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윤의 신분은 비밀이었다. 회사의 직원도 그녀를 본 사람은 극히 적었는데 오로지 회사의 고위 계층의 사람들만 그녀의 진정한 신분을 알았다.
세간에서는 도성 그룹의 대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다.
때문에 연서윤은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박도겸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날 밤...”
연서윤이 흠칫하더니 말했다.
“내 지갑 훔쳐봤구나!”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콩 내리쳤다. 그날 술집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자신이 잠든 틈을 타서 그가 지갑을 뒤졌고 명함을 봤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알았으면 비밀로 해.”
박도겸은 흥미롭다는 듯이 연서윤을 향해 말했다.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어.”
연서윤은 그제야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당신은 여자를 너무 몰라. 여자의 질투심은 이상해. 여자들이 질투를 느끼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자신보다 예쁜 여자, 자신보다 몸매가 좋은 여자, 자신보다 돈이 많은 여자야. 가장 심한 질투를 느끼는 게 뭐냐면...”
연서윤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기 남자보다 잘난 남자를 소유한 여자지. 그래, 이게 바로 가장 심한 질투야. 다른 건 없어. 내가 알기로 연민영은 분명 날 욕하면서 가고 있을 거야. 별 볼 것 없는 연서윤이 어떻게 잘생기고 시크하고 돈 많은 남편을 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이야. 내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거든.”
연서윤은 연민영이 씩씩대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속 시원했다.
한편, 연민영은 자신의 몸에 묻은 커피를 닦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별 볼 것 없는 연서윤이 어떻게 잘생기고 시크하고 돈 많은 남편을 뒀지? 걔가 나보다 잘난 게 뭔데! 어유, 속 터져!”
주차장에 도착한 연민영은 그제야 가방을 웨딩 숍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발을 들어 차를 걷어찼다.
“악!”
연민영은 아픈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숍에 도착하여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연서윤을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연서윤과 그 남자를 다시 발견하고는 급히 벽 뒤에 숨었다.
연서윤이 박도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연기를 이렇게 잘 하는 줄 몰랐는데? 카리스마가 넘치더라고. 오늘 내 남편 연기해 줬으니까 당신과 아이들 데리고 놀러 가줄게. 가자!”
박도겸과 연서윤은 함께 차에 탔다.
연민영은 벽 뒤에 숨어서 그들의 차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며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너한테 어떻게 그런 운이 따를 수 있겠어! 도성 그룹 대표라니 가당치도 않지. 못 본 새에 연기가 늘었네. 좋아,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겠어.”
박도겸은 연서윤과 아이들을 데리고 오락실로 향했다. 박시오와 박민오는 처음으로 오락실이라는 곳에 왔다. 두 아이는 박도겸의 아버지의 과잉보호로 인해 거의 집 밖을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락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연서윤은 아이들을 데리고 신나게 놀았고 박도겸은 그저 그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돌아갈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연서윤과 아이들은 지쳐서 차에서 잠들었다.
박민오는 자고 있는 연서윤과 운전하는 박도겸을 번갈아보더니 자고 있는 박시오를 깨웠다.
“으음...”
박시오는 흐릿하게 눈을 뜨며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박민오가 박시오의 귓가에 다가가 말했다.
“예쁜 누나 더 보고 싶지 않아?”
박시오는 반쯤 잠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당연히 연서윤을 계속 보고 싶었다. 아이는 연서윤이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예쁘기도 한데 함께 놀아주는 연서윤이 아이는 너무 좋았다.
“그럼 이렇게 해.”
박민오가 조심스럽게 박시오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이때 완전히 잠에서 깬 박시오는 박민오의 말에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으며 박민오를 향해 엄지를 내보였다.
박시오는 연서윤과 함께 앉았기 때문에 연서윤의 가방이 아이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다. 하여 박시오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지갑을 가방에서 빼냈다.
그러고는 지갑을 박민오에게 건넸다.
얼마 뒤, 차는 연서윤의 집인 원진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가 갑자기 서자 연서윤은 잠에서 깨어 물었다.
“도착했어?”
그녀는 하품을 하고는 말했다.
“그럼 난 갈게. 너희는 아빠 말 잘 들어.”
연서윤은 말하며 박시오의 볼을 만지고 박민오의 볼 역시 만지려고 했지만 아이의 차가운 표정에 그저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쁜 누나, 잘 자요. 꿈에서 만나요! 보고 싶을 거예요!”
박시오가 연서윤을 향해 뽀뽀를 날리며 말했다.
연서윤 역시 아이에게 뽀뽀를 날렸다.
“나도 보고 싶을 거야! 잘 가!”
연서윤은 차에서 내렸다.
박도겸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투명인간 취급이야?’
차에서 내린 연서윤은 그에게 인사는 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박도겸은 아이들을 데리고 박도겸네 저택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린 박시오는 얼른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연서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런 걱정 없이 자러 들어갔다.
박민오는 느긋하에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박도겸이 아이를 막았다.
“내놔.”
박민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뭘요?”
“내가 모를 줄 알아?”
박민오는 할 수 없이 연서윤의 지갑을 꺼냈고 박도겸은 지갑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차에 탔다.
아빠의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박민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박도겸은 지갑을 들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사실 그는 백미러를 통해 아들의 행동을 똑똑히 보았다. 원래는 모른척 하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차에서 내릴 때 생각이 바뀌었다.
차를 차고에 세우고 박도겸은 지갑을 들고 연서윤의 집으로 향했다. 거의 도착했을 때 그는 집안의 불이 모두 꺼진 것을 발견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햇살이 따스한 아침. 박도겸은 정갈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려고 할 때 테이블에 있는 지갑을 발견했다.
여자가 지금쯤 뭘 할지 생각하며 그는 지갑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누군가 그의 옷깃을 잡았다.
고개를 숙여보니 대략 4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그를 향해 활짝 웃었다.
흰 얼굴에 정교한 이목구비, 크고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길고 촘촘한 눈초리, 앵두 같은 입술을 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