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묵, 너 감히 날 때려? 좋아, 잘했어! 할머니, 삼촌이 만약 잘못되면 다 서강묵 저 자식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 둬요! 왕문원 씨, 이만 가요!”
그녀는 왕문원의 팔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왕문원…”
유봉옥이 나서서 잡으려고 했지만 왕문원은 그녀의 팔을 떨쳐버렸다.
서강묵을 이기지 못할 것을 뻔히 알기에 그는 얼른 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소우희의 아빠가 죽든 말든 그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아니지, 죽으면 좋은 거지. 그러면 소영미의 말대로 서강묵 저 자식이 소우희의 아빠를 죽인 거잖아? 그렇게 되면 소씨 가문 사람들은 영원히 저 자식을 용서하지 못할 거야.’
왕문원과 소영미가 멀어져가는 것을 보자 유봉옥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녀는 서강묵을 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너 당장 꺼져! 썩 꺼지라고!”
바로 이때, 서강묵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자 주채연이 걸려온 전화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갔다.
은침이 도착하면 그는 가장 먼저 은침을 들고 응급실에 들어가 소우희의 아버지를 구할 생각이었다.
서강묵이 떠나는 것을 보자 소우희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까까지는 실망과 후회의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서강묵에게 절망뿐이었다.
병원 대문에 도착하자 서강묵은 은침이 담긴 양가죽 가방을 가지고 응급실에 들어갔다.
뒤에 선 주채연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세속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서강묵은 다시는 침을 꺼내들지 않겠다고 했다.
북정 사람들은 이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그가 백 년 안에 절대 천룡 침술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강묵이 운성으로 돌아온 첫날에 식언할 줄이야!
원장 사무실 입구에서 유봉옥은 말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힘이 풀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강묵 저 자식이 내 동생을 죽인 거야! 우희야, 저 자식은 돈도 없고 폭력적인 걸 봐서 재벌가 출신인 왕문원보다 한참 뒤떨어져. 너 남자 고를 때 잘 생각해 봐야 해.”
소국진은 이 기회에 모든 책임을 서강묵에게 떠밀었다.
‘덜 떨어진 자식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내 딸을 때려?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뭐야?’
소국진은 아주 화가 났다. 그는 자신과 소영미가 함께 소부옥을 부추겨 소국림을 별장에서 내쫓았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물론, 그가 더 화가 나는 것은 소우희가 왕문원과의 결혼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소우희가 왕문원과 결혼하지 않으면 그와 소부옥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조용히 있던 소부옥이 입을 열었다.
“왕문원이 급히 떠난 건 다 서강묵 그 녀석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야. 아까 낮에 맞은 것 때문에 창피했겠지. 지금 서강묵이 갔으니 우희야, 얼른 왕문원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했다고 빌고 원장 부르라고 해.”
풀이 죽어 있던 유봉옥은 펄쩍 뛰며 말했다.
“그래, 우희야, 얼른 전화해. 네 아빠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
“그게…”
소우희는 저도 모르게 거절하려고 했다.
용서를 빌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다는 말인가? 왕문원이 제기한 요구에 응하라는 말이 아닌가?
만약 그녀가 왕문원과 정말 밤을 같이 보낸다면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왕문원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제 무덤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봉옥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그녀도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소국림은 그녀의 친아버지가 아닌가? 그녀가 어찌 아빠가 응급실에서 방치된 채,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 있다는 말인가?
결국 소우희는 입술을 깨물고 왕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희생해서라도 소국림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가 통하자 소우희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왜 그래? 서강묵 그 자식과 끝났어? 그래서 나한테 전화한 거야?”
왕문원의 거들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문원, 빨리 원장님께 전화 걸어. 지금 우리 아빠 아주 위독하니까 시간 많지 않다고.”
소우희는 울먹이며 말했다.
왕문원은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 말은 내가 말한 조건에 응한다는 거지?”
소우희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래, 맞아.”
“하하하, 그럼 진작 말하지 그랬어.”
왕문원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낄낄 웃었다.
소우희의 전화를 끊은 그는 삼촌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눈알을 굴리더니 생각을 바꾸었다.
“삼촌이 말한 건데 지금 당신더러 응급실 환자에게 심장 수술을 하라고 하네요!”
왕문원이 한 젊은 의사에게 말했다.
젊은 의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도련님, 저는 이제 병원에서 근무한 지 3년밖에 안되는 새내기인데다 혼자서 수술을 해본 적도 없어요.”
“삼촌이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에요? 계속 우물쭈물할 거면 당장 짐 싸서 나가요!”
왕문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결국 젊은 의사는 덜덜 떨며 수술에 필요한 도구를 챙겼다.
원장 사무실 문 앞.
소부옥은 왕문원이 원장을 불러오겠다고 하자 그제야 안심했다.
“결국에는 왕문원 같은 재벌가에게 부탁을 해야 해. 운성의 각종 업계에 다 왕씨 가문 사람들이 있잖아. 서강묵 그 자식은 도움도 안되고 하마터면 우리 셋째를 죽일 뻔했지 뭐니? 우희야, 앞으로 문원이 옆에 잘 따라다녀. 결국 그 애가 네 아빠를 살렸으니 말이야. 그리고 왕씨 가문도 사령관의 퇴임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고 하니 네가 문원이랑 결혼하면 너도 같이 갈 수 있을 거야. 영미가 그러는데 네가 사령관님을 오랫동안 좋아했다면서? 그와 결혼을 하지 못해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평생 영광이 아니겠냐?”
소우희는 절망에 잠긴 채, 눈물을 흘렸다.
하늘은 그녀에게 최고의 미모를 준 대신, 모든 운을 가져갔다.
어쩌면 그녀는 진작 운명에 복종해야 했는지 모른다.
“엄마, 아빠 어디 갔어요?”
옆에 있던 소영아가 물었다.
“아빠… 또 미션 수행하러 갔나 보네. 먼 곳으로…”
소우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오늘부터 소영아야말로 그녀가 유일하게 기댈 곳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시각, 서강묵은 응급실에서 소국림을 치료하고 있었다.
24의 침 중 절반은 이미 소국림의 몸속에 있었다.
서강묵은 모든 정신을 집중한 채, 소국림의 반응을 보면서 은침의 위치를 하나하나 조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