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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포옹

  • 살짝 열린 문틈으로 작은 머리가 빼꼼히 들어왔다.
  • “우리 아빠는요?”
  • “아래에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널 다치게 하지 않아.”
  • 연서윤이 아래층을 힐끔 보다가 물었다.
  • “배고프지 않아? 내려가서 뭐 좀 먹을까?”
  • 박시오는 자신의 형을 안쪽으로 밀고 쭈뼛쭈뼛 그의 뒤를 따랐다. 확실히 배가 많이 고팠다.
  • 두 아이는 함께 거실로 갔고 식탁에 놓인 향긋한 음식을 보며 군침을 흘린 박시오는 무서운 아빠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얼른 의자에 앉았다.
  • “와, 너무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 연서윤은 얼른 박시오에게 수저를 건넸고 박시오는 수저를 받아 허겁지겁 먹었다. 박시오에 비해 침착한 박민오는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 “정말 맛있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에요!”
  • 박시오가 입안 가득 음식을 물고 말했다.
  • “맛있으면 많이 먹어.”
  • 연서윤은 박시오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흐뭇했다.
  • 그는 순간 거실에 그 남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셋만 밥을 먹고 남자 혼자 거실에 두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았다.
  • “음... 같이 먹을래?”
  • 연서윤은 남자가 거절할 줄 알았다. 두 사람은 방금 알게 된 사이니 체면을 차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 “그래.”
  • 답을 마친 박도겸은 성큼성큼 걸어가 연서윤의 곁에 앉았다.
  • 연서윤은 흠칫 놀랐다.
  • ‘너무 서스럼없는 것 아냐?’
  • 그녀는 속으로 음식을 많이 차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주방으로 향해 박도겸에게 그릇과 수저를 내주었다.
  • 박도겸은 음식을 보며 색감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식욕을 자극하는 플레이팅을 보며 그는 수저를 들어 음식을 맛보았다.
  • 새콤달콤한 파인애플에 신선한 새우가 어우러져 풍미가 대단했다.
  • 박민오는 고개를 들어 연서윤과 박도겸을 번갈아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 ‘가족 같아.’
  • 박민오와 동생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들 역시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엄마랑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은 없었다.
  • “뭘 봐?”
  • 박도겸은 순간 아들의 눈빛을 느끼며 물었다.
  • “아니에요.”
  • 박민오가 얼른 고개를 숙이고 계속 밥을 먹었다.
  • 식사를 마치고 나서 박시오는 연서윤과 함께 빵을 만들겠다고 했고 두 아이는 연서윤과 함께 빵을 만들었다. 세 사람이 노닥거리는 사이 오후가 지나 빵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날이 어두워졌다.
  • 박시오는 아직 아쉬운 마음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고 박도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간다고 얘기하자마자 박시오는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 “아니면...”
  • 하루밖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연서윤은 아이들이 너무 좋았다.
  • “아니면 아이들은 여기서 자게 하지.”
  • 박도겸은 여기에 있어야지 여자를 더욱 상세하게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 연서윤은 그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녀 역시 그걸 바랐던 터라 흔쾌히 답했다.
  • “좋아.”
  • “그럼 나는?”
  • 박도겸의 짙어진 눈동자가 연서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 연서윤은 얼굴이 빨개졌다.
  • ‘그럼 그는 어떡하지? 설마 도겸 씨도 여기서 밤을 보내게 해야 하는 걸까?’
  • 어젯밤 그들이 함께한 밤을 떠올리자 연서윤은 얼굴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 ‘무슨 의미지?’
  •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이들도 있는데!”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그저 아이들이 당신에게 폐를 끼칠 까 걱정된 거였어. 혹시 다른 걸 원한다면...”
  • 박도겸은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그것도 나쁘지 않아.”
  • “싫거든!”
  • 연서윤은 얼른 뒤로 물러나며 신이 정성껏 빚은 듯한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 “잘 수 있는 방은 2개뿐이야! 만약 너도 묵으려면 소파에서 자!”
  • 말을 마친 연서윤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그녀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집에는 안방이 2개뿐이었다. 다른 방도 있긴 하지만 금방 이사를 온 탓에 하은에게 게임 구역을 만들어주는 것에 여념이라 다른 건 신경 쓸 새가 없었던 것이다. 하여 일단은 안방 2개 이외에 다른 방에는 가구조차 없었다.
  • “됐어. 너희 아빠가 동의했으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 얼른 샤워하고 자야지!”
  • “너무 좋아요!”
  • 박시오는 신나서 욕실로 향했다. 이미 자신의 몸을 예쁜 누나에게 보였으니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 박민오는 미동이 없었다.
  • “너는 안 씻어?”
  • 연서윤이 가운을 안고 멀뚱히 서있는 박민오를 향해 물었다.
  • 박민오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내가 씻을 거예요.”
  • “깨끗하게 씻을 수 있어? 괜찮아. 너희 둘 함께 씻기면 돼.”
  • “저는 남자고 누나는 여자예요.”
  • 풉.
  • 연서윤은 쿨한척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 “알겠어. 그럼 동생 먼저 씻길게.”
  • 연서윤은 욕실로 들어갔고 욕실에서는 이내 장난치는 소리가 들렸다.
  • 연서윤은 박시오를 씻기고 나서 침대로 향했고 박민오는 스스로 씻고 역시나 침대에 올랐다.
  • 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아이들은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연서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조금 듣더니 이내 잠에 들었다.
  • 연서윤은 시름을 놓고 하품을 하고는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아래층에 있는 남자가 떠올랐다.
  • 주인으로서 손님 대접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장롱에서 이불을 가지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 통화를 하던 박도겸은 고개를 들어 연서윤을 바라보다 멈칫했다.
  • 연서윤은 흰색 셔츠로 된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희고 긴 다리가 드러났고 방금 씻고 말린 머리를 가지런히 내려놓은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 만화에서 튀어나온 아름다운 여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 “그래, 그럼 그렇게 하고 끊을게.”
  • 박도겸은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연서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연서윤은 담요를 소파에 놓고 말했다.
  • “밤에 추우니까 이거 덮고 자.”
  • 화제가 없는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아무리 생각해도 할 얘기가 없었다. 어젯밤에 처음 봤는데 게다가 잤다니.
  • “그럼 난 먼저 올라갈게.”
  • 연서윤이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고 너무 급했던 탓인지 미끄러운 바닥 때문인지 휘청했다.
  • 박도겸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았고 연서윤은 그의 품에 안겼다.
  •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 연서윤은 얼른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박도겸이 그녀를 확 끌어당기며 말했다.
  • “그렇게 나한테 안기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