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겸은 그녀가 내빼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리며 화내는 모습의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연서윤은 문을 잠그고 침대에 올라갈 때까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솔직히 그녀가 아무리 노범준을 사랑했다고 해도 이토록 설레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연서윤은 아직도 뜨거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하지만 박도겸이 확실히 멋있긴 했다. 훌륭한 몸매에 조각 같은 얼굴까지.
하지만 선수라니.
“에휴, 연서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얼른 자!”
연서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야밤에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연서윤은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갔지만 방은 이미 비어 있었고 소파에도 사람이 없었다.
탁자에 메모가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데려가. 실례 많았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연서윤은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 가버리다니.’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끌벅적했던 어제를 떠올리니 조용한 집안이 꽤나 썰렁했다.
더케이 그룹.
박도겸은 대표 사무실에 앉아 문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연서윤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심란했다. 도저히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침에 박의성의 전화에 잠이 깬 그는 아들을 데리고 오라는 박의성의 성화에 못 이겨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녀의 집을 떠났다.
하경원이 문서 하나를 박도겸의 책상에 놓으며 말했다.
“대표님, 알아보라고 하신 여자의 자료입니다.”
박도겸은 그제야 손에 있던 펜을 내려놓고 문서를 들고 펼쳤다.
연서윤.
‘이름이 연서윤이구나.’
그녀의 이름에 연서윤의 예쁜 얼굴이 다시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성 그룹의 대표입니다. 그룹의 산하에 있는 모비스 웨딩이 3년 사이 큰 비약을 이뤘습니다. 다른 자회사인 블러썸 향수 역시 2년 동안 유명해졌는데 그로 인해 연서윤이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어요. 산하에 하고 있는 사업이 많은데 여러 분야가 있더라고요. 유일한 공통점은 모두 돈이 된다는 거예요.”
하경원의 소개를 들으며 박도겸은 문서들을 살폈다.
“4년 전에 임신을 했는데 아이를 낳고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러고 나서 F 국으로 가서 창업을 한 모양입니다. 아주 대단한 여자예요. 뒷조사를 했는데 아주 깨끗해요. 아마 우리가 찾던 스파이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박도겸이 고개를 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서윤 씨는 연민정 씨의 배다른 언니에요. 비록 집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대표님께서 더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연민영 씨에게 묻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연민정은 그의 아이들의 생모로서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날 누군가 그에게 약을 탔고 여자만이 해독 약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
10개월 뒤, 연민정은 두 아이를 데리고 연정운네 저택에 가서 그날 그와 정사를 나눴던 여자가 본인이라고 알렸고 친자확인을 통해 아이들이 박도겸의 것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하지만 박도겸은 연민정이라는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에는 확실히 격정이 넘쳤지만 연민정에게는 흥미가 없었다.
박도겸이 눈썹을 튕겼고 하경원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박도겸은 다른 사람이 그의 앞에서 연민정을 들먹이는 것이 싫었다.
“아무것도 없던 여자가 몇 년 사이에 갑부가 되었다고? 이상해.”
박도겸은 문서를 한쪽에 던졌다.
하경원은 조금 억울했다. 박도겸을 따른 시간 동안 줄곧 자신의 능력을 믿었던 박도겸이었지만 오늘은 그를 믿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건 내가 직접 조사할게. 가 봐.”
사실 그날 밤, 그는 진작 연서윤의 별장을 모두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스파이라면 집에 단서가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연서윤에게 엄청난 흥미를 가졌다.
한참 뒤 박도겸의 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자마자 박의성의 욕이 들렸다.
“어제 민오와 시오를 데리고 어딜 간 거야? 시오가 울며 불며 예쁜 누나를 찾아. 너 설마 애들 데리고 이사한 곳에 간 거 아니지? 너 이 새끼! 너...”
박도겸은 바로 전화를 끊고 차 키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모비스 웨딩.
5층으로 된 건물은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된 웨딩 숍이었다. 3개월 전 개업할 때부터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모비스 웨딩은 근 몇 년간 아주 유행인 웨딩 브랜드였는데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 A국에만 해도 몇십 개의 지점이 있었다. 베일 시티와 같은 대도시에 역시 한 개의 지점이 오픈되었다.
빨간색의 야구점퍼와 흰색의 모자를 쓴 연서윤은 학생 같았다.
“대표님, 지금 회의가 있어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언제 오세요?”
연서윤은 점장의 문자를 보고는 급히 답장했다.
“먼저 일 보세요.”
그녀를 신경 쓰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연서윤은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에는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가 구비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커피를 타서 마시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경우에요? 손님을 이렇게 오래 내버려 둬도 되는 거예요?”
소란스러운 소리에 연서윤이 얼른 보자 오래 기다린 손님이 성화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다.
“앗.”
너무 빨리 달렸던 탓에 누군가와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예요!”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든 연서윤은 연민영의 분노에 찬 얼굴과 마주했다.
연민영은 이곳에서 연서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너였어?”
그녀는 연서윤을 훑어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물었다.
“여기서 일해?”
이곳에서 일하는 것을 빼고 연민영은 연서윤이 웨딩 숍에 있는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이건 어떻게 할거야?”
연민영의 뒤에 있던 점장의 비서 추현아가 급히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연민영 씨, 정말 죄송합니다. 얼른 사과하지 않고 뭐해요!”
추현아는 얼른 연서윤에게 다그쳤다. 어제 출근을 시작한 그녀이기 때문에 연서윤을 알지 못했고 연서윤이 일개 직원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