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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열

  • 연서윤은 눈을 크게 떴다.
  • ‘그 꽃다발!’
  • 그렇다. 꽃다발 역시 직원이 술과 함께 가져온 것이다. 직원은 다만 그녀에게 술을 먹는 것을 지켜보라는 것만 얘기했기 때문에 연서윤은 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 꽃다발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 분명 꽃다발에도 약을 탄 것이다. 꽃의 향기를 타고 약이 확산될 수 있게 말이다.
  • ‘정말 지독하군!’
  • 연서윤은 연민영의 지독한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주의를 했지만 여전히 걸려들었으니 말이다.
  • 이런 방법까지 동원하여 그녀에게 약을 먹이려 했던 연민영이 그녀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 박도겸은 얼굴이 달아오른 연서윤을 보더니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고 말했다.
  • “내가 도와줄 수 있어.”
  • 연서윤은 그제야 박도겸을 바라보았다. 잘생긴 얼굴을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심지어 약에 취한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다.
  • “호텔로 가.”
  • 그녀의 모습을 하은이 보게 해서는 안 된다.
  •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들어간 연서윤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 “내가 얘기 했잖아. 도와줄 수 있다고. 한 번을 잤는데 두 번은 못 자겠어?”
  • 박도겸의 말에 연서윤이 생각했다.
  • ‘그래, 한 번을 잤는데 또 자면 뭐 어때?’
  • 연서윤은 박도겸을 보며 혀로 자신의 입술을 적시며 천천히 박도겸에게 다가갔다.
  • 그녀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 몸이 불에 타는 것 같았는데 물이 필요했다. 박도겸이 바로 그녀의 물이었다.
  • 박도겸의 매력적인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지만 겹친 박도겸의 얼굴도 무척이나 잘생겼다.
  • 연서윤은 약에 취하지 않아도 박도겸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 그녀는 박도겸의 목을 감싸고 발꿈치를 들어 바짝 얼굴을 들이댔다.
  • 박도겸은 그녀의 작은 손이 자신의 목을 힘껏 감쌌다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달아오른 얼굴이 무척이나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 그들의 거리는 너무 가까운 나머지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그녀의 눈초리가 그의 얼굴에 닿을 것 같았다.
  • 연서윤의 입술이 박도겸의 입술에 닿기 직전 그녀는 힘껏 그를 밀치고 욕실에 들어갔다.
  • “쾅.”
  • 하는 소리와 함께 욕실 문이 닫혔다.
  • 박도겸이 멍하니 서있었다.
  • “들어오지 마!”
  • 연서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내가 도와줄 수 있다니까.”
  • “네 도움 필요 없어!”
  • 연서윤은 욕조에 찬물을 가득 받고 숨을 들이켜고 욕조 속에 들어갔다.
  • 뼈까지 파고드는 차가움에 그녀는 이성을 되찾았다.
  •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니까?”
  • “꺼져! 지난번에는 술만 안 마셨어도...”
  • 연서윤은 말을 잇지 않았다.
  • 박도겸은 문밖에서 입꼬리를 올렸다.
  • ‘그날은 고수더니 오늘이 본모습이었군.’
  •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연서윤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 “야, 왜 말이 없어?”
  • “무슨 말?”
  • “물이 너무 차가워서 주의를 분산시킬 만한 게 필요해.”
  • 차가운 물로 체온을 내릴 생각을 하는 그녀가 똑똑하다고 생각한 박도겸은 욕실 밖에 앉았다.
  • “우리 알게 된지도 3일이나 지났는데 네 이름이 뭔지 몰라.”
  • “이겸이야.”
  • 이는 그의 엄마의 성씨이다.
  • “이겸? 너랑 어울리는 이름이네.”
  • 차갑고 까칠한 느낌이 그와 무척이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연서윤은 차가운 물속에서 몸을 덜덜 떨며 주의력을 분산시키려고 줄곧 박도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족히 3시간은 찬물 속에 있자 연서윤의 약기운도 떨어졌다.
  • 그녀는 박도겸에게 옷을 사 오라고 부탁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향했다.
  • 집에 돌아가자 식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하은은 방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연서윤을 보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 “엄마,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 연서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했다.
  • “하은이 보고 싶어서 왔지. 우리 며칠이나 떨어져 지냈잖아. 오자마자 날 데이트나 보내고. 너무해.”
  • 연서윤은 말을 하며 하은이를 그네에서 안아 내렸다.
  • “엄마가 시집 못 갈까 걱정돼서 그러잖아요.”
  • 하은은 입을 삐죽이며 답했다. 정말 걱정을 많이 끼치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 “뭐 먹고 싶어? 엄마가 해줄까?”
  • “아뇨, 배달시켰어요.”
  • 얼마 뒤 배달이 도착했고 처음으로 A국에 온 하은이는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두 모녀는 나란히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 “엄마, 그 아저씨 엄청 멋져요.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잘생겼어요. 유일하게 엄마랑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꽉 잡아요.”
  • 연서윤은 화제를 돌리고 싶었지만 하은이가 계속 박도겸의 얘기를 했다.
  • “하은아,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거야. 너 오늘 처음보는 거잖아. 그 사람의 상황을 하은이는 몰라. 그 사람은 돈이 없어.”
  • 하연은 개의치 않게 말했다.
  • “엄마가 돈 있잖아요. 그렇게 돈 많이 벌어서 어디 쓰려고요? 무슨 일이든 돈에 구속 받지 않기 위함이잖아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엄마한테 돈은 넘치니까 사랑만 있으면 돼요.”
  • 연서윤은 딸의 순진한 얼굴을 보며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
  • “폰 압수할까?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 하은이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 “헤헤, 화내기는. 나는 맞는 말만 했는걸요! 흥!”
  • 하은이 우쭐하며 말했다.
  •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두 아들이 있어. 쌍둥이야.”
  • 하은이 멈칫하다가 말했다.
  • “그럼 더 잘 됐죠! 아들이 있으니까 엄마가 아들을 낳을 필요는 없어요! 아저씨에게는 아들이 있고 엄마에게는 딸이 있고. 공평하잖아요. 앞으로 나랑 놀아줄 사람도 있고요.”
  • 하은은 연서윤의 배에 난 제왕 절개 상처를 보며 아이를 낳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아이는 엄마가 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무서웠다.
  • “또 많은 단점이 있어.”
  • “하지만 엄마도 단점 많잖아요!”
  • “그는...”
  • 연서윤은 선수라는 말을 할 뻔했지만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 “엄마, 기회는 잡으라고 있는 거예요. 아무튼 나는 둘이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 연서윤은 딸에게 백기를 들었다.
  • 그날 밤 연서윤과 하은은 같은 침대에서 잤는데 둘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하은이 계속 아저씨 얘기를 하는 바람에 연서윤은 머리가 아팠다.
  • 연서윤은 새벽에 몸이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깼다. 이마를 만져보자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 ‘아까 찬물에 샤워해서 그런가 봐.’
  • 그녀는 애써 일어났고 이불이 바닥에 떨어지는 바람에 하은이 잠에서 깼다.
  • “엄마...”
  • “괜찮아. 엄마 물 마시려고. 하은이는 계속 자.”
  • 하은은 연서윤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일어나 연서윤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 “엄마, 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