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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오랜만이야 서윤 씨

  • 서윤은 하룻밤 자고 일어났으나 정신이 맑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그 속엔 창백한 얼굴에 두 눈이 부어오른 자신이 있었다. 서윤은 물을 떠서 자신의 얼굴에 뿌리고 얼굴에 혈색이 나타날 때까지 힘을 주어 두드렸다. 그리고 약간 멍한 얼굴을 한 채 두 손으로 세면대를 잡고 슬픔에 잠겨 자신을 바라보았다.
  • “서윤, 정신 차려! 지나갈 수 없는 고통은 없어!”
  • 서윤은 마음을 추스르고 화장을 시작했다. 낙담하고 초라한 몰골이 가려질 때까지 화장하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장시정의 전화를 보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바로 받았다.
  • “여보세요, 할아버지, 무슨 일이죠?”
  • “오늘 오라고 한 거 안 잊었겠지!”
  • 장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비록 나이가 들었으나 목소리는 젊은이처럼 들렸다. 이는 그가 교사로 오랫동안 학생을 가르친 연유일 것이다.
  • 서윤은 장시정의 말을 듣고 잠시 넋을 잃었다.
  • “할아버지, 저... 알겠어요, 돌아갈게요, 돌아가면 되잖아요.”
  • 서윤은 고민하듯 전화를 바라보고 한참 지나서야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섰다.
  • 워낙 일하러 갈 생각이었으나 요즘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니 그녀는 갑자기 생각을 바꿨다. 서윤은 근처의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난 후 외할아버지 장시정의 집으로 향했다.
  • 서윤이 J 시티를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 계속 밖에서 일하고 있었고 돌아온 적이 없었다. 그저 가끔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을 뿐이다.
  • 입구에 다다른 서윤은 약간 마음이 공허했다. 그러나 집사 배 아줌마가 곧 나타나 문을 열었다.
  • “돌아왔군요, 아씨. 왜 들어오지 않고 계셔요. 얼른 와요.”
  • 배 아줌마는 서윤의 손을 잡고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 “어르신께 오늘 손님이 찾아온다고 했어요.”
  • “손님이요?”
  • 서윤이 의아한 듯 물었다.
  • “무슨 손님이죠? 외할아버지께서 오늘...”
  • 서윤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외할아버지 장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승연아, 이렇게 오랫동안 이 선생님을 찾지 않는다니, 얼마나 바빴던 거냐?”
  • 서윤의 손엔 물건이 들려져 있었고 배 아줌마가 얼른 들어 주려 했다. 그녀가 고개를 드니 거실에 한 남자가 등을 보인 채 앉아있었다.
  • 다만 그 뒷모습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져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 “서윤이 왔어?”
  • 장시정은 웃으며 서윤을 바라봤으나 서윤의 손에 들린 선물을 보자 안색이 대뜸 굳어지며 말했다.
  • “오라면 그냥 올 것이지 뭘 사들고 왔어. 이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
  • 장시정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선물은 배 아줌마가 가져갔다.
  • “얼른 와, 할아버지가 너를 좀 잘 살펴보자.”
  • 서윤은 물건을 배 아줌마께 건네주고 슬리퍼로 갈아신고 들어갔다.
  • “오랜만이에요, 외할아버지, 저 너무 보고 싶었어요!”
  • 서윤은 애교를 부리듯 장시정의 팔을 안고 이리저리 흔들며 물었다.
  • “할아버지는 저 안 보고 싶었어요?”
  • “보고 싶긴 뭘 보고 싶어.”
  • 장시정은 서윤의 이마를 딱 때리며 말했다.
  • “이게 무슨 꼴이야,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 장시정은 말하며 서윤의 손을 끌었다.
  • “승연아, 선생님이 소개해줄게. 외손녀 서윤이야, 서윤아, 이 사람은 나의 제자 박승연이야.”
  • 서윤의 놀란 눈이 그녀의 심정을 드러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 “당신이 왜 여기 있죠?”
  • 박승연은 몸을 돌려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 그의 부드러운 눈동자가 서윤을 바라봤고 아주 의미심장한 말투로 인사했다.
  • “서윤 씨, 안녕하세요!”
  • 장시정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그는 이리저리 생각하는 듯한 눈빛으로 박승연과 서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 “서로 아는 사이니?”
  • 장시정의 그 눈빛을 보자 서윤은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이 들어 얼른 대답했다.
  • “하하, 한 번 본 사이에요. 제가 전에 좀 귀찮은 일이 있었는데 박승연 씨가 저를 도와줬어요. 그렇죠? 박승연 씨!”
  • 서윤은 박승연을 향해 힘껏 눈짓했다. 그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박승연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서윤의 위협을 받아들였다.
  • “맞아요, 선생님. 전에 서윤 씨와 한 번 만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서윤 씨가 지금 이렇게 기력이 왕성한 모습을 보니 이미 그때의 고통에서 벗어난 모양이네요?”
  • “...”
  • 서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실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 이 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