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5화 어디서 온 도둑놈이야

  • 한 무리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용진 별장 구역 3호 별장을 에워쌌다.
  • 박도겸이 차에서 내렸고 그의 깊은 두 눈동자에서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 어젯밤 스파이의 위치는 바이브 술집으로 고정되었는데 그 여자도 마침 그곳에 있었다. 게다가 스스로 박도겸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실종된 아들이 지금 그녀와 함께 있고 그녀는 마침 그의 이웃이라니.
  • 이 모든 것이 우연치고는 이상하리만치 잘 들어맞았다.
  • 박도겸이 속으로 이 별장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하경원이 옆에 다가와 물었다.
  • “대표님, 들어갈까요?”
  • “철수해.”
  • “네? 왜죠?”
  • ‘잘못 들은 건가?’
  • 아들의 위치를 찾아 부하들이 주위를 에워쌌는데 지금 철수하라니?
  • “철수해.”
  • 박도겸은 무미건조한 어조로 다시 한번 말했다.
  • 그는 이것저것 설명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그의 성격을 잘 아는 하경원도 그의 결정에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리라 여기고 어쩔 수 없이 모두 철수시켰다.
  • 박도겸은 문 앞으로 다가와 손쉽게 문을 열었다. 방 안의 인테리어를 본 그는 약간 놀란 것 같았으나 점점 이곳이 아이를 위해 준비된 곳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 ‘이 여자... 의도가 너무 분명하네.’
  • 그의 발걸음은 가벼워서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거실 중심까지 걸어왔을 때, 등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한기가 느껴졌다.
  • “어디서 온 도둑놈이야? 감히 내 집에서 도둑질할 생각을 해? 아주 미쳐 날뛰는 구나, 너?”
  • 조금 전 주방에서 요리하던 연서윤은 주방 환풍기를 끄자마자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 박도겸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천천히 뒤돌아섰다.
  • 그의 얼굴을 본 연서윤은 하마터면 손에 쥔 총을 땅에 떨어트릴 뻔했다.
  • ‘어젯밤의 그 선수?’
  •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찰싹 때렸다.
  • “이봐. 지금 이러는 거 재밌어? 내가 돈도 다 줬잖아. 내 집까지 찾아오는 건 너무했다는 생각 안 들어?”
  • 연서윤이 얼른 총을 숨겼다.
  • “선수면 선수답게 직업 정신을 갖고 도덕을 지켜야 하지 않아? 잠자리 끝, 돈 갖고 떠나면 끝. 서로 빚진거 없잖아. 뭐, 나한테 빌붙기라도 할 셈이야?”
  • 그 남자를 보며 연서윤은 짜증이 몰려왔다. 술김에 실수로 한 번 잤다고 집까지 쫓아온다고? 그나마 딸 하은이가 집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 박도겸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연기한다는 느낌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여자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정말 다 우연인 걸까.
  • 연서윤이 두 손을 모으고 가엾은 얼굴로 박도겸을 바라봤다.
  • “제발 부탁인데... 대체 얼마를 원하는 거야? 내가 다 줄게, 응? 우리 만난 적 없는 거로 해줘. 내가 나중에 돈 많은 여자 몇 명 소개해 줄게. 어때?”
  • 그때, 박시오가 눈을 비비며 위층에서 걸어 내려왔다. 아이들은 놀다 지친데다 어젯밤에 거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기에 위층에서 잠들었었다.
  • “쉬 마려워.”
  • 연서윤이 다급하게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그녀는 박도겸의 곁을 지나갈 때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 “아이가 집에 있으니까 말조심해.”
  • 말을 마치고 그녀는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 “이리 와, 내가 화장실 데려가 줄게.”
  • 박시오가 눈을 비비며 아래층에 있는 남자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 “아...빠?”
  • 그 말에 놀란 연서윤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 ‘젠장. 이게 무슨 상황이야?’
  • 박시오는 자신이 환각을 본 줄 알고 다시 한번 눈을 비볐다. 하지만 아래층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흉악한’ 아빠였다.
  • “아빠!”
  • 조금 전, 환청을 들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연서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아빠라고 했어. 분명히.’
  • 연서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도겸을 바라봤고 손가락으로 박도겸과 박시오를 번갈아 가리켰는데 그녀의 입술마저 가늘게 떨려왔다.
  • “내려와.”
  • 박도겸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으나 듣고 있으면 공기가 차가워질 만큼 서늘했다.
  • “싫어요!”
  • 박시오가 후다닥 2층 방으로 달려서 올라가 방문을 “쾅!”닫아버렸다.
  • 문 닫는 소리에 온 집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연서윤은 퍼뜩 놀라며 박도겸을 향해 물었다.
  • “너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어?”
  • “맞아.”
  • 연서윤은 박도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직 이 정도로 잘생긴 미남만이 저 둘처럼 빛나는 미모를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말 그렇다면 내가 참견 한마디 해야겠어.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뭐든 할 수 있잖아. 왜 굳이 선수로 사는 건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 그녀는 팔짱을 끼고 설교하다가 갑자기 답답한 듯 고개를 저었다.
  • “아니지. 선수라면 결혼한 적이 없을 텐데? 여자친구가 있을 리도 없고. 설마...”
  • 연서윤은 더 얘기하지 않았다.
  • 그녀 본인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했었다. 이런 일을 당한 여자는 피해자지만 남자가 피해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 연서윤이 박도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고 그런 그녀의 손을 바라보는 박도겸의 눈속에 혐오스러운 빛이 살짝 내비쳤다.
  • “그런 일을 당했다면 정말 안 됐어. 하지만 이미 아이를 낳았으니 부모로서 끝까지 책임져야지. 왜 부잣집에 보내서 도련님으로 만들어? 게다가 그 나쁜 새끼의 아들로 살아가게 만들다니.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먹고 자는 건 걱정 없겠지만 정말 행복할까? 아이가 원하는 건 함께 있어 주는 거야.”
  • “나쁜 새끼?”
  • 박도겸이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위층을 바라봤다.
  • ‘이 녀석들, 이야기를 꾸미는 재주가 있었네?’
  • 연서윤은 턱을 살짝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 “이렇게 하자. 나랑 이 아이들도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으니까. 내가 돈을 줄게. 넌 작은 도시로 내려가 규모가 작은 장사를 하며 아이를 키워. 그 나쁜 새끼가 너희들 찾지 못하게 하고 거기서 잘 살아.”
  • 연서윤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박도겸은 그녀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필요 없어. 그... 놈이 이미 내 아들 돌려줬으니까.”
  • “돌려줬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 연서윤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 “그... 놈 아내가 임신했어.”
  • 그러자 연서윤이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 “정말? 진짜 잘됐다. 그놈도 운이 엄청 좋네? 나이 가득 먹고 아내를 임신시킬 수 있다니. 잘됐어, 진짜 잘됐어.그럼 적어도 네가 네 아들을 희생해야 할 일은 없잖아.”
  • “그래서 이번에 아이들을 집에 데려가려는 거야.”
  • “절대 함께 가지 않을 거예요!”
  • 위층에서 박시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 예쁜 누나랑 같이 살 거예요!”
  • “나와!”
  • 박도겸이 위층을 향해 크게 외쳤다.
  • 그는 자기 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가 손주들을 오냐오냐하며 키워 아이들은 버릇이 없었다. 게다가 박도겸이 자주 출장 다녔기에 아이들과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
  • 조금 전 박도겸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연서윤이 말했다.
  • “이봐, 그렇게 소리 지르면 애들이 얼마나 놀라겠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새아빤 줄 알겠어. 됐어, 내가 할게.”
  •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노크했다.
  • “배고프지 않아? 내가 맛있는 거 만들었는데. 파인애플 넣고 지은 밥 먹어봤어? 따끈따끈한 후루츠 팬케이크도 있는데. 이따가 우리 같이 빵도 만들어 보자.어때?”
  • 박도겸은 아래층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약간 웃겼다. 자신에겐 약간 험악한 어조로 얘기하더니 뜻밖에도 아이들과 얘기할 땐 부드럽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