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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구제

  • 온시안은 멍해졌다. 순간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차용이에게 사고가 나기 전날 원주인은 자신을 나무랐었다. 그에게 초가집 위의 나무판자를 제대로 덮으라 하기도 했다. 그의 사고는 아마 초가집 위에서 굴러 내려온 못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번 공로는 그의 것이 아닌 것이다.
  • 게다가 시집 온 사람들이 팔려나간 이후 그녀는 문산 대군이 보낸 이들에게 화를 냈다. 곁에 있던 이들을 때리고 욕했으며 차 할멈도 그녀가 던진 잔에 맞아 피를 많이 흘렸다.
  • 원주인은 심장이 좋지 않아 사람들을 곧잘 못살게 굴곤 했다.
  • “차 할멈에게 내가 보러가도 될지 물어보는 게 어떻느냐?”
  • 온시안이 물었다.
  • “부인께서 그리 좋은 마음씨를 가지셨더라면 이런 식으로 전락하지도 않으셨겠지요. 애써 마음 쓰는 척 하실 필요 없습니다. 차 할멈과 차용이 모두 부인을 뵙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게 말한 녹두가 몸을 돌려 떠났다.
  • 대문이 다시 한 번 닫혔다.
  • 온시안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저 아이가 죽을 날이 되기라도 한 걸까?
  • 그녀는 차용이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어의가 그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 놓았는지, 잘 치료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각막 손상은 감염의 위험이 있었다.
  • 그녀에게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녀는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가 없어 약상자를 열어 항생제를 몇 가지 챙긴 뒤 길을 나섰다.
  • 차 할멈은 매춘 집에서 일했고 차용이는 집 노비로 풍요각 뒤뜰에 살고 있었다.
  • 온시안은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그들이 사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 “왜 오셨습니까?”
  • 차 할멈이 퉁퉁 부은 붉은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증오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 “차용이를 보고 싶어 왔습니다.”
  • 온시안이 말했다.
  • “당장 가십시오! 차용이는 안 됩니다!”
  • 차 할멈이 냉랭하게 말했다.
  • 온시안은 사과의 말을 건넸다.
  • “죄송합니다. 지붕을 수리하다 그런 사고가 날 줄은 몰랐습니다...”
  • “사고? 그 아이는 이제 고작 아홉 살 되었습니다. 청소나 하는 게 고작인 아이한테 지붕을 수리하라니요. 지붕을 수리하는 이들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을 부르지 못하게 하고 한사코 아홉 살 된 차용이를 시키다니. 어찌 그리 악독한 성정을 가지셨습니까?”
  • 차 할멈의 분노어린 목소리에 온시안은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몰랐다.
  • 그녀는 늘 말재주가 없었다.
  • 그녀는 그저 차 할멈에게 항생제를 건넬 뿐이었다.
  • “이 약을 좀 먹여주세요. 하루 세 번, 한 번에 두 알입니다...”
  • 그러나 차 할멈이 그녀의 손에 놓인 약을 땅에 내던졌다. 차 할멈은 그것을 발로 조각내며 말했다.
  • “필요 없습니다. 돌아가시지요, 부인. 저는 우리 아이를 봐서라도 더 험한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 온시안은 가루가 된 약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약 상자 안에 항생제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차 할멈의 노하고 상심한 표정을 보면서 그녀는 무어라 말해도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조용히 몸을 돌렸다.
  • 그날 밤, 차용이의 상태는 위중해졌다.
  • 문산 대군은 차 할멈을 좋게 보았기에 사정을 알고 경성에서 이름난 윤 의원을 불렀지만 윤 의원은 고개를 내저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 전했다.
  • 차 할멈은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를 들은 온시안이 빠르게 달려 나가 다급히 달려가고 있는 녹두를 붙잡았다.
  • “무슨 일이냐?”
  • “차용이가 위급해요.”
  • 녹두는 다급한 상황에서 그녀를 증오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사실대로 고했다.
  • 온시안 역시 마음이 급해져 방으로 돌아가 약상자를 챙겨들고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