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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약 상자

  • 소독을 마치자 그녀는 너무 지쳐 탁자 위에 엎드려 쉬어야만 했다. 자신의 모습이 고상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잠시 쉬고 있자 바깥에서 차 할멈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마님, 어떤가요?”
  • 온시안이 탁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 “들어와.”
  • 문이 열리고 차 할멈과 녹두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빠르게 차용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아이의 호흡이 진정된 것을 보고서야 차 할멈은 긴 숨을 몰아쉬었다.
  • 온시안은 약 상자를 들고 말했다.
  • “오늘 밤 일은 두 사람만 알아야 하네. 대군마마나 집 안의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 차 할멈과 녹두는 조금 의아하다는 듯 시선을 교환했다.
  • 녹두가 달려와 온시안을 부축했다.
  • “마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 “괜찮다. 차용이를 봐주어라. 머리맡에 약을 두었으니 두 시진 후에 다시 먹이면 될 거야. 약을 먹인 후에 다시 오거라.”
  • 온시안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바깥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 “마님!”
  • 차 할멈이 소리쳤다. 그녀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온시안이 전에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리자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 “밤이 어둡습니다. 등불을 가져가세요.”
  • 그녀가 등불을 온시안에게 건네주었다.
  • “고맙네.”
  • 차 할멈이 화들짝 놀랐다.
  • 고맙다고? 그녀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고?
  • 온시안은 풍요각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뒤 침대에 엎드렸다.
  • 상처가 염증이 생기지 않게 막긴 했지만 상처 부위가 워낙 큰데다 항생제를 먹은 탓에 몸이 허약해져 있었다.
  • 고열까지 나고 난 이후에는 온 몸의 힘이 빠져 기어 다니는 게 고작 이였고 머리를 들기도 어려웠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 잠든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을 무렵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 “마님, 일어나보세요.”
  • 온시안이 힘겹게 눈을 뜨자 녹두의 초조한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한낮의 태양 볕이 보였다. 이미 정오쯤 되는 듯 했다.
  • “차용이가 또 고열이 나는 것이냐?”
  • “아닙니다. 얼른 일어나보세요. 궁에서 사람이 왔어요. 마님과 대군마마더러 입궁하라 하십니다.”
  • 녹두가 초조하게 온시안의 등에 남은 상처를 보았다.
  • “마님, 움직이실 수 있사옵니까?”
  • “궁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냐?”
  • 온시안은 잠을 잤음에도 호전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더 어지러웠다.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약으로도 막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염증과 발열이 시작된 것 같았다.
  • 녹두가 속삭였다.
  • “태황제마마께서 위중하시답니다.”
  • 온시안이 머릿속으로 원주인이 갖고 있던 정보를 빠르게 찾았다. 태황제?
  • 그 곳의 황제라 하면 북원 황제를 말했다. 5년 전 즉위하였는데 마음의 병이 있어 의원의 말로는 그 해 가을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는 의식이 있을 때 당시의 태자를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런데 태자가 즉위한 이후 태황제의 병세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줄곧 침상에 누워 거동은 하지 못했다.
  • 지난 해 겨울, 태황제의 병세는 한 차례 더 악화되었다.
  • 지금까지 버틴 것이 오히려 용한 것이었다.
  • 온시안은 궁내 법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설령 평민 가족이라 할지라도 조부가 돌아가시면 손주 손녀 며느리들이 모두 임종을 지키는 법이였다.
  •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 피와 옷이 달라붙어 움직일 때마다 눈물이 날 듯 아파왔다.
  • 지난 밤 차용이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제 상처가 더 벌어져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기에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 그녀는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지 못해 기어서 침상으로 올라갔다.
  • 그 모습을 본 녹두가 말했다.
  • “제가 대군마마께 움직이시지 못한다고 고하겠습니다.”
  • 온시안은 한 번의 움직임에 더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졌다. 그녀는 침상에 엎드려 녹두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 ‘설마 이 지경이 되었는데 문산 대군이 나를 끌고 입궁을 할까?’
  •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해열제를 삼켰다. 그리고 약 상자를 닫는 그 순간 안속에 누워있는 아트로핀 약병을 발견했다.
  • 그녀의 약 상자에는 원래 아트로핀이 없었다.
  • 약 상자를 뒤져보니 밑에 도파민 주사기도 있었고 자신이 만든 정맥 추사 고정기도 있었다.
  • 불가능했다!
  • 도파민과 아트로핀은 실험실에 있던 것이었다. 긴급용 약품이기에 늘 실험실에 구비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약 상자 안에 둔 적은 없었다. 특히 정맥 추사 고정기는 더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