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을 마치자 그녀는 너무 지쳐 탁자 위에 엎드려 쉬어야만 했다. 자신의 모습이 고상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잠시 쉬고 있자 바깥에서 차 할멈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어떤가요?”
온시안이 탁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차 할멈과 녹두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빠르게 차용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아이의 호흡이 진정된 것을 보고서야 차 할멈은 긴 숨을 몰아쉬었다.
온시안은 약 상자를 들고 말했다.
“오늘 밤 일은 두 사람만 알아야 하네. 대군마마나 집 안의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차 할멈과 녹두는 조금 의아하다는 듯 시선을 교환했다.
녹두가 달려와 온시안을 부축했다.
“마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괜찮다. 차용이를 봐주어라. 머리맡에 약을 두었으니 두 시진 후에 다시 먹이면 될 거야. 약을 먹인 후에 다시 오거라.”
온시안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바깥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님!”
차 할멈이 소리쳤다. 그녀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온시안이 전에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리자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 어둡습니다. 등불을 가져가세요.”
그녀가 등불을 온시안에게 건네주었다.
“고맙네.”
차 할멈이 화들짝 놀랐다.
고맙다고? 그녀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고?
온시안은 풍요각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뒤 침대에 엎드렸다.
상처가 염증이 생기지 않게 막긴 했지만 상처 부위가 워낙 큰데다 항생제를 먹은 탓에 몸이 허약해져 있었다.
고열까지 나고 난 이후에는 온 몸의 힘이 빠져 기어 다니는 게 고작 이였고 머리를 들기도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잠든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을 무렵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님, 일어나보세요.”
온시안이 힘겹게 눈을 뜨자 녹두의 초조한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한낮의 태양 볕이 보였다. 이미 정오쯤 되는 듯 했다.
“차용이가 또 고열이 나는 것이냐?”
“아닙니다. 얼른 일어나보세요. 궁에서 사람이 왔어요. 마님과 대군마마더러 입궁하라 하십니다.”
녹두가 초조하게 온시안의 등에 남은 상처를 보았다.
“마님, 움직이실 수 있사옵니까?”
“궁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냐?”
온시안은 잠을 잤음에도 호전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더 어지러웠다.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약으로도 막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염증과 발열이 시작된 것 같았다.
녹두가 속삭였다.
“태황제마마께서 위중하시답니다.”
온시안이 머릿속으로 원주인이 갖고 있던 정보를 빠르게 찾았다. 태황제?
그 곳의 황제라 하면 북원 황제를 말했다. 5년 전 즉위하였는데 마음의 병이 있어 의원의 말로는 그 해 가을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는 의식이 있을 때 당시의 태자를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런데 태자가 즉위한 이후 태황제의 병세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줄곧 침상에 누워 거동은 하지 못했다.
지난 해 겨울, 태황제의 병세는 한 차례 더 악화되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이 오히려 용한 것이었다.
온시안은 궁내 법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설령 평민 가족이라 할지라도 조부가 돌아가시면 손주 손녀 며느리들이 모두 임종을 지키는 법이였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 피와 옷이 달라붙어 움직일 때마다 눈물이 날 듯 아파왔다.
지난 밤 차용이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제 상처가 더 벌어져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기에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지 못해 기어서 침상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녹두가 말했다.
“제가 대군마마께 움직이시지 못한다고 고하겠습니다.”
온시안은 한 번의 움직임에 더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졌다. 그녀는 침상에 엎드려 녹두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이 지경이 되었는데 문산 대군이 나를 끌고 입궁을 할까?’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해열제를 삼켰다. 그리고 약 상자를 닫는 그 순간 안속에 누워있는 아트로핀 약병을 발견했다.
그녀의 약 상자에는 원래 아트로핀이 없었다.
약 상자를 뒤져보니 밑에 도파민 주사기도 있었고 자신이 만든 정맥 추사 고정기도 있었다.
불가능했다!
도파민과 아트로핀은 실험실에 있던 것이었다. 긴급용 약품이기에 늘 실험실에 구비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약 상자 안에 둔 적은 없었다. 특히 정맥 추사 고정기는 더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