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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상황파악 좀 해

  • “왕문원, 너 양심이 있는 인간이야? 경험도 없는 신입 의사에게 우리 아빠 수술을 맡겨?”
  • 왕문원은 모르쇠를 댔다.
  • “누가 경험이 없대? 이 선생 아주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야. 우리 삼촌보다는 못하지만. 방금 전에 삼촌에게 전화했는데 서경시 학술토론회에 참가하시느라 당분간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셨어. 그래서 이 선생에게 맡긴 거야.”
  • “거짓말하지 마! 원장 선생님이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데 그런 말이 나와?”
  • 왕문원은 웃음이 나왔다.
  • “그럼 숙모가 잘못 말씀하신 거겠네!”
  • “너 정말 뻔뻔해! 전세계 사람이 다 죽어도 너 같은 쓰레기와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 소우희는 소리를 질렀다.
  • 그러자 왕문원도 화가 치밀었다.
  • “뭐야?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만만해 보여? 지금 경고하는데 다음달 8일은 네 할머니가 정한 날짜야. 너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으면 소씨 가문 모두 거리에 나앉을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서씨 그 자식을 운성에서 내쫓아. 안 그러면 죽여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 팍!
  • 전화가 끊기자 현장은 조용해졌다.
  • 소우희가 핸즈프리로 전화를 걸었기에 둘의 대화는 모두에게 들렸다.
  • 사건의 진실 역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 그들이 침 마르게 칭찬했던 사윗감 왕문원은 소국림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다.
  • 오히려 이번 기회에 소국림을 죽이고 그 잘못을 서강묵에게 떠밀려고 하기까지 했다.
  • 그러나 그들이 비웃고 무시하던 서강묵이야말로 소국림을 살린 생명의 은인이었다.
  • 순간, 소부옥을 포함한 사람들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소국림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그는 조심스럽게 서강묵에게 말했다.
  • “스승님, 침을 놓느라 지치셨죠? 제가 술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
  • “여보!”
  • 유봉옥이 꽥 소리를 질렀다.
  • “스승님 소리 좀 그만해요!”
  • 소국림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 “우리 가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의술 좀 배워보려는데 왜 그래?”
  • 유봉옥은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 “도움은 개뿔! 소우희와 핏줄이 아니랄까 봐 아주 쌍으로 눈이 멀었네! 이 자식이 바로 당신 심장병을 도지게 한 서강묵이라고요!”
  • ‘뭐라고?’
  • 소국림은 온몸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 겨우 회복된 심장이 또 멈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그가 스승으로 모시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그를 소씨 가문에서 내쫓을 뻔했던 서강묵이었다니!
  •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것도 모르고 스승님이라고 불렀구나!’
  • 진실을 알게 된 소국림은 눈물이 찔끔 나왔다.
  • ‘이게 다 무슨 일이래? 너무 황당하잖아!’
  • 왕 원장은 소씨 가문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서강묵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 “스승님,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계시는데 저희 병원 한의과에 근무하시는 건 어떤가요? 계약금으로 20억을 드릴게요. 따로 진료를 하실 필요는 없고 시간 날 때 저에게 좀 가르침을 주시면 됩니다. 혹여 희귀병이나 난치병 환자들이 오면 좀 도와주세요. 물론 진료비와 치료비를 모두 드리고요.”
  • “뭐라고?”
  • 주차장에서 돌아오던 소영미는 왕 원장의 말을 듣고 제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 소국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 ‘계약금만 20억에 진료비를 전액으로 챙길 수 있다니, 서강묵의 몸값이 이렇게 비싸?’
  • 서강묵은 왕 원장을 힐끔 보았다.
  • ‘이 노친네, 한의사로 들어오라고 하지만 진짜 속셈은 나한테서 의술을 배우려는 거잖아? 꿈 깨!’
  • 그가 침술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일반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 천룡 침술법이 세상에 드러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찾아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피곤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 “아니요, 돈 필요 없습니다.”
  • 서강묵이 싸늘하게 말했다.
  • “뭐라고? 20억도 싫다고? 서강묵, 무슨 허세가 이렇게 심해?”
  • 소영미는 화가 치밀었다.
  • 그녀는 자신이 20억을 놓친 것처럼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 “내가 허세가 심하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 서강묵이 코웃음을 쳤다.
  • “너…”
  • 소영미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셋째야, 네 딸이 어떤 애랑 사귀는지 좀 봐두렴.”
  • 소국진은 딸이 무안을 당하자 비아냥거렸다.
  • 옆에 있던 유봉옥은 왕 원장이 20억을 내걸며 서강묵을 병원에 스카우트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 소국림이 입을 열기 전에 그녀는 먼저 소국진의 말에 대답했다.
  • “아주버님, 사람이 어떻든 쓸데가 있으면 되죠. 서강묵은 우리 남편 목숨도 살려줬고 원장 선생님이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걸 보면 꽤나 쓸모 있는 젊은이 같은데요. 이런 사람 요즘 운성에도 몇 없어요. 다 영미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우리 차지가 된 게 아니겠어요?”
  • “뭐라고…”
  • 소국진은 화가 나 할 말을 잃었다.
  • 서강묵의 의술이 정말 왕 원장의 말처럼 대단하다면 그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인 것이 틀림없었다.
  • 딸과 결혼시키지 않더라도 딸의 구애자로 옆에 두고 써먹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소영미의 옆에 있다면 소영미의 인지도 역시 올라가지 않겠는가?
  • 순간 소국진은 후회스러웠다.
  • ‘영미 얘는 왜 서강묵 같은 애를 그냥 버린 거야?’
  • 유봉옥의 말에 충격을 받은 건 소영미도 마찬가지였다.
  • “서강묵, 원장 선생님의 제안을 수락하면 너랑 사귀어줄게. 네가 우희 선택한 건 나한테 차여서 자존심 때문에 그런 거 알아. 지금 너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줄게.”
  • 소영미는 콧대를 쳐들고 오만하게 말했다.
  • 그녀는 그녀만 원한다면 서강묵이 순순히 그녀의 옆으로 돌아올 거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5년간 한결 같았던 서강묵이 또 자신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 게다가 그녀는 곧 사령관의 퇴임 파티에 참가할 인물이니 예전과 신분이 달랐다.
  • 서강묵이 그녀의 남자친구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도 큰 영광이 아닌가?
  • 유봉옥은 긴장되어 입안이 바짝 말랐다.
  • 그녀가 서강묵을 사윗감으로 점 찍은 게 아니라 분했기 대문이었다.
  • 그녀는 소씨 가문에 시집온 뒤로 항상 첫째 집안의 무시를 당해왔다.
  • 소국림 역시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굽신거리는 게 더욱 화가 났다.
  • 그런데 지금 간만에 소국진 일가를 비웃을 기회가 생겼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또 망신을 당할 것만 같았다.
  • 소영미의 말을 들은 서강묵은 어이가 없었다.
  • ‘이 여자는 무슨 자신감에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뻔뻔스러운 건가? 내가 사람을 찾을 때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이 여자를 알게 될 일도 없었을 텐데.’
  • “소영미, 상황 파악 좀 해! 넌 소우희의 발끝에도 못 따라오는 존재니까!”
  • 서강묵은 콧방귀를 뀌었다.
  • 그러자 소영미는 화가 나 펄쩍 뛰었다.
  • “서강묵, 너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사령관님의 퇴임 파티에 참가하고 돌아오면 너부터 죽여버릴 거야! 소우희, 너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업 중 절반이 왕씨 가문과 연관되어 있다는 거 알지? 왕씨 가문도 초대장을 받았는데 네가 이 자식과 헤어지지 않으면 소씨 가문은 너 때문에 망하게 될 거야!”
  • 소영미의 말에 소부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소우희, 내가 소씨 가문 가주의 신분으로 명령하는데 지금 당장 서강묵과 헤어지고 왕문원에게 가서 용서를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