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8화 여보?

  • “꿇, 꿇어서...”
  • 추현아는 조금 심했다는 생각에 말했다.
  • “연민영 씨, 그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면 옷을 배상하게 해드릴까요?”
  • “저런 사람이 내 옷을 배상할 수나 있을 것 같아요?”
  • 연민영이 금방 네일을 마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 “깨끗하게 닦으라고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비는 베풀었어.”
  • 추현아는 연민영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연정웅네 집안의 큰 아가씨로서 노범준네 집안의 사모님이 될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척을 질 수가 없었다.
  • 오늘 첫 출근인데 이런 일로 직장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꿇을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 “빨리 깨끗하게 닦아요! 연민영 씨와 척을 진다면 멀쩡히 나갈 수는 없을 거예요.”
  • 연서윤은 4년이 지났지만 연민영의 거만한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에 놀랐다.
  • 도도한 태도의 연민영은 말하지 않아도 연서윤이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연정웅네 집안을 떠나서 아무것도 없이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고 젖먹이 딸까지 데리고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 연서윤이 꿇고 자신의 옷을 닦는 순간을 기다리던 연민영의 머리 위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졌다.
  •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연서윤이 마시다가 남은 커피를 그녀의 머리에 쏟아버린 것이다.
  • “연서윤, 너 미쳤어? 이 아줌마가 진짜!”
  • 연서윤은 손에 있던 일회용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말했다.
  • “아줌마가 남의 남자를 채간 년보다는 낫지.”
  • “너...”
  • 추현아가 얼른 휴지로 닦으며 사과했다.
  • “연민영 씨,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 정말 미쳤어?”
  • 연민영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커피를 닦고 연서윤의 당당한 얼굴을 보며 침착을 유지했다.
  • “그래, 내가 네 남자를 채갔어. 그런데 뭐? 네가 능력이 없어 남자를 빼앗겼으면서 나랑 뭔 상관이야? 나한테 커피를 붓는 것 말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연민영이 비아냥거렸다.
  • “나 질투하는 거야? 내가 노범준네 집안의 사모님이 될 거라서? 너는 뭔데? 얼굴도 모를 남자의 애를 임신하고 젖먹이 딸을 데리고 잡일이나 하는 꼬락서니를 봐.”
  • 바로 이때 문이 열리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이 입구에 나타났다. 근접할 수 없는 분위기의 그는 지옥에서 올라온 저승사자와도 같은 분위기를 뿜었다.
  • 그의 곁에는 그를 똑 닮은 아이 둘이 있었는데 세 사람이 입구에 있으니 그야말로 눈이 호강했다.
  • 연서윤은 경악한 눈빛이 되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왜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나타났는지 몰랐지만 기왕 왔으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여보!”
  • 연서윤은 활짝 웃으며 박도겸에게 달려가 그의 팔짱을 꼈다.
  • 연민영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연서윤과 방금 들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 박도겸은 공식 선상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심지어 기사에도 그의 사진이 실린 적이 없었다.
  • 연민영의 동생 연민정이 박도겸네 집안의 예비 사모님이긴 하지만 연민영은 박도겸을 본 적이 없었다. 박도겸이 연정웅네 저택에 간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 이토록 잘생긴 남자를 보자 연민영 역시 깜짝 놀랐다.
  • 게다가 연서윤이 여보라고 부르다니.
  • 연서윤은 박도겸을 향해 눈을 찡긋하고 두 아이에게도 눈짓을 하고는 박도겸의 팔짱을 끼고 연민영의 앞에 다가가 말했다.
  • “소개할게. 내 남편이야.”
  •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연서윤이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 “도성 그룹의 대표야.”
  • 추현아가 그녀의 소개에 까무러칠 뻔했다.
  • 도성 그룹의 대표는 그녀의 상사이기도 했다. 모비스 웨딩이 도성 그룹 산하의 회사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 추현아는 사모님의 미움을 산 것이다.
  • 연민영은 눈을 어찌나 크게 떴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전설 속의 도성 그룹 대표는 아주 신비스러운 사람으로서 성별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회사였다. 시가가 노씨 그룹을 월등히 초월했고 연정웅네 집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노범준 역시 줄곧 도성 그룹의 대표와 인연을 쌓고 함께 협력하고 싶어 했다.
  • 연민영의 입꼬리가 떨렸다.
  • “이, 이들은?”
  • 그녀가 아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 “내 아이들이야. 쌍둥인데 3살이야.”
  • 추현아는 급히 박도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 “대표님, 죄송합니다. 저, 저 정말 몰랐어요. 이, 이분이...”
  • “당신 해고야.”
  • 박도겸의 싸늘한 목소리는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 연서윤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그의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에 조금 설렜다.
  • 추현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엄마, 이 못생긴 여자는 누구예요? 왜 우리 가게에 있어요? 머리는 왜 저렇게 라면 같아요? 거지예요?”
  • 박시오가 박도겸과 연서윤의 중간에 파고 들어가 연서윤의 손을 잡고 물었다.
  • 박도겸은 아들을 힐끔 바라보며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 연민영은 박시오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 유행하는 히피펌을 했는데 연서윤이 부은 커피로 인해 머리가 망가졌던 것이다.
  • “시오야, 그런 말 하면 못 써.”
  • “엄마는 나한테 착한 아이가 되라고 했어요.”
  • 박시오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연민영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 “불쌍해요.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요.”
  • 연민영은 손에 들린 동전을 바라보며 분노와 함께 수치심이 들었다.
  • 연정웅네 집안의 아가씨인 동시에 노범준네 집안의 사모님이 될 사람이 거지라니!
  • “악!”
  • ‘수치스러워!’
  • 연민영은 소리를 지르며 웨딩 숍을 벗어났다.
  • “푸흡!”
  • 연서윤이 폭소를 터뜨리며 박시오의 얼굴을 만지면서 말했다.
  • “시오 정말 잘했어! 칭찬해!”
  • 점장이 위층에서 다급하게 내려왔다.
  • “대표님, 이건...”
  • “밖에서 기다려. 금방 갈게.”
  • 연서윤과 점장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하는 점장은 연서윤을 향해 웨딩 숍의 정황을 보고했다. 모비스 웨딩의 모든 점포의 점장은 연서윤이 직접 뽑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는 점장을 신뢰했다.
  • 보고를 받고 일련의 일들을 교대한 연서윤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박도겸이 입구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서윤을 기다렸다.
  • “이해가 안 되는데. 당신이 도성 그룹의 대표라고 말하면 되잖아. 왜 날 끌어들여?”
  • 연서윤이 박도겸을 흘기더니 되물었다.
  • “당신이 내 신분을 어떻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