는지 말투는 더 싸늘해졌다.
  • “인사부서에 책임을 물어야겠네, 호텔에서 몸을 파는 아가씨가 어떻게 모 씨 계열사 직원으로 들어왔는지.”
  • 나는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
  • “난 아가씨가 아니에요!”
  • 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더니 경멸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비웃었다.
  • “아, 아마추어였군, 어쩐지 침대에서 소리도 제대로 못 내더라고.”
  • 내 얼굴은 또다시 화끈 달아올랐다, 고개는 저도 모르게 숙여졌고 더 이상 그한테 굴욕을 당하기 싫어 밖으로 나갔다.
  • 뒤에서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창녀 주제에, 상이라도 줄까?”
  • 나는 못 들은 척 사물실을 빠져나왔다.
  • 자리에 돌아온 후 내 머릿속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의 잘생긴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자신을 병신이라고 욕했다,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뭐 하냐고.
  • 드디어 퇴근 시간이 돌아왔고 나는 카드를 찍고 회사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퇴근시간이 한창이라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내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 소양이가 병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나 이대로는 도무지 언제 버스에 오를지 몰라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 이때 포르쉐 한 대가 내 옆으로 오더니 멈춰 섰다, 창문이 천천히 내려졌고 안을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모 사장이었다.
  • 그는 말이 없었고 눈으로 차에 올라타라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의 차에 올라탔다.
  • “어디로 가는 거야?”
  • 그는 나에게 담담하게 물었다.
  • “화동 병원으로 가요.”
  • 나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 “마침 같은 길이네.”
  • 그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 그리고 우리는 가는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그가 말이 없으니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분위기는 매우 어색했다.
  •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차가 병원 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는 나를 무시한 채 액셀을 밟더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네, 아까 분명 같은 길이라고 했는데 왜 차를 돌릴까?’
  • 나는 병실에 도착해서 보니 침대에는 소양이 아니라 다른 환자가 누워있었다.
  • 나는 화들짝 놀라 큰 소리로 소양을 부르며 병원에서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 하지만 나는 결국 아들을 찾지 못했고 병원 안내소로 다급하게 달려가서 문의했다, 담당자는 유소양이라는 환자는 오후에 퇴원 수속을 했고 보호자가 치료비 중 남은 몇천만 원을 모두 환불해서 떠났다고 했다.
  • 나는 경악했고 내가 아이의 보호자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수속을 한 사람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는 증명서도 제출하였고 병원은 어쩔 수 없이 퇴원 수속을 진행했다고 했다.
  • 생각을 해보니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유군 이 개자식밖에 없었다! 나는 그한테 바로 전화를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번 다시 돌아보기도 싫은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유군 씨와 시어머니가 모두 집에 있었다. 나는 온 집안을 뒤졌지만 아들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 나는 유군 씨한테 아이를 내놓으라고 소리쳤고 유군 씨는 바로 내 뺨을 때렸다.
  • “빌어먹을 년, 나를 두고 바람을 피워? 그러고도 애를 가지려고? 소양이가 너같이 천한 년을 어미라고 여길 것 같아?”
  • 나는 초조하고 화가 나서 똑같이 뺨을 한대 갈기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 “너야말로 쌍놈이야. 아이를 제멋대로 퇴원시킨 주제에 염치없이 병원비도 돌려받았어? 당장 내 아이를 돌려줘!”
  • 유군 씨는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더니 컴퓨터에 내 머리를 처박았다, 그리고 모니터링을 가리키며 말했다.
  • “천한 년, 이래도 승인을 안 해? 동영상이 이미 다 퍼졌는데 계속 아니라고 우길 거야? 임안, 나한테 2억 원의 위자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평생 아이를 볼 생각도 하지 마!”
  • 내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동영상은 나 자신이 맞았고 호텔에서 찍힌 모습이었는데 카메라 각도도 제대로 잡혀서 마침 그와 내가 함께 호텔에 들어서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호텔에서 몰카를 해서 인터넷에 뿌린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