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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연애

  • “응?”
  • 아이의 물음에 박도겸은 멈칫했다. 길이나 물을 줄 알았던 아이는 대뜸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 “있어요? 어서 대답해 줘요.”
  • 눈이 휘어지게 웃는 아이의 얼굴에 햇살이 비쳐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
  • “음, 없어.”
  • “그럼 너무 잘 됐다! 날 따라와요!”
  • 아이는 그의 손을 잡고 갔다.
  • 아이의 손을 잡은 박도겸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과는 한 번도 잡아본 적 없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작고 말랑한 아이의 손이 너무 사랑스러워 아이에게 잡힌 채로 연서윤의 집까지 도착했다.
  • “여기서 기다려요! 어디 가면 안 돼요!”
  • 말을 마친 아이는 초인종을 눌렀다.
  • 세 번이나 초인종을 눌렀지만 문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 “또 늦잠 자는구나.”
  • 그때 문이 열리며 잠옷을 입은 연서윤이 하품을 하면서 물었다.
  • “누구시죠? 이렇게 이른 아침에.”
  • “서프라이즈!”
  • 연서윤은 문 앞에 있는 아이를 보고는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반응했다.
  • “하은아, 네가 웬일이야?”
  • 연서윤은 하은을 와락 안고 세바퀴나 돌며 물었다.
  • “아직 이틀 더 있어야 온다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 “내 생일 선물이 어떻게 준비되나 보러 왔어요.”
  • 하은은 눈썹을 튕기며 말했다.
  • 연서윤은 아이의 말에 흠칫했다.
  • 하은은 자신의 4살 생일 선물로 아빠를 원한다고 했다.
  •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서윤은 아이의 방을 애써 꾸민 것이었다.
  • “엄마가 하은이에게 아빠는 못 찾아 줬는데...”
  • 하은이 두 번째 손가락을 내저으며 말했다.
  • “싫어요! 아빠 말고는 다른 선물은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요.”
  • “하은아, 아빠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 “내가 그럴 줄 알고 도와주려고요! 짜잔! 이 아저씨에요!”
  • 하은은 뒤를 돌며 가리켰다.
  • 연서윤은 그제야 아이의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박도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녀는 쓰러질 뻔하며 간신히 문을 잡고 서있었다.
  • ‘장난해? 왜 하필이면 지금 나타나?!’
  • 햇살이 내려앉은 박도겸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그의 주위에 모든 것이 색을 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하은이 박도겸을 연서윤의 앞에 데려가며 말했다.
  • “아저씨, 여긴 제 엄마예요. 올해 23세이고 166cm에 몸무게는 48kg이에요. 34, 24, 34 사이즈고 집도 있고 차도 있어요. 내 아빠가 되어 줄래요?”
  • 딸의 말에 연서윤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 ‘이런 딸이 어디 있어? 신체 사이즈까지 얘기하다니!’
  • 연서윤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 “여긴 어쩐 일이야?”
  • 박도겸이 손에 들린 지갑을 흔들었다.
  • 하은은 눈을 크게 뜨며 뭔가를 알아낸 듯 물었다.
  • “아는 사이에요? 어쩐지 아저씨가 여길 오더라니. 아저씨, 엄마랑 데이트하러 온 거예요? 둘이 연애해요?”
  • 하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도겸과 연서윤을 번갈아보았다. 두 사람이 너무 어울렸다.
  • 연서윤이 급히 박도겸을 향해 눈을 깜박였고 박도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맞아. 우리 연애하고 있어.”
  • 연서윤은 눈을 크게 떴다.
  • ‘부정을 하라고! 부정을!’
  • “와, 너무 잘 됐다!”
  • 하은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 “둘이 너무 잘 어울려요. 엄마, 그렇게 서서 뭐해요? 얼른 옷 갈아입어요. 아저씨가 기다리잖아요!”
  • 하은은 연서윤을 안으로 밀며 말했다.
  • “아저씨, 엄마는 쌩얼도 예뻐요. 그렇죠? 앉아서 기다려요! 엄마 금방 돼요!”
  • 말을 마친 하은은 연서윤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 박도겸은 싱긋 웃었다. 싸늘한 그의 눈빛에 온기가 감돌았다.
  • 위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 하은은 옷장을 뒤지며 연서윤에게 옷을 골라주었다. 연서윤은 어쩔 수 없이 세안을 하고 머리를 빗었다.
  • 박도겸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하은이 먼저 내려와 그의 곁에 앉았다.
  • “아저씨, 모레 제 생일에요. 제 생일 파티에 오실 거예요?”
  • 사랑스러운 아이의 제안을 박도겸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 “그래.”
  • “그럼 약속!”
  • 하은은 손가락을 내밀었다. 박도겸은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보며 이토록 친밀한 행위는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 하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사실 내 생일 파티에서 아저씨가 엄마한테 프러포즈를 하길 바랐어요. 만약 그럴 생각이 있다면 내가 도와줄게요!”
  • “그건...”
  • 박도겸은 난생 처음 적수를 만난 기분이었다.
  • 그는 한 번도 이토록 머리가 지끈거린 적은 없었다.
  • “제가 생각해도 조금 갑작스럽기는 해요.”
  • 하은은 눈 앞의 멋진 아저씨가 망설이자 얼른 말했다.
  • “저랑 카톡 교환해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요!”
  • 하은은 얼른 자신의 폰을 건넸다. 연서윤은 일이 바빴기 때문에 하은에게는 언제든 연서윤과 연락할 수 있는 폰이 있었다.
  • 박도겸은 하은과 카톡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 “엄마는 아주 세속적인 사람이에요. 뭘 좋아하냐면...”
  • 그때 연서윤이 위층에서 내려왔고 하은은 얼른 입을 가리고 말했다.
  • “쉿, 비밀이에요.”
  • 두 사람은 함께 위층을 향해 바라보았다.
  • 연서윤은 간단하게 머리를 얹고 옅은 화장을 했다. 프릴이 달린 셔츠에 머메이드 치마를 입은 모습이 귀엽고도 섹시했다.
  • 하은이 고른 옷이었는데 사실 그녀는 평소에 치마가 불편하여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 하은이 몰래 연서윤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 연서윤이 고개를 숙이며 내려왔다.
  • “하은아,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 “별것 아니에요. 그렇죠, 아저씨?”
  • 하은은 박도겸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 프러포즈는 들켜서는 안 되는 서프라이즈였다.
  • 박도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연서윤은 두 사람을 보며 자신이 속고 있다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 “얼른 데이트나 가세요.”
  • “너...”
  • “나 혼자 집에 있어도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면 하림 이모에게 전화할게요. 빠이.”
  • 하은은 두 사람의 대화를 끝냈다.
  • 연서윤은 어쩔 수 없이 박도겸과 함께 집을 나섰다.
  • 집을 나서자마자 하은과 같이 맑은 눈이 박도겸을 노려보았다.
  • 죽음의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