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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씨에 관한 전설

  • SH 옥상에는 박승연을 위한 방이 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서윤을 안고 들어갔고 이 시각 그녀는 마치 문어처럼 박승연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기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 그는 어렵게 몸에 달라붙은 서윤을 떼어놓았고 바로 욕실로 던져넣었다. 그는 크게 심호흡하고 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얼음 갖고 와.”
  • 박승연이 전화를 끊자 서윤이 욕조에서 기어 나왔다. 그는 팔을 뻗어 서윤을 다시 차가운 물 속에 눌러 넣었다.
  • “움직이지 마!”
  • 그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특히 욕조의 물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자 눈동자가 더 흔들렸다.
  • 주정은 아주 빨리 얼음 두 통을 들고 나타났다.
  • “도련님, 얼음 갖고 왔습니다.”
  • “잠시만.”
  • 박승연이 주정을 불러세웠다.
  • “얼음통을 놓고 그만 가봐.”
  • 박승연이 차갑게 말했다.
  • 주정은 박승연의 오늘 보인 행동에 적잖게 놀랐다. 그는 자기 보스가 오늘 평소와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단지 속으로 불만을 품었을 뿐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 박승연은 주정이 떠나는 것을 보자 그제야 얼음통을 들고 욕실로 왔다.
  • 서윤은 차가운 물 속에서 덜덜 떨고 있었으나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박승연은 눈썹을 찌푸렸고 안색이 몹시 나빴다.
  • 서윤은 자신이 죽게 될 거로 생각했다. 몸이 뜨거워 죽을 것 같은데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었다. 마치 얼음과 물속에 함께 있는 것 같아서 괴로움에 몸부림쳤으나 두 손이 그녀의 몸을 눌렀고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
  • 서윤이 다시 깨어났을 때 온몸이 쑤시고 나른했다. 그녀의 두 눈은 하얀색 천장을 보고 있었으며 의식이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 서윤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이불을 확 열어젖혔다. 그녀는 잠옷을 입고 있었고 몸에 그 어떤 불편함도 없었다. 다만 이 시큰거리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 “깼어?”
  •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서윤은 문득 문 쪽을 쳐다봤다. 그곳엔 싸늘하고 오만하며 흐트러진 옷차림을 한 남자가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범상치 않았다. 특히 그에게는 여자가 질투할 만한 아름다운 얼굴이 있었다.
  • 서윤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 남자를 몰랐다.
  • “당신 누구죠?”
  • 서윤이 입을 열자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 갈라지고 듣기 싫은 목소리는 오리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녀는 목이 바짝 말랐다.
  • 박승연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서윤의 말에 답장하지 않고 다가가 물 한 컵을 부어 서윤에게 건넸다.
  • 깔끔하고 잘생겼다.
  • 이것이 서윤이 박승연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 서윤도 그저 잠시 멈칫했을 뿐 곧바로 물컵을 받아들고 거의 거칠게 물 한 컵을 단번에 마셨다. 그리고 경계하듯 박승연을 보고 물었다.
  • “당신이 나를 구했어요?”
  • 박승연은 부인하지 않았다. 서윤은 오히려 안도한 듯 숨을 내쉬며 말했다.
  • “저기, 어제는 고마웠어요, 하지만...”
  • 서윤이 고개를 숙이고 자기 몸 위의 옷을 바라봤다.
  • 박승연의 검은 눈동자가 서윤의 정교한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 어젯밤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떠올랐다. 그리고 몸에 미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 “서윤 씨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어요.”
  • 박승연은 묻지 않은 것에 답하며 교묘하게 난감한 상황을 피해갔다.
  • 서윤은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다가 더 할 말이 없어지자 그저 이를 꽉 깨물고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반응하듯 말했다.
  • “제 이름이 서윤인 것은 어떻게 알았죠?”
  • “이상한가요? 오늘 서윤 씨에 대한 뉴스가 적지 않던데 서윤 씨는 모르고 있나요?”
  • 박승연이 손을 뻗어 정장 단추를 어루만지며 여유작작하게 말했다.
  • 그러나 서윤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 “뭐... 뭐라고요?”
  • “서윤 씨에 대한 전설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서윤 씨는 어느 버전을 듣고 싶은 거죠?”
  • “당신 누구야? 뭘 하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