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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한 만남

시공을 초월한 만남

공유미

Last update: 2022-03-16

제1화 타임슬립하여 왕비가 되다

  • 문평, 문산 대군 저택 풍요각.
  • 흔들리는 촛불이 방안 곳곳에 붙여진 혼례 장식을 비추고 그 빛은 금테를 따라 부드럽고 은은하게 퍼져나가며 벽에 한 쌍의 그림자를 채워 넣었다.
  • 온시안의 표정은 인내로 가득했고 달갑지 않은 듯했다.
  • 혼인을 치르고 일 년이 지났으나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 한오라기조차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께 입궁했을 때 대왕대비는 그녀의 평평한 아랫배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는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측부인를 들이는 일에 관해 얘기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혼인을 올리고 일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합방하지 않았음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눈물로 호소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
  • 열세 살에 처음 그를 만난 뒤로 그녀의 마음은 그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녀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결과로 그의 부부인으로 될 수 있었다. 본래 그가 아무리 차가운 심장을 가졌더라도 자신의 온기로 덥힐 수 있을 거라 여겼으나 현실은 그녀가 자신을 과대평가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 분명히 그녀의 저하이나 그의 눈에는 추후의 연민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집요하고 광적인 증오뿐이었다. 그 증오는 마치 독침처럼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 그녀의 마음속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가 솟구쳤고 곧이어 힘겹게 몸을 일으켜 힘껏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비릿하고 달짝지근한 피가 그녀의 입속으로 흘러들어왔다.
  • 유문산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몸을 일으켜 그녀의 뺨을 때리며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온시안, 내가 당신의 바람대로 동침을 허락했소. 하지만 오늘부로 당신을 낯선 이와 다름없이 치부하겠소.”
  • 온시안은 절망적이고도 비참하게 웃기 시작했다.
  • “대군께서는 과연 저를 증오하시는군요.”
  • 출가하기 전 어머니는 그녀에게 부인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약을 들이키고 다가왔다가 약효가 지나가자 조금의 미련도 없이 떠났다.
  • 그의 청포가 말려 올라갔고 늘씬한 다리로 탁자와 의자를 걷어찼다. 물건들이 바닥에 난잡하게 떨어졌고 그는 경멸하는 눈빛을 한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증오? 가당치도 않소. 나는 그저 당신을 혐오하는 것일 뿐이오. 내 눈에 당신은 더러움을 쫓는 구더기와도 같소. 혐오스럽기 그지없소. 그렇지 않으면 나도 약을 마시고 당신과 합례를 하러 오지 않았을 테니.”
  • 그는 곧바로 떠났고 그녀는 청포가 문 어귀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차가운 바람이 문을 통해 불어 들었고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 그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전해졌다.
  • “앞으로 저 여인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그저 문산 대군 저택에서 개 한 마리 더 기른다 생각하여라.”
  • ‘아프다, 아프기 짝이 없구나.’
  • 그녀는 소원대로 합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방식으로 완전히 그녀의 마음을 짓밟았다.
  • 그녀는 비녀를 뽑아 들었다...
  • 풍요각에서 시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마님께서 자결하셨사옵니다...”
  • 어두운 그늘이 풍요각에 드리워졌고 차 할멈은 의원을 보낸 후 몸을 돌려 굳은 표정으로 방안에 들어섰다.
  • “마님께서 돌아가시려거든 대군께 버림받은 후 돌아가시지요. 대군 저택의 땅을 더럽히고 대군마마께 불운을 끼쳐드리지 말고요.”
  • 온시안은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흉악한 표정의 여자를 바라봤다.
  • “물...”
  • 그녀는 지금 목이 너무 말라 입으로 연기를 토할 지경이었다.
  •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시면서 물은 왜 혼자 따라 마시지 못하시오?”
  • 차 할멈은 말을 마치고 혐오스러운 듯 그녀를 흘끗 보더니 침 뱉는 소리와 함께 방을 나갔다.
  • 온시안은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바스러지는 것처럼 아팠고 탁자에 엎드린 채 비틀거리며 물 한 컵 따라 꿀꺽꿀꺽 마시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 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생긴 상처를 보며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여태껏 눈앞에 벌어진 모든 일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그녀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열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G시티 의대에 입학하여 현대 임상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열여섯에 박사과정을 밟아 22세기의 가장 젊은 박사과정 학생으로 되었다. 그 후에 그녀는 의사가 되는 대신 생물 의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다시 바이러스학에 몰두하여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2년간 머물렀다. 그러다 한 바이오 회사에 초빙되어 두뇌를 자극하는 약물을 연구개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