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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당신은 좀 자제하면서 저에게서 떨어져요

  • 장시정은 곧바로 박승연의 말속의 뜻을 알아차리더니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 “이 계집애가 방금 타지에서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시차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승연아, 오늘 온 김에 남아서 식사라도 하고 가거라!”
  • 장시정이 말하며 배 아줌마를 불렀다.
  • “나가서 음식을 좀 사 와. 오늘 서윤이와 승연이가 모두 집에서 밥을 먹을 테니 얼른 가!”
  • 장시정은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배 아줌마의 손에 쥐여주었다.
  • 배 아줌마도 집안의 어른인 셈인데 장시정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웃으며 돈을 들고 나갔다.
  • “그럼 어르신, 아씨 그리고 박승연 씨는 어서 얘기들 나누세요.”
  • 서윤은 장시정이 배 아줌마와 얘기를 나누는 틈을 타서 박승연을 쳐다봤다. 그녀는 박승연과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 박승연의 블랙홀 같은 눈이 서윤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 “서윤 씨는 마치 저를 만난 것이 놀라운 일인 것 같네요.”
  • “헛소리, 당신은 안 놀랐어요? 당신은 정말 제 외할아버지의 제자였어요?”
  • 서윤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어쨌거나 박승연은 일반인이 아니었으니까.
  • 박승연은 눈썹을 치켜세울 뿐, 부정하지 않았다.
  • “당신이 보기에 저와 선생님께서 굳이 거짓말을 할 거라 여겨져요?”
  • 박승연이 물었다. 서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반박하려 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 장시정의 검은색 눈동자에 빛이 서렸고 신속하게 박승연과 서윤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 “승연아, 얘가 바로 내가 자주 말하던 서윤이야. 우리 서윤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했어. 그리고 지금은 일도 잘해서 회사의 이사가 되었어.”
  • 장시정이 손녀 자랑을 늘어놓으며 서윤을 있는 힘껏 칭찬했다. 특히 박승연은 진지한 얼굴로 맞장구를 치며 서윤을 이리저리 훑어보자 그녀는 온몸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 “됐어, 너희 젊은이들끼리 잘 얘기를 나눠. 난 서재에 가봐야겠어.”
  • 장시정이 서윤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 “서윤아, 할아버지를 대신해 손님인 승연이를 잘 보살펴 줘.”
  • 장시정은 서윤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서윤은 따라 나가려 했으나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는 박승연을 보고 입술을 꽉 깨물더니 결국 다시 앉았다.
  • “박승연 씨는 외할아버지의 어느 학번 학생이죠? 전 왜 한 번도 할아버지가 당신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죠?”
  • 박승연은 실눈을 뜨며 말했다.
  • “그래요? 선생님께서 자주 저에게 당신 얘기를 했었는데!”
  • 박승연이 말하며 몸을 일으켜 가까이 다가오자 서윤은 놀라서 얼른 뒤로 뺐고 목을 쳐들고 박승연을 바라봤다.
  • “저에게서 좀 떨어져요!”
  • “서윤 씨가 저에 대해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면 좀 더 빨리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 박승연이 가볍게 웃으며 서윤의 귓가에 숨을 불어넣듯 말했다.
  • “어쨌거나 선생님의 좋은 뜻을 저버리면 안 되잖아요!”
  • “당신...”
  • 서윤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만약 그녀가 아직도 외할아버지가 그녀를 이곳에 부른 이유를 모른다면 그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다만 그녀도 외할아버지가 이토록 마음이 급하신 줄 몰랐다. 그녀는 단지 실연했을 뿐이지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박승연일까.
  • 전날 그녀는 이미 박승연을 거절했는데 오늘 자기 외할아버지가 또 그녀를 그에게 떠밀었으니 박승연은 지금 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 “제멋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외할아버지는 그냥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진지하게 생각 마세요!”
  • 그녀는 실연했다고 해서 만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었고 게다가 아직 젊었기에 어떤 남자든 만나지 못할까.
  • “박승연 씨, 이렇게 하면 호흡이 곤란하지 않아요?”
  • 서윤은 곧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박승연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말했다.
  • “당신 나에게서 떨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