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촛불이 방안 곳곳에 붙여진 혼례 장식을 비추고 그 빛은 금테를 따라 부드럽고 은은하게 퍼져나가며 벽에 한 쌍의 그림자를 채워 넣었다.
온시안의 표정은 인내로 가득했고 달갑지 않은 듯했다.
혼인을 치르고 일 년이 지났으나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 한오라기조차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께 입궁했을 때 대왕대비는 그녀의 평평한 아랫배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는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측부인를 들이는 일에 관해 얘기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혼인을 올리고 일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합방하지 않았음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물로 호소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
열세 살에 처음 그를 만난 뒤로 그녀의 마음은 그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녀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결과로 그의 부부인으로 될 수 있었다. 본래 그가 아무리 차가운 심장을 가졌더라도 자신의 온기로 덥힐 수 있을 거라 여겼으나 현실은 그녀가 자신을 과대평가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의 저하이나 그의 눈에는 추후의 연민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집요하고 광적인 증오뿐이었다. 그 증오는 마치 독침처럼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그녀의 마음속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가 솟구쳤고 곧이어 힘겹게 몸을 일으켜 힘껏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비릿하고 달짝지근한 피가 그녀의 입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유문산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몸을 일으켜 그녀의 뺨을 때리며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온시안, 내가 당신의 바람대로 동침을 허락했소. 하지만 오늘부로 당신을 낯선 이와 다름없이 치부하겠소.”
온시안은 절망적이고도 비참하게 웃기 시작했다.
“대군께서는 과연 저를 증오하시는군요.”
출가하기 전 어머니는 그녀에게 부인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약을 들이키고 다가왔다가 약효가 지나가자 조금의 미련도 없이 떠났다.
그의 청포가 말려 올라갔고 늘씬한 다리로 탁자와 의자를 걷어찼다. 물건들이 바닥에 난잡하게 떨어졌고 그는 경멸하는 눈빛을 한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증오? 가당치도 않소. 나는 그저 당신을 혐오하는 것일 뿐이오. 내 눈에 당신은 더러움을 쫓는 구더기와도 같소. 혐오스럽기 그지없소. 그렇지 않으면 나도 약을 마시고 당신과 합례를 하러 오지 않았을 테니.”
그는 곧바로 떠났고 그녀는 청포가 문 어귀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차가운 바람이 문을 통해 불어 들었고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전해졌다.
“앞으로 저 여인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그저 문산 대군 저택에서 개 한 마리 더 기른다 생각하여라.”
‘아프다, 아프기 짝이 없구나.’
그녀는 소원대로 합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방식으로 완전히 그녀의 마음을 짓밟았다.
그녀는 비녀를 뽑아 들었다...
풍요각에서 시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님께서 자결하셨사옵니다...”
어두운 그늘이 풍요각에 드리워졌고 차 할멈은 의원을 보낸 후 몸을 돌려 굳은 표정으로 방안에 들어섰다.
“마님께서 돌아가시려거든 대군께 버림받은 후 돌아가시지요. 대군 저택의 땅을 더럽히고 대군마마께 불운을 끼쳐드리지 말고요.”
온시안은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흉악한 표정의 여자를 바라봤다.
“물...”
그녀는 지금 목이 너무 말라 입으로 연기를 토할 지경이었다.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시면서 물은 왜 혼자 따라 마시지 못하시오?”
차 할멈은 말을 마치고 혐오스러운 듯 그녀를 흘끗 보더니 침 뱉는 소리와 함께 방을 나갔다.
온시안은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바스러지는 것처럼 아팠고 탁자에 엎드린 채 비틀거리며 물 한 컵 따라 꿀꺽꿀꺽 마시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생긴 상처를 보며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여태껏 눈앞에 벌어진 모든 일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열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G시티 의대에 입학하여 현대 임상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열여섯에 박사과정을 밟아 22세기의 가장 젊은 박사과정 학생으로 되었다. 그 후에 그녀는 의사가 되는 대신 생물 의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다시 바이러스학에 몰두하여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2년간 머물렀다. 그러다 한 바이오 회사에 초빙되어 두뇌를 자극하는 약물을 연구개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