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왕문원 그 인간은 아빠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렇게 악독한 사람과 어떻게 결혼하라는 거예요?”
소부옥은 지팡이를 짚은 채, 욕을 퍼부었다.
“너는 지금 내가 너랑 좋게 얘기하는 거로 보여? 네가 왕문원과 결혼하지 않으면 수십 년간 쌓아온 소씨 가문의 사업이 모두 망하게 돼. 너 때문에!”
“싫어요!”
눈시울이 빨개진 소우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미혼모로 살아오면서 그녀는 줄곧 집안사람의 무시를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가문의 흥망을 그녀에게 떠민다는 말인가?
“그래, 좋아!”
소부옥은 화가 나 몸을 덜덜 떨었다.
“네가 소씨 가문이 망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면 지금 당장 꺼져! 내일부터 력셔리를 영미에게 줄 거야!”
소영미는 활짝 웃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소우희의 자리를 탐냈던 것이다.
“할머니…”
소우희는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이때, 서강묵이 소영아를 안고 그녀의 옆으로 와서 말했다.
“우희 씨, 우리 가요! 소씨 가문이 없어도 당신과 영아가 잘 지낼 수 있게 해줄게요!”
“엄마, 영아 배고파요…”
소영아가 울먹이며 말했다.
소우희는 마음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서강묵의 손을 잡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어머님, 다 저 서강묵 탓이에요. 우희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우희가 정신을 못 차리지 뭐예요. 정말 탓하시려면 서강묵을 탓해야지 우리 국림 씨 잘못으로 보시면 안돼요…”
유봉옥이 소부옥에게 말했다.
그러자 소부옥은 버럭 화를 냈다.
“소국림, 멍청한 놈, 딸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어? 사흘간의 시간을 줄 테니 그때도 우희가 이렇게 나오면 둘 다 꺼져!”
이 말만 남긴 채, 소부옥은 소국진과 소영미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소국림과 유봉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소우희가 서강묵을 집으로 데려온 것을 보고 유봉옥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소국진 역시 상황이 좋지 못했다.
서강묵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틀만 지나면 소씨 가문이 모두 남 부럽지 않게 잘 살게 해줄 테니까요.”
“썩 꺼져! 하는 말마다 허풍이고 허세야! 너는 우리 가족이 모두 거리로 나앉아야 속이 후련하지? 정말 우리 우희를 좋아한다면 지금 당장 멀리 꺼져! 아까 병원에서 못 들었어? 소영미와 왕문원 모두 사령관님의 초대장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 그 둘에게 모두 미움을 샀으니 이제는 우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야? 그런데 남 부럽지 않게 해준다고?”
유봉옥이 바락바락 악을 썼다.
옆에 서 있는 소국림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서강묵이 그의 목숨을 살려줬다고 하지만 오늘의 소동 역시 서강묵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씨 가문은 그를 쭉 무시해 왔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집안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서강묵은 맞은편의 소우희를 보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우희 씨가 제 증표를 받고 제 프러포즈를 받아준 순간부터 저는 우희 씨에게 평생 영광만 안겨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소씨 가문이나 왕씨 가문은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초대장도 별거 아닙니다. 우희 씨만 원한다면 저는 우희 씨를 그 파티의 주인공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유봉옥은 화가 나 눈을 흘기며 말했다.
“허풍이 아주 하늘을 찌르네! 너 같은 인간이랑 말도 섞기 싫어. 여보, 당신 딸이 친 사고 좀 보세요. 그런데 왜 말도 없이 가만히 있어요!”
말을 마친 유봉옥은 고개를 홱 돌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소국림은 서강묵과 뭐라고 하기 민망해서 소우희의 옆에 앉아 말했다.
“우희야, 서강묵의 의술은 뛰어나나 왕 원장의 제안을 거절한 걸 보니 높이 올라가기는 그른 인간인 것 같구나. 또 지난 5년간 영미에게 월급을 다 보냈으니 남아 있는 돈도 없을 게 아니야? 이렇게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널 퇴임 파티의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말이냐? 왕문원은 거만하긴 하나 가문이 빵빵하지 않니? 네가 영아를 데리고 왕씨 가문에 들어가 산다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야.”
소우희는 냉소를 하며 말했다.
“아빠, 잊지 마세요. 방금 전 병원에서 아빠를 죽이려고 했던 인간이 바로 왕문원이에요.”
소국림은 얼굴이 시뻘게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됐어, 오늘은 지쳤으니까 영아 데리고 씻고 자. 얘기는 내일 다시 하자고!”
한참 뒤, 이렇게 말한 소국림은 방으로 들어갔다.
“우희 씨, 할머니가 회사를 떠나라고 한 거 말이에요. 괜찮아요?”
서강묵이 불쑥 물었다.
소우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3년 동안에 저는 력셔리를 적자에서 흑자로 돌렸고 소씨 가문에서 가장 돈 잘 버는 기업으로 키웠어요. 제가 얼마나 애썼는지 누구도 모를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가 말 한마디로 그걸 빼앗아 가려고 하시니 당연히 괜찮지 않죠. 그런데 다른 수가 있겠어요?”
서강묵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소영미가 그 자리를 내놓게 할게요!”
소우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허풍이에요?”
서강묵: “…”
‘자꾸 내가 허풍을 떤다고 그래서 일부러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고 겸손하게 말한 건데…’
사실 그가 소씨 가문을 망하게 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영아 씻기고 올 테니 좀 기다려요. 이따 옆방을 치워줄게요. 할머니가 우리를 언제까지 이 별장에서 살게 놔둘 건지는 알 수 없지만요.”
소우희는 한숨을 내쉬고 아이를 안은 채, 욕실로 걸어갔다.
서강묵은 핸드폰을 꺼내 주채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력셔리의 업무 상황을 모두 알아봐서 나한테 보내.”
“네, 보스!”
주채연은 대답한 뒤, 바로 그가 시킨대로 알아보러 갔다.
몇 분 뒤, 서강묵은 주채연이 보내온 서류를 받게 되었다.
력셔리의 업무상황을 제외하고 소씨 가문의 다른 기업의 자료도 모조리 보내왔다.
서류를 대충 훑어본 서강묵은 무언가 떠올랐다.
그는 주채연에게 두 번째 지시를 내렸다…
이튿날 아침.
소영미는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높은 킬힐을 신고서 의기양양하게 력셔리 대표 사무실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