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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기대에 찬 생일파티

  • 연민정은 직접 운전하여 박도겸의 집으로 향했다.
  • 박도겸네 집안 도우미들은 항상 그녀에게 친절할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민정은 작은 도련님들의 친엄마라 조만간 박도겸과 결혼하여 이 집안의 안주인으로 될 터이니 그녀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었다.
  • 박민오는 방안에서 장난감 총을 만지작거렸고 박시오는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닥엔 물감들이 가득 널브러져 있었고 아이는 그림을 그리다가 붓을 내던지더니 아예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온몸에 물감이 묻어 얼룩 고양이로 변해버렸다.
  • 바로 이때 문이 열리고 두 아이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연민정과 눈이 마주쳤다.
  • “엄마!”
  • 박시오는 재빨리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연민정은 시오의 몸에 지저분하게 묻은 물감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아이를 확 밀쳐냈다.
  • “저리 비켜.”
  • 박시오는 바닥에 주저앉아 어쩔 줄 모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오셨어요 민정 씨?”
  • 이때 도우미가 과일 한 그릇 들고 그들에게 걸어왔다. 연민정은 재빨리 쪼그리고 앉아 박시오를 부축하여 품에 쏙 끌어안았다.
  • “시오야, 괜찮아? 엄마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미안해, 어디 다친 데 없어?”
  • 도우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황급히 다가왔다. 연민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 “시오야, 엄마가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너랑 함께 손 씻으러 가려고 그랬어. 절대 네가 치마를 더럽힐까 봐 그런 게 아니야. 엄마 치마는 아무렇게나 더럽혀도 돼. 우리 시오 다친 데 없어? 어디 좀 봐봐.”
  • 박민오는 옆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박시오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있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괜찮아요.”
  • 도우미도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 “너무 걱정 마세요 민정 씨, 작은 도련님께서 괜찮다고 하잖아요.”
  • 연민정은 여전히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 “다 내 탓이야.”
  • 이때 도우미가 연민정의 순백의 원피스에 물감이 묻은 걸 발견했다. 하얀색 원피스라 물감이 유난히 돋보였다.
  • “민정 씨 치마가... 제가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드릴까요?”
  • 도우미는 살짝 걱정됐다. 연민정은 대스타라 이미지를 엄청 신경 쓰니 말이다.
  • 한편 그녀는 자신의 치마를 내려다보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 “괜찮아요. 우리 시오가 묻힌 물감이 꽤 이뻐 보이지 않아요?”
  • “그게... 일단 작은 도련님을 데리고 손 씻으러 가겠습니다.”
  • “아니에요. 시오 그림 마저 그려야 해요. 게다가 세상에 어느 엄마가 제 아들을 미워하겠어요? 안 그래 시오야?”
  • 연민정은 말하면서 박시오의 작은 머리를 어루만졌다.
  • 도우미는 그녀의 온화한 모습에 칭찬을 남발했다.
  • “민정 씨는 참 좋은 엄마네요. 작은 도련님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저도 인제 그만 방해하고 나가볼게요.”
  • 말을 마친 도우미는 과일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연민정은 비록 아이들을 자주 찾아오진 않지만 두 녀석에게 항상 친절했다. 여배우에 착하고 자상하기까지 하니 말 그대로 완벽 그 자체였다.
  • 도우미가 떠난 후 연민정은 낯빛이 확 돌변했다. 그녀는 살짝 더러워진 치마를 보더니 짜증이 밀려왔다.
  • “됐어, 그만하고 얼른 가서 씻어.”
  • “엄마가 깨끗이 씻어줄 거죠?”
  • 박시오가 두 손을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
  • “시오야,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해야지. 얼른 가봐!”
  • 연민정은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 그녀는 솔직히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게다가 두 아이는 그녀의 친자식도 아니었으니 평생 연기할 순 있어도 제 자식처럼 대하긴 힘들었다.
  • 큰아들 박민오는 마냥 차갑고 사람들과 거리감을 두는 타입이라 그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둘째 시오는 또 말이 너무 많고 사람을 귀찮게 굴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연민정은 이후에 꼭 박도겸과 둘만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본인이 낳은 아이는 틀림없이 귀엽고 얌전할 것 같았다.
  • 연민정은 결국 박도겸의 집에 남아 두 아이와 함께 점심도 먹고 오후엔 임현숙과 함께 차 한 잔 마셨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고 연민정은 계속 남아있으며 박도겸이 오길 기다리고 싶었으나 이렇게 쭉 머물러있는 것도 무안하여 결국 돌아갈 채비를 했다.
  • 그녀가 떠나자마자 박도겸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이들에게 내일 꼭 연서윤의 딸 하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라고 알렸다.
  • “예쁜 누나한테 딸도 있었어요? 그럼 그 딸도 예쁘고 귀엽겠네요? 저 내일 슈트 입을까요? 흰색이 어울려요 아니면 검은색이 어울려요? 생일선물은 뭐로 하면 좋을까요? 첫 만남이라 살짝 긴장되네요.”
  • 꼭 마치 선보러 나가는 듯한 시오의 모습에 박도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편 민오는 나름대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 박시오는 저녁 내내 이 일에만 정신이 팔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건 두 녀석에게도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 연서윤은 종일 휴식하며 의사가 처방해준 약도 순순히 잘 먹고 끼니도 거르지 않았다. 하은의 감시 때문에 영상회의도 안 하고 메일도 아예 열어보지 못했다. 덕분에 그녀는 하루 사이에 컨디션을 회복했다.
  • 다만 감기 기운이 조금 남아있어 종일 집에만 있었지만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 드디어 하은의 생일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유난히 생일을 좋아했고 하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녀석은 한 달 전부터 이미 생일파티를 기대하고 있었다.
  • 또한 이번 생일은 A국에서 보내는 첫 생일이라 아는 사람이 몇 없지만 하은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잘생긴 아저씨가 엄마한테 프러포즈만 성공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 “잘생긴 아저씨, 프러포즈 계획 다 짰어요?”
  • 하은이는 이불 안에 숨어 박도겸에게 카톡을 보냈다. 박도겸도 곧바로 아이에게 답장을 보냈다.
  • “그래.”
  • 비록 단답형이지만 하은이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 “저 그럼 오늘 저녁 좋은 소식 기대할게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오늘 밤 프러포즈 꼭 성공하세요!”
  • 하은이는 문자를 보내고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났다.
  • 해마다 하은의 생일케이크는 연서윤이 직접 만들어줬는데 올해엔 그녀가 몸이 아픈 탓에 두 모녀는 함께 케이크 가게에 가서 주문하기로 했다.
  • 화이트 스완은 베일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크 가게였다. 연서윤은 하은이를 데리고 화이트 스완으로 가서 예술품과도 같은 케이크들을 구경했다.
  • “엄마, 저 케이크 좀 구경할게요!”
  • “그래, 천천히 둘러봐. 엄마 잠시 화장실 다녀올게. 실례지만 우리 아이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 연서윤은 하은이를 케이크 가게 직원에게 맡겼다. 이 가게는 일대일 서비스인 데다 서비스 자질을 높이기 위해 케이크 전시장마다 손님 한 팀만 입장할 수 있어 딱히 안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여 연서윤은 망설임 없이 바로 화장실에 갔다.
  • 연민영과 연민정도 오늘 결혼식에 쓰일 케이크를 고르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눈썰미가 좋은 연민영이 연서윤을 한눈에 알아봤다.
  • “또 쟤야! 지난번 일도 쟤한테 제대로 따지지 못했는데 말이야!”
  • 연민정은 그녀를 확 잡아당겼다. 연서윤에 관한 일은 돌아오자마자 연민영한테서 듣게 되었다.
  • “언니, 저 아이 서윤의 딸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