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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돈이 많은 여자

  • “이것 놔!”
  • 연서윤은 불편한 자세로 박도겸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네가 스스로 안겨 놓고는 나더러 놓으라니?”
  • “말은 제대로 해야지! 당신 아들이 위층에 있다고! 아빠가 돼 가지고 왜 이래 진짜!”
  • 연서윤은 소파의 끝을 잡으며 박도겸의 몸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박도겸을 노려보며 말했다.
  • “변태!”
  • 말을 마친 연서윤은 도망치듯 위층으로 올라갔다.
  • 박도겸은 그녀가 내빼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리며 화내는 모습의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 연서윤은 문을 잠그고 침대에 올라갈 때까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 솔직히 그녀가 아무리 노범준을 사랑했다고 해도 이토록 설레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연서윤은 아직도 뜨거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 하지만 박도겸이 확실히 멋있긴 했다. 훌륭한 몸매에 조각 같은 얼굴까지.
  • 하지만 선수라니.
  • “에휴, 연서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얼른 자!”
  • 연서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 ‘야밤에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연서윤은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갔지만 방은 이미 비어 있었고 소파에도 사람이 없었다.
  • 탁자에 메모가 있었다.
  • “아이들은 내가 데려가. 실례 많았어.”
  •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연서윤은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 ‘그냥 이렇게 가버리다니.’
  •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끌벅적했던 어제를 떠올리니 조용한 집안이 꽤나 썰렁했다.
  • 더케이 그룹.
  • 박도겸은 대표 사무실에 앉아 문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연서윤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심란했다. 도저히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 아침에 박의성의 전화에 잠이 깬 그는 아들을 데리고 오라는 박의성의 성화에 못 이겨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녀의 집을 떠났다.
  • 하경원이 문서 하나를 박도겸의 책상에 놓으며 말했다.
  • “대표님, 알아보라고 하신 여자의 자료입니다.”
  • 박도겸은 그제야 손에 있던 펜을 내려놓고 문서를 들고 펼쳤다.
  • 연서윤.
  • ‘이름이 연서윤이구나.’
  • 그녀의 이름에 연서윤의 예쁜 얼굴이 다시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 “도성 그룹의 대표입니다. 그룹의 산하에 있는 모비스 웨딩이 3년 사이 큰 비약을 이뤘습니다. 다른 자회사인 블러썸 향수 역시 2년 동안 유명해졌는데 그로 인해 연서윤이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어요. 산하에 하고 있는 사업이 많은데 여러 분야가 있더라고요. 유일한 공통점은 모두 돈이 된다는 거예요.”
  • 하경원의 소개를 들으며 박도겸은 문서들을 살폈다.
  • “4년 전에 임신을 했는데 아이를 낳고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러고 나서 F 국으로 가서 창업을 한 모양입니다. 아주 대단한 여자예요. 뒷조사를 했는데 아주 깨끗해요. 아마 우리가 찾던 스파이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 박도겸이 고개를 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 “연서윤 씨는 연민정 씨의 배다른 언니에요. 비록 집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대표님께서 더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연민영 씨에게 묻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 연민정은 그의 아이들의 생모로서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 그날 누군가 그에게 약을 탔고 여자만이 해독 약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
  • 10개월 뒤, 연민정은 두 아이를 데리고 연정운네 저택에 가서 그날 그와 정사를 나눴던 여자가 본인이라고 알렸고 친자확인을 통해 아이들이 박도겸의 것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 하지만 박도겸은 연민정이라는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에는 확실히 격정이 넘쳤지만 연민정에게는 흥미가 없었다.
  • 박도겸이 눈썹을 튕겼고 하경원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박도겸은 다른 사람이 그의 앞에서 연민정을 들먹이는 것이 싫었다.
  • “아무것도 없던 여자가 몇 년 사이에 갑부가 되었다고? 이상해.”
  • 박도겸은 문서를 한쪽에 던졌다.
  • 하경원은 조금 억울했다. 박도겸을 따른 시간 동안 줄곧 자신의 능력을 믿었던 박도겸이었지만 오늘은 그를 믿지 않았으니 말이다.
  • “이건 내가 직접 조사할게. 가 봐.”
  • 사실 그날 밤, 그는 진작 연서윤의 별장을 모두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 만약 그녀가 스파이라면 집에 단서가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연서윤에게 엄청난 흥미를 가졌다.
  • 한참 뒤 박도겸의 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자마자 박의성의 욕이 들렸다.
  • “어제 민오와 시오를 데리고 어딜 간 거야? 시오가 울며 불며 예쁜 누나를 찾아. 너 설마 애들 데리고 이사한 곳에 간 거 아니지? 너 이 새끼! 너...”
  • 박도겸은 바로 전화를 끊고 차 키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 모비스 웨딩.
  • 5층으로 된 건물은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된 웨딩 숍이었다. 3개월 전 개업할 때부터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 모비스 웨딩은 근 몇 년간 아주 유행인 웨딩 브랜드였는데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 A국에만 해도 몇십 개의 지점이 있었다. 베일 시티와 같은 대도시에 역시 한 개의 지점이 오픈되었다.
  • 빨간색의 야구점퍼와 흰색의 모자를 쓴 연서윤은 학생 같았다.
  • “대표님, 지금 회의가 있어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언제 오세요?”
  • 연서윤은 점장의 문자를 보고는 급히 답장했다.
  • “먼저 일 보세요.”
  • 그녀를 신경 쓰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연서윤은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에는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가 구비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커피를 타서 마시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 “이게 무슨 경우에요? 손님을 이렇게 오래 내버려 둬도 되는 거예요?”
  • 소란스러운 소리에 연서윤이 얼른 보자 오래 기다린 손님이 성화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다.
  • “앗.”
  • 너무 빨리 달렸던 탓에 누군가와 부딪쳤다.
  • “죄송합니다!”
  •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예요!”
  •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고개를 든 연서윤은 연민영의 분노에 찬 얼굴과 마주했다.
  • 연민영은 이곳에서 연서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너였어?”
  • 그녀는 연서윤을 훑어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물었다.
  • “여기서 일해?”
  • 이곳에서 일하는 것을 빼고 연민영은 연서윤이 웨딩 숍에 있는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 “그럼... 이건 어떻게 할거야?”
  • 연민영의 뒤에 있던 점장의 비서 추현아가 급히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 “연민영 씨, 정말 죄송합니다. 얼른 사과하지 않고 뭐해요!”
  • 추현아는 얼른 연서윤에게 다그쳤다. 어제 출근을 시작한 그녀이기 때문에 연서윤을 알지 못했고 연서윤이 일개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 연민영이 콧방귀를 뀌며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말했다.
  • “사과로 될 일이면 경찰이 왜 있어? 얼른 닦아.”
  • 그녀는 눈썹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 “꿇어서 닦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