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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 서윤은 참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눈물은 예고 없이 굴러떨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박희성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힘껏 밀쳐내며 말했다.
  • “너와 서민은 잘못이 없고 잘못한 사람은 나다? 너희들이 조금이라도 내 생각을 했다면 오늘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어. 박희성, 너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내게 말했어야 했어. 우린 헤어질 수 있어. 나 서윤은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너 서민, 입으로는 내 언니라고 하면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박희성을 좋아하면 나한테 왜 말하지 않았어? 둘이 눈이 맞았다면 나 또한 둘을 축복해줄 거야. 어쨌거나 그때 네가 없었더라면 나도 지금 없었을 테니까. 내가 너에게 빚진 건 평생 갚아도 모자란 거야? 어?”
  • 서윤이 말을 마쳤을 때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한 사람은 그녀의 친언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녀가 삼 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다. 그들이 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아프게 하는 걸까?
  • “너희가 그런 일을 하고도 내가 양보하고 축복해주기를 바라? 할아버지께 모두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너희들 양심은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어?”
  • 서윤은 줄곧 울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지금의 그녀는 서럽기 짝이 없었다.
  • “서윤아!”
  • 서민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서윤을 바라봤으나 오히려 박희성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 “너 왜 그런 말을 해? 넌 항상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었어. 나를 믿어줘. 다른 누구를 아프게 해도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너 설마 잊었어? 어릴 때 네가 납치되었는데 내가 너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어?”
  • “그래, 맞아. 네가 나를 구해줬어. 그러니까 난 평생, 네 앞에서 머리도 쳐들면 안 돼?”
  • 서윤이 실망한 듯 서민을 바라봤다.
  • “얼른 가. 내가 말했지. 너희가 뭘 어떻게 하려던 그건 너희들 일이고. 내가 너한테 빚진 건 이번에 다 갚았어.”
  • 서윤이 힘껏 문을 닫았다. 하지만 문을 닫은 그 순간 그녀는 홀연히 문에 기대에 스르륵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 밖에서 서민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가냘픈 목소리는 마치 서윤이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 뒤로 박희성의 독한 말이 들려왔다.
  • “서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너에게 정말 실망이야.”
  • 결국 세상은 조용해졌다. 서윤은 바닥에 앉아 두 손으로 팔을 감싸 안고 온몸을 웅크린 채 눈물로 무릎을 적셨다.
  • 얼마나 지났을까 서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약간 흐릿한 눈빛으로 바닥에서 일어섰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된다. 그녀는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 핸드폰 벨 소리가 다시 울렸다. 서윤은 발신자 표시에 뜬 이름을 보고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 “여보세요? 할아버지! 네, 저 방금 돌아왔어요.”
  • 서윤이 코를 훌쩍이며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들리기 위해 애썼다.
  • “외할아버지, 저 보고 싶었어요?”
  • “바보 같은 계집애! 바보 같아!”
  • 장시정이 안타까운 듯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 “내일 한 번 왔다가!”
  • 한편 서민과 박희성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박희성의 안색은 아주 나빴다. 서민도 그와 비슷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박희성을 떠보며 두 손으로 그의 정장 옷깃을 잡고 가련한 모습으로 말했다.
  • “희성아, 이제 어떡해? 서윤은 우리와 돌아가려 하지 않을 테고 할아버지는 반드시 우리 결혼을 허락하시지 않을 거야. 전에 내가 말했잖아. 서윤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고. 서윤이는 지금 우리가 죽도록 미울 거야. 서윤이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강했어. 무슨 일을 하든 그 누구의 체면도 생각해주지 않아. 희성아, 난 그저 너와 함께 하고 싶을 뿐이야. 너와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아.”
  • 서민은 말하며 박희성의 품에 뛰어들어 눈물을 쏟아냈다.
  • 박희성은 눈썹을 찌푸리며 가볍게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워낙 서윤에게 남아있던 조금의 미안함마저 깨끗이 사라졌다.
  • “걱정하지 마. 서윤이 뭘 하려던 난 그녀를 막을 거야. 우리의 혼인은 두 가문이 허락한 거야. 네 할아버지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난 상관 안 해. 우리 박씨 가문은 반드시 너를 받아들일 거야.”
  • 박희성의 맹세를 받아내자 서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박희성의 팔을 끌어안고 발끝을 들어 박희성에게 입을 맞췄다.
  • “희성아, 사랑해.”
  • “나도 사랑해!”
  • 박희성은 서민의 허리를 끌어안고 감정이 깊어진 듯 서민한테 키스했다.
  • 오랫동안 두 사람은 떨어지기 아쉬워했다. 서민은 박희성의 가슴팍에 기대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서윤, 네가 가장 사랑한 남자도 이젠 내 손에 들어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