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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주영운

  • 마차는 유문산을 따라 입궁하였다. 온시안은 이제 궁에 대해 전혀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문발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과 얼룩지고 벌건 담벼락이 보였다.
  • 문발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높고 정교한 누각이 비쳤다. 청기와와 황금색 기와는 번쩍번쩍 빛났다.
  • 마차가 멈췄다. 온시안은 깊은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녹두의 도움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 온시안은 밖에 나와 빛을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 황금색 기와에 반사된 햇빛이 익숙지 못해 바로 손으로 가려버렸다.
  • 유문산도 말에서 내리고는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 소운전에 도착하더니 녹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마님, 소인은 소운전 안으로 못 들어가니 이제부터 혼자 모든 걸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 소운전이란 대왕대비마마가 사는 전당인 걸 온시안은 알고 있었다. 소운전밖에는 이미 각 저택의 하인들이 가득 서 있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유문산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 잎이 무성한 마당을 지나 외전에 이르니 많은 사람이 보였다. 하나같이 화려하고 정교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 남겨진 기억 덕분에 그 사람들이 누군지 온시안은 잘 알고 있었다.
  • 청색 비단옷을 입고 숙연한 얼굴로 서 있는 사람은 문정 대군인데 북원 황제의 장남이었다. 서른 살이고 어머니는 진비이다. 그는 마후 정실의 딸과 혼인을 했는데 부인 마씨와 진비, 그리고 두 아이는 모두 그의 옆에 서 있었다.
  • 문위 대군, 문단 대군, 문원 대군도 모두 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입궁했다.
  • 대군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지 않고 눈인사만 했는데 분위기가 많이 엄숙해 보였다.
  • 그러다가 유문산이 흠칫 놀란 듯했는데 몸이 경직된 채 어딘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 온시안은 그의 시선을 따라 봤더니 젊은 한 부부가 들어오고 있었다.
  • 흰색 비단옷을 입은 그 남자는 한 열여덟 살쯤 된 것 같았다. 잘생긴 외모에 키도 훤칠했다.
  • 그가 손을 꽉 잡고 있는 그 여자는 단정한 머리를 빗고 나비 비녀를 꽂고 있었다. 하늘색 비단옷에 진주가 수 놓여 있는 신을 신고 있었는데 얼굴은 꽃처럼 화사하게 예뻤고 걷고 있는 모습은 단아했다.
  • 그녀가 나타나자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녀만 보일 정도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 남겨진 기억으로 온시안은 이 두 사람이 바로 문효 대군과 영운 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영운 부인인 주영운이 바로 유문산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다. 1년 전 유문산과 온시안이 혼인을 한 후로 주영운은 문효 대군과 혼인을 했다.
  • 그녀는 유문산과 눈이 마주쳤다.
  • 그녀의 눈빛은 태연하기도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슬퍼 보이기도 했다.
  • 유문산은 경직된 몸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겨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원망과 증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온시안을 흘깃 쳐다봤다.
  • 온시안은 고개를 푹 숙였다.
  • 방금 그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친 건 찰나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 누구도, 심지어 문효 대군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문효 대군은 각 대군과 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옆에 서 있으면서 내전을 향해 바라봤다.
  • 온시안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는데 머리가 너무 어질어질해서 자기도 모르게 유문산의 손을 잡아버렸다. 하지만 유문산은 바로 그녀의 손을 뿌리쳤는데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튕겨 나갔다.
  • 사람들은 경멸하는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봤다.
  • 이때,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온시안을 부축하면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괜찮아요? 몸이 많이 아픈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