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정은 곧바로 박승연의 말속의 뜻을 알아차리더니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 계집애가 방금 타지에서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시차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승연아, 오늘 온 김에 남아서 식사라도 하고 가거라!”
장시정이 말하며 배 아줌마를 불렀다.
“나가서 음식을 좀 사 와. 오늘 서윤이와 승연이가 모두 집에서 밥을 먹을 테니 얼른 가!”
장시정은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배 아줌마의 손에 쥐여주었다.
배 아줌마도 집안의 어른인 셈인데 장시정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웃으며 돈을 들고 나갔다.
“그럼 어르신, 아씨 그리고 박승연 씨는 어서 얘기들 나누세요.”
서윤은 장시정이 배 아줌마와 얘기를 나누는 틈을 타서 박승연을 쳐다봤다. 그녀는 박승연과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박승연의 블랙홀 같은 눈이 서윤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서윤 씨는 마치 저를 만난 것이 놀라운 일인 것 같네요.”
“헛소리, 당신은 안 놀랐어요? 당신은 정말 제 외할아버지의 제자였어요?”
서윤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어쨌거나 박승연은 일반인이 아니었으니까.
박승연은 눈썹을 치켜세울 뿐, 부정하지 않았다.
“당신이 보기에 저와 선생님께서 굳이 거짓말을 할 거라 여겨져요?”
박승연이 물었다. 서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반박하려 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장시정의 검은색 눈동자에 빛이 서렸고 신속하게 박승연과 서윤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승연아, 얘가 바로 내가 자주 말하던 서윤이야. 우리 서윤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했어. 그리고 지금은 일도 잘해서 회사의 이사가 되었어.”
장시정이 손녀 자랑을 늘어놓으며 서윤을 있는 힘껏 칭찬했다. 특히 박승연은 진지한 얼굴로 맞장구를 치며 서윤을 이리저리 훑어보자 그녀는 온몸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됐어, 너희 젊은이들끼리 잘 얘기를 나눠. 난 서재에 가봐야겠어.”
장시정이 서윤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서윤아, 할아버지를 대신해 손님인 승연이를 잘 보살펴 줘.”
장시정은 서윤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서윤은 따라 나가려 했으나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는 박승연을 보고 입술을 꽉 깨물더니 결국 다시 앉았다.
“박승연 씨는 외할아버지의 어느 학번 학생이죠? 전 왜 한 번도 할아버지가 당신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죠?”
박승연은 실눈을 뜨며 말했다.
“그래요? 선생님께서 자주 저에게 당신 얘기를 했었는데!”
박승연이 말하며 몸을 일으켜 가까이 다가오자 서윤은 놀라서 얼른 뒤로 뺐고 목을 쳐들고 박승연을 바라봤다.
“저에게서 좀 떨어져요!”
“서윤 씨가 저에 대해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면 좀 더 빨리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박승연이 가볍게 웃으며 서윤의 귓가에 숨을 불어넣듯 말했다.
“어쨌거나 선생님의 좋은 뜻을 저버리면 안 되잖아요!”
“당신...”
서윤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만약 그녀가 아직도 외할아버지가 그녀를 이곳에 부른 이유를 모른다면 그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다만 그녀도 외할아버지가 이토록 마음이 급하신 줄 몰랐다. 그녀는 단지 실연했을 뿐이지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박승연일까.
전날 그녀는 이미 박승연을 거절했는데 오늘 자기 외할아버지가 또 그녀를 그에게 떠밀었으니 박승연은 지금 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제멋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외할아버지는 그냥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진지하게 생각 마세요!”
그녀는 실연했다고 해서 만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었고 게다가 아직 젊었기에 어떤 남자든 만나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