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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누구도 괴롭히지 못해!

  • 쿵!
  • 소우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영혼이 가출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자신의 결정 때문에 집에 이런 불상사가 생길 거라고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 “아빠 심장병이 도졌대요. 지금 빨리 동제병원으로 가야겠어요!”
  • 소우희는 소영아를 안고 입구로 뛰어갔다.
  • “차 키 줘요. 내가 운전할게요!”
  • 서강묵이 다급히 말했다.
  • 그는 차를 운전하며 주채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내 양가죽 가방을 동제병원에 가져와!”
  • 심장병은 흔한 병 같지만 고질병이 도졌을 때, 제때에 치료하지 못한다면 환자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강묵이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다.
  • 그는 병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치르는 데 능한 한편, 의술 또한 세상에서 뒤따를 자 없었다.
  • 양가죽 가방 안에는 은침 24대와 침술법 도감도 들어 있었다.
  • 그 침술법은 이름하여 ‘천룡 이십사시’였다.
  • 이는 서강묵이 북정의 사막에 들어갔을 때, 우연히 손에 넣은 것이다.
  • 이십사시는 하루의 윤회를 의미하는데 사람을 기사회생할 수 있게 치료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 그는 이 침술법으로 북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 군부대의 병사들은 물론, 사막의 유목민들의 희귀 질병도 모두 치료했다.
  • 심장병 같은 병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셈이었다.
  • “보스, 북정을 떠날 때, 다시는 침술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주채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 ‘누구기에 우리 사령관님이 다시 침을 들도록 마음먹으신 거지?’
  • “장인어른이 심장병이시래! 이틀 뒤의 퇴임 파티에 소영미와 소국진 부녀를 웨이터로 써먹어!”
  • “네, 보스!”
  • 주채연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 서강묵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이때, 뒷좌석에 앉은 소영아가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
  • “아빠, 장인어른이 누구예요?”
  • 서강묵은 바로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빠의 장인어른은 바로 우리 영아의 외할아버지야. 외할아버지가 지금 편찮으셔서 아빠가 치료해주려고 그래.”
  • “와, 아빠 짱! 외할아버지를 치료도 해주고.”
  • 소영아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 옆에 있던 소우희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서강묵 이 사람,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자꾸 허풍을 치지? 의술을 할 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령관의 퇴임 파티에 들어갈 자격도 없는 사람이 소영미와 큰아버지를 웨이터로 부리라고? 무슨 자신감에 하는 소리야?’
  • 십 몇 분 뒤, 그들은 동제병원에 도착했다.
  • 원장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소우희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유봉옥이 왕문원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고 소국진과 소부옥이 옆에서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냉소를 짓고 있는 소영미도 보였다.
  • 서강묵은 미간을 찌푸렸다.
  • “왕문원이 왜 여기 있지?”
  • 소우희는 유봉옥의 옆으로 걸어가 물었다.
  • “아줌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 유봉옥은 그녀가 온 것을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왕문원의 앞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 “이 병원이 문원이 삼촌 거래. 네 아빠 지금 위독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 없어. 얼른 문원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아빠 수술하게 해달라고 해!”
  • “왕문원, 우리 아빠 수술 못 받게 한 게 네 작간이야?”
  • 소우희가 분노에 찬 얼굴로 물었다.
  • 왕문원은 머리에 싸맨 붕대를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 “우리 삼촌은 심장병 쪽에서 아주 유명한 전문의야. 하지만 지금 삼촌이 근무할 시간이 아닌데 왜 네 아빠에게 수술을 해줘야 해? 아무리 큰 일이라도 내일 다시 얘기해!”
  • “정말 다른 의사는 없는 거야?”
  • “있다고 해도 위급한 환자에게 수술을 할 수는 없지.”
  • 왕문원이 냉소하며 말했다.
  • 아까 서강묵에게 호되게 혼난 그는 바로 병원에 치료받으러 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영미가 전화를 걸어 소우희 때문에 소국림이 화가 나 심장병이 도졌다고 했다.
  • 그리고 소국림은 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 그는 병원장의 친조카이기에 병원의 의사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었다.
  • 소우희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왕문원이 아니었다.
  • 아빠를 살리려는 마음에 소우희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왕문원에게 무릎을 꿇었다.
  • “왕문원,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 사적인 감정은 내려놓고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 아빠 살려달라고 해줘!”
  • 왕문원이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 “이제 와서 빌면 다야? 너 미치게 한 남자도 같이 왔잖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라면서 저 자식한테 빌어 봐.”
  • 유봉옥은 그제야 소우희와 함께 온 서강묵을 보았다.
  •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소우희, 네 아빠 죽는 꼴을 봐야겠다는 거지? 너 어떻게 저런 인간한테 빠진 거야? 눈 멀었어? 저 인간은 돈도 없고 소영미를 5년간 졸졸 쫓아다니기까지 했잖아! 서강묵, 지금 당장 꺼져! 나와 우희 아빠는 절대 널 집에 들이지 않을 거야! 문원아, 걱정하지 말게. 우희가 정신이 잠깐 나가 실수했나 봐. 애아빠가 깨어나면 내 꼭 제대로 혼낼게.”
  • 그녀의 말을 들은 왕문원은 그제야 화가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 “그래요, 아줌마를 봐서라도 삼촌을 불러와야겠네요. 하지만 오늘 밤에는 우희를 데려갈 것입니다.”
  • “너…”
  • 소우희는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 왕문원이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 옆에 있는 소우희는 입을 막고 깔깔 웃었다.
  • “소우희, 애가 다 컸는데 무슨 처녀인 것처럼 내숭이야. 5년 전에 정체도 모르는 남자에게 내준 몸, 오늘 아빠 살리는 셈 치고 또 한 번 내주면 안돼?”
  • 소영미가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소우희의 심장을 찔렀다.
  • 철썩!
  • 서강묵은 소영미의 따귀를 갈겼다.
  • 히죽거리며 웃던 소영미는 입안에 피 맛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 “우희 씨는 내 여자니까 누구도 괴롭히지 못한다고 했지! 낮에 말했는데 기억을 하지 못했으니 지금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 철썩!
  • 서강묵은 또 따귀를 쳤다.
  • 이번에는 왕문원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 “그리고 감히 내 여자를 모욕해? 죽고 싶어?”
  • 서강묵의 말은 우레가 되어 사무실 안에 울려퍼졌다.
  • 유봉옥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 ‘이 자식이, 내가 무릎 꿇고 겨우 애원해서 성사시킨 걸 단번에 그르치려고 해? 그러면 큰일 난다고!’
  • 소국림이 죽으면 그녀의 인생도 끝이 나게 될 것이다.
  • 옆에 있던 소부옥은 지팡이로 서강묵을 찔러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 소우희 역시 떨리는 걸음으로 뒷걸음질치며 서강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이 남자,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거 아니야?’
  • 서강묵은 아까 낮에도 카페에서 왕문원을 때려 다치게 했다. 그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 그의 아버지의 목숨이 달렸기 때문이었다.
  • 소우희는 서강묵에게 아주 실망하고 카페에서 서강묵의 프러포즈를 받은 것을 후회했다.
  • “강묵 씨… 왜 자꾸 손부터 나가요?”
  • 소우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자 서강묵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 “내 여자는 누구도 괴롭힐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