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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앞날이 훤합니다

  • “가시죠!”
  • 서강묵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의 핏줄인 만큼 그는 자신이 있었다.
  • 차에 오른 뒤, 소우희는 운전하며 서강묵에게 당부했다.
  • “영아가 물어볼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가 아주 먼 곳에 군대 갔으니 중요한 미션을 클리어한 뒤, 올 거라고 했어요. 강묵 씨 신분과도 얼추 들어맞으니 애를 보면 그렇게 말해요.”
  • 서강묵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 소우희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미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 소우희는 또 소영아가 좋아하는 것을 말해주었다. 서강묵은 옆에서 열심히 듣고 있었다.
  • 유치원 입구에 도착한 뒤, 소우희는 서강묵더러 기다리라고 하고 자신은 아이를 데리러 들어갔다.
  • 5분 뒤.
  •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소우희가 똑같이 노란색 치마를 입은 여자애의 손을 잡고 서강묵의 앞에 나섰다.
  • 곱슬머리에 새하얀 피부,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는 신화의 천사처럼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 순간 서강묵은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 ‘내 딸이야! 내 핏줄!’
  • 모녀를 보는 서강묵의 마음은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 ‘5년 동안 우희 씨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내가 그날 밤에 실수하지 않았다면, 엉뚱한 사람을 우희 씨로 오해하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겠는데. 소씨 가문 사람들도 우희 씨를 괴롭히지 못했을 거고.”
  • 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었지만 유독 이 모녀에게만은 너무 미안했다.
  • 순간 서강묵은 흥분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 소영아는 그런 서강묵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핏줄이 끌린다는 게 사실인지, 둘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다.
  • “엄마, 이 아저씨가 아빠예요?”
  • 소영아는 고개를 들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소우희를 바라보았다.
  • 소우희는 쪼그리고 앉아 딸을 품에 안은 뒤, 서강묵에게 말했다.
  • “응, 이 아저씨가 영아 아빠야!”
  • “영아야!”
  • 서강묵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소영아에게 두 팔을 벌렸다.
  • 그러자 생글생글 웃고 있던 소영아는 갑자기 경계 어린 얼굴로 소우희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나쁜 사람이 아주 많대요. 그런데 이 아저씨가 우리 아빠인 걸 어떻게 알아요?”
  • ‘그게…’
  • 서강묵은 실소를 터뜨렸다.
  • ‘핏줄끼리 통하는 게 있다면서?’
  • “영아야, 아빠 맞아. 아빠가 먼 곳에서 오셔서…”
  • 소우희가 다급히 말했다.
  • “하지만 군복도 입지 않고 TV에서의 아저씨들처럼 멋있지도 않고…”
  • 소영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가 상상하던 아빠와 너무 달랐던 것이다.
  • ‘음…’
  • 서강묵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 만약 그녀의 딸이 그가 TV에 나오는 연예사병보다 못생겼다고 말한 것을 북정의 병사들이 안다면 그를 얼마나 놀릴지 상상이 가는 순간이었다.
  • “질문 두 가지를 할 테니 정확하게 대답하면 아빠라는 것을 믿을게요!”
  • 소영아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 “그래, 물어봐!”
  • “영아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뭐죠?”
  • “노란색!”
  • 서강묵이 말했다.
  • 그러자 소영아를 안고 있는 소우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아까 오는 길에 그녀는 분명히 서강묵에게 소영아가 파란색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 오늘 모녀가 노란색 옷을 입었다고 노란색이라고 말한 게 틀림없었다.
  • ‘진지한 척하더니 첫 번째 대답부터 틀렸잖아! 그러면서 나한테 진심이라고 하더니! 거짓말쟁이야!’
  • 소우희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본 서강묵은 심장이 철렁했다.
  • 그러나 그가 변명하기 전에 소영아는 또 앳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그럼 영아가 제일 좋아하는 케익은 무슨 케익이게요?”
  • “딸기 케익?”
  • 서강묵은 잠깐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 그러자 소우희는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 아까 차에서 그녀는 분명이 소우희는 다른 애들과 달리 녹차맛 케익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이다.
  • 그런데 서강묵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았다.
  • “저기… 영아야, 아빠한테 기회를 한 번만 더 줄래?”
  • 서강묵이 눈을 깜박이며 불쌍한 얼굴로 물었다.
  • “음… 좋아요. 그럼 슈퍼맨에서 영아가 누구를 가장 좋아하게요?”
  • 소영아가 물었다.
  • ‘음…’
  • 서강묵은 당황했다.
  • 이건 소우희도 말해준 적이 없는 문제였다.
  • 게다가 슈퍼맨이 뭔지 그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알아맞히라니, 그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 소영아가 준 마지막기회까지 놓치게 되는 순간이었다.
  • “슈퍼맨은 할리우드에서 찍은 거야?”
  • 서강묵이 소우희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며 물었다.“
  • 강묵 씨…”
  • 소우희는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 슈퍼맨을 모르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다섯 살 난 아이에게 할리우드 영화를 보았냐고 묻다니. 그녀는 서강묵이 일부러 그녀를 엿 먹이려고 이러는 게 아닌지 궁금했다.
  • 그러나 그녀가 불만을 말하기도 전에 소영아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 “아빠, 왜 그렇게 아무것도 몰라요? 슈퍼맨은 영아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잖아요.”
  • 처음 만난 딸에게 비웃음을 당하다니, 구주 전쟁의 신은 인생 최대의 치욕을 겪고 있었다.
  • ‘잠깐! 영아가 날 뭐라고 불렀지?’
  • “정말 아빠가 맞았어요! 아빠, 안아줘요!”
  • 소영아는 갑자기 소우희의 목을 끌어안던 팔을 풀고 서강묵에게 다가오며 두 팔을 벌렸다.
  • 서강묵은 망설이지 않고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 아이의 말랑한 몸에 손이 닿는 순간, 서강묵은 콧마루가 시큰하며 눈물이 흘러나올 뻔했다.
  • 이 순간, 북정의 왕이요, 구주 전쟁의 신이요 하는 허울들은 모두 품에 안은 어린애에 비해 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었다.
  • 서강묵과 소영아가 서로 꼭 끌어안는 것을 본 소우희는 당황해서 입이 떡 벌어졌다.
  • “영아야, 아빠가 질문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는데 왜 아빠라고 생각하는 거야?”
  • 소우희는 아이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했다.
  • 소영아는 서강묵의 널찍한 어깨에 기대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아빠가 눈 깜박이는 걸 본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영아도 눈 깜박이는 거 좋아하거든요…”
  • 그러자 소우희의 표정이 또 어두워졌다.
  • ‘눈 깜박이는 걸 보고 알아봤다면서 질문은 왜 한 건데? 괜히 긴장했잖아!’
  • 하지만 다섯 살 난 아이는 종종 이상한 데에 꽂히곤 했다.
  • 서강묵은 소영아를 안고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우희를 바라보았다.
  • 그는 소영아가 그를 아빠라고 인정한 게 절대 눈 깜박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자세히 살펴보니 소영아의 눈은 그와 아주 닮아 있었다.
  • 이게 바로 유전자의 힘이었다. 그러나 소우희는 전혀 그쪽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소우희는 서강묵을 흘겨보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 “어떻게 겨우 통과하기는 했지만 그걸로 의기양양하다니! 앞으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잘 기억하라고 해야겠어. 내가 긴장한 건 둘째 치더라도 아빠가 아닌 게 들키면 영아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 같은 시각.
  • 문 식당 룸.
  • 왕씨 가문의 왕문원은 소씨 가문의 노부인 과 소국진을 극진히 접대하고 있었다.
  • 이 둘은 현재 소씨 가문에서 가장 발언권이 있는 사람이었다.
  • “할머니, 큰아버지, 우희와 제 혼사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왕문원은 단춧구멍만한 눈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 “문원이 자네 무슨 그런 소리를 하나? 우리야말로 우희의 과거를 눈감아줘서 고맙지.”
  • 소부옥은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 “그럼 우희는 언제 오나요?”
  • 소우희의 날씬한 몸매를 떠올리자 왕문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 “오늘 아침에 말해 두었으니 올 거야. 지금은 영아 하원하는 걸 데리러 갔을 테니 말이야.”
  • 소부옥이 웃으며 말했다.
  • 왕문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국진에게 말했다.
  • “큰아버지, 영미 씨가 사령관의 퇴임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면서요?”
  • “맞네! 나도 영미랑 같이 파티에 참석해 사령관님의 풍채를 볼 수 있겠네!”
  • 소국진의 얼굴에 거만한 표정이 드리웠다.
  • “사실 우리 왕씨 가문도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럼 소씨 가문과 왕씨 가문도 함께 신분상승을 할 수 있겠네요.”
  • 왕문원이 으쓱한 얼굴로 말했다.
  • “뭐라고? 자네 왕씨 가문도 초대장을 받았다고?”
  • 소부옥과 소국진이 동시에 외쳤다.
  • 왕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 “손주사위 대단하구먼! 우희가 자네와 결혼할 수 있는 것은 다 걔 복이야!”
  • 소부옥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소씨 가문과 왕씨 가문이 휘황찬란만 앞날을 맞이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왕문원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 “할머니, 저희 왕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앞날이 훤합니다.”
  • 소국진이 양가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하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소영미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 “할머니, 아빠, 우희 그 년 때문에 화가 나 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