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문원, 너 양심이 있는 인간이야? 경험도 없는 신입 의사에게 우리 아빠 수술을 맡겨?”
왕문원은 모르쇠를 댔다.
“누가 경험이 없대? 이 선생 아주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야. 우리 삼촌보다는 못하지만. 방금 전에 삼촌에게 전화했는데 서경시 학술토론회에 참가하시느라 당분간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셨어. 그래서 이 선생에게 맡긴 거야.”
“거짓말하지 마! 원장 선생님이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데 그런 말이 나와?”
왕문원은 웃음이 나왔다.
“그럼 숙모가 잘못 말씀하신 거겠네!”
“너 정말 뻔뻔해! 전세계 사람이 다 죽어도 너 같은 쓰레기와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소우희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왕문원도 화가 치밀었다.
“뭐야?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만만해 보여? 지금 경고하는데 다음달 8일은 네 할머니가 정한 날짜야. 너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으면 소씨 가문 모두 거리에 나앉을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서씨 그 자식을 운성에서 내쫓아. 안 그러면 죽여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팍!
전화가 끊기자 현장은 조용해졌다.
소우희가 핸즈프리로 전화를 걸었기에 둘의 대화는 모두에게 들렸다.
사건의 진실 역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들이 침 마르게 칭찬했던 사윗감 왕문원은 소국림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소국림을 죽이고 그 잘못을 서강묵에게 떠밀려고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웃고 무시하던 서강묵이야말로 소국림을 살린 생명의 은인이었다.
순간, 소부옥을 포함한 사람들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소국림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서강묵에게 말했다.
“스승님, 침을 놓느라 지치셨죠? 제가 술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
“여보!”
유봉옥이 꽥 소리를 질렀다.
“스승님 소리 좀 그만해요!”
소국림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의술 좀 배워보려는데 왜 그래?”
유봉옥은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도움은 개뿔! 소우희와 핏줄이 아니랄까 봐 아주 쌍으로 눈이 멀었네! 이 자식이 바로 당신 심장병을 도지게 한 서강묵이라고요!”
‘뭐라고?’
소국림은 온몸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 겨우 회복된 심장이 또 멈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스승으로 모시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그를 소씨 가문에서 내쫓을 뻔했던 서강묵이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것도 모르고 스승님이라고 불렀구나!’
진실을 알게 된 소국림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 너무 황당하잖아!’
왕 원장은 소씨 가문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서강묵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스승님,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계시는데 저희 병원 한의과에 근무하시는 건 어떤가요? 계약금으로 20억을 드릴게요. 따로 진료를 하실 필요는 없고 시간 날 때 저에게 좀 가르침을 주시면 됩니다. 혹여 희귀병이나 난치병 환자들이 오면 좀 도와주세요. 물론 진료비와 치료비를 모두 드리고요.”
“뭐라고?”
주차장에서 돌아오던 소영미는 왕 원장의 말을 듣고 제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소국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약금만 20억에 진료비를 전액으로 챙길 수 있다니, 서강묵의 몸값이 이렇게 비싸?’
서강묵은 왕 원장을 힐끔 보았다.
‘이 노친네, 한의사로 들어오라고 하지만 진짜 속셈은 나한테서 의술을 배우려는 거잖아? 꿈 깨!’
그가 침술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일반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천룡 침술법이 세상에 드러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찾아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피곤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돈 필요 없습니다.”
서강묵이 싸늘하게 말했다.
“뭐라고? 20억도 싫다고? 서강묵, 무슨 허세가 이렇게 심해?”
소영미는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자신이 20억을 놓친 것처럼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허세가 심하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서강묵이 코웃음을 쳤다.
“너…”
소영미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셋째야, 네 딸이 어떤 애랑 사귀는지 좀 봐두렴.”
소국진은 딸이 무안을 당하자 비아냥거렸다.
옆에 있던 유봉옥은 왕 원장이 20억을 내걸며 서강묵을 병원에 스카우트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소국림이 입을 열기 전에 그녀는 먼저 소국진의 말에 대답했다.
“아주버님, 사람이 어떻든 쓸데가 있으면 되죠. 서강묵은 우리 남편 목숨도 살려줬고 원장 선생님이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걸 보면 꽤나 쓸모 있는 젊은이 같은데요. 이런 사람 요즘 운성에도 몇 없어요. 다 영미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우리 차지가 된 게 아니겠어요?”
“뭐라고…”
소국진은 화가 나 할 말을 잃었다.
서강묵의 의술이 정말 왕 원장의 말처럼 대단하다면 그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인 것이 틀림없었다.
딸과 결혼시키지 않더라도 딸의 구애자로 옆에 두고 써먹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소영미의 옆에 있다면 소영미의 인지도 역시 올라가지 않겠는가?
순간 소국진은 후회스러웠다.
‘영미 얘는 왜 서강묵 같은 애를 그냥 버린 거야?’
유봉옥의 말에 충격을 받은 건 소영미도 마찬가지였다.
“서강묵, 원장 선생님의 제안을 수락하면 너랑 사귀어줄게. 네가 우희 선택한 건 나한테 차여서 자존심 때문에 그런 거 알아. 지금 너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줄게.”
소영미는 콧대를 쳐들고 오만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녀만 원한다면 서강묵이 순순히 그녀의 옆으로 돌아올 거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5년간 한결 같았던 서강묵이 또 자신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곧 사령관의 퇴임 파티에 참가할 인물이니 예전과 신분이 달랐다.
서강묵이 그녀의 남자친구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도 큰 영광이 아닌가?
유봉옥은 긴장되어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녀가 서강묵을 사윗감으로 점 찍은 게 아니라 분했기 대문이었다.
그녀는 소씨 가문에 시집온 뒤로 항상 첫째 집안의 무시를 당해왔다.
소국림 역시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굽신거리는 게 더욱 화가 났다.
그런데 지금 간만에 소국진 일가를 비웃을 기회가 생겼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또 망신을 당할 것만 같았다.
소영미의 말을 들은 서강묵은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는 무슨 자신감에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뻔뻔스러운 건가? 내가 사람을 찾을 때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이 여자를 알게 될 일도 없었을 텐데.’
“소영미, 상황 파악 좀 해! 넌 소우희의 발끝에도 못 따라오는 존재니까!”
서강묵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소영미는 화가 나 펄쩍 뛰었다.
“서강묵, 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사령관님의 퇴임 파티에 참가하고 돌아오면 너부터 죽여버릴 거야! 소우희, 너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업 중 절반이 왕씨 가문과 연관되어 있다는 거 알지? 왕씨 가문도 초대장을 받았는데 네가 이 자식과 헤어지지 않으면 소씨 가문은 너 때문에 망하게 될 거야!”
소영미의 말에 소부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우희, 내가 소씨 가문 가주의 신분으로 명령하는데 지금 당장 서강묵과 헤어지고 왕문원에게 가서 용서를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