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윤이 차문을 벌컥 열었을 때, 박시오는 차 안에서 감자 칩을 와작와작 씹고 있었다. 그는 마치 어른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미간을 구겼다.
“예쁜 누나, 인제 왔어요?”
박시오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거 먹어봐요! 엄청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형이 그러는데 이건 정크 푸드라고 했어요. 그래도 맛있는걸요. 누나도 먹을래요? 특별히 누날 위해 남겨둔 거예요.”
연서윤이 아이를 째려봤다.
‘이건 내 감자 칩이라고...’
한 봉투 가득 담았던 간식이 이미 빈 봉투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를 위해 특별히 조금 남겨줄 생각을 했고 또 귀엽게 생긴 것을 봐서, 그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고마워.”
연서윤은 박시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나 어제 너희들이 얘기했던 나쁜 놈은 만나지 못했어.”
그러자 박민오가 먼저 답했다.
“그럼 아마 오지 않았을 거예요.”
“흠, 그래? 그럼 이제 너희를 어디로 보내줄까?”
연서윤은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만나지 못한 사람을 그녀가 무슨 수로 처리할까?
‘만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 뭐.’
하지만 아이들은 ‘보내준다’는 말에 놀란듯했다. 박시오가 작은 입술을 살짝 내밀고 처량하게 연서윤을 바라봤다.
“예쁜 누나, 누난 이제 내 여자잖아요. 그런데 왜 날 보내려는 거예요?”
연서윤은 코끝이 찡해졌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자신의 원래 집이 어디인지 기억도 못 하는 모양이었다.
“당신 집에 가요.”
박민오가 입을 열었으나 어딘가 명령처럼 들렸다.
“좋아! 예쁜 누나 집으로 가자!”
박시오도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
연서윤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녀는 씻지 못해서 찝찝하고 옷도 더러웠다. 게다가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여태껏 뭘 먹지도 못했다. 두 아이는 차에서 밤을 보냈으니 그녀와 아이들 모두 휴식이 필요했다.
“좋아. 그럼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결국 그녀는 도시 중심에 있는 자기 집, 원진 별장 구역으로 향했다.
이 구역은 땅값이 금값이었다. 도시 중심은 아파트도 아주 비싸니 별장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곳이 유명한 부자 마을이었다.
연서윤이 원진 별장에서 지낸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인테리어나 이사가 마침 금방 완성된 상태라 아직 딸아이를 데려오지도 못했다.
문을 열자 박시오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우와!”
‘이 별장, 너무 예쁜 거 아냐?’
집안은 인테리어는 마치 놀이공원 같았다.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진 거대한 미끄럼틀, 오션볼 수영장, 게임 구역, 캠핑 텐트에 엄청나게 큰 트램펄린과 체력 훈련을 위한 케이블 로드까지. 이 모든 것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실 이건 연서윤이 딸 하은이를 위해 준비한 생일선물이었다. 그런데 두 남자아이와 인연이 닿아 먼저 보여주게 되었으니 아이들이 먼저 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내 집이야. 너희 둘은 마음껏 놀아도 돼. 천천히 놀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꼬르륵”하는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박시오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 배고파요. 헤헤.”
“그럼 내가 먼저 케이크랑 과일 좀 가져오면 요기해. 곧 밥해줄 테니까. 어때?”
“좋아요!”
박시오가 환호를 지르며 오션볼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현재 박도겸의 집안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집안의 사람들에게 있어 두 작은 도련님은 가문의 하늘이었는데 지금 실종됐으니 하늘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다.
박도겸이 별장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안에서 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는 놈들! 머릿수가 몇인데 애 둘을 못 봐?!”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별장이 떠나갈듯한 목소리였다.
이 정도 위압감이라면 박도겸의 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일 리가 없었다.
박도겸은 걸음을 멈추고 바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번 사건은 도우미나 집안 하인을 욕하고 탓할 일이 아니었다. 유일한 문제라면 바로 그의 아들이 너무 ‘대단하다’는 것.
집사 오영우가 허리를 굽히고 자세를 낮춘 채 앞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어떻게 된 일이야?”
“어젯밤 두 작은 도련님께서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들떠있었죠. 하지만 도련님께서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박도겸의 얼굴이 그늘졌다.
확실히 아들의 생일을 챙겨준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어젯밤 연민영이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기도 했으나 스파이를 잡는 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생일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영우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작은 도련님들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다행히 민영 씨가 있어서 아이들을 위로해줘서 괜찮아졌어요. 그리고 전 전처럼 작은 도련님들을 씻기고 재웠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사라질 줄 누가 알았을까요. 이불 속에 베개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어요!”
오영우도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감시카메라는?”
“고장 났어요. 어젯밤 생일 파티가 끝난 후로 아무 기록도 없어요. 그래서 언제 나갔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갔는지도 몰라요.”
점점 더 기어들어 가는 오영우의 목소리. 이렇게 큰 저택에 도우미와 하인이 가득하므로 두 아이가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는데 정말 날아서 하늘로 솟아오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박도겸이 차갑게 피식 웃었다.
‘내가 아들을 얕봤네.’
오영우는 몰래 박도겸을 흘긋 바라봤는데 그는 전혀 조급하지 않은 듯했다. 도련님은 어려서부터 감정표현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들이 실종되었는데도 무덤덤할 수 있다니. 회장님께선 잔을 몇 개 부쉈는지 셀 수도 없었다. 친할머니가 아닌 임현숙마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는데 친아빠라는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사실 박도겸은 당연히 걱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재에 있던 그 총을 아들이 훔쳐 간 게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아이들은 회장님 카드도 훔쳐 간 것 같았다. 그의 큰아들은 절대 준비 없이 싸우지 않을 테니까.
총과 돈을 챙겼으니 그는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고작 4살이라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이용당할까 봐 걱정되었다.
하경원이 다급하게 달려와 말했다.
“대표님, 작은 도련님들께서 위치 GPS 시계를 버린 것 같습니다. GPRS에 두 분의 위치자 줄곧 술집으로 되어있어요.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술집?”
“어제 스파이를 잡으러 갔던 그 술집이요. 설마 작은 도련님께서 대표님을 찾으러 갔던 건 아니겠죠?”
박도겸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GPS 시계는 회장님께서 손주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박도겸의 총에 GPS 칩이 있었기에 그가 총의 위치만 찾으면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핸드폰을 열고 GPS 앱을 연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오늘 오전에 그는 여자의 지갑 속에 GPS 칩을 넣어 두었는데 앱에서 자신의 두 아들의 위치와 그녀의 위치가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