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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내 거야 

  • 촤라락 ~
  • 엽범이 비닐 끈을 뜯자 포장 아래의 정교한 나무상자가 드러났다.
  • 마치 먼지가 쌓였던 진주처럼, 마침내 그 빛이 보였다.
  • 그는 멈추지 않고 바로 추 씨네 집으로 향했다.
  • 그러나 엽범이 들어서자 문 앞의 탁자에는 이미 각종 선물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엽범은 여기를 선물 두는 곳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정교한 나무상자도 올려놓았다.
  • 미천한 엽범의 행동거지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 추가의 친척들은 엽범을 보고도 모르는 척하면서 아무도 그를 아랑곳하지 아니하였다.
  •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쓸모없는 사람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 추목등을 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추목영네 식구들도 엽범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 생신 잔치가 다가오자, 추광은 추가의 맏아들로서 여러 친척들을 자리고 모셨다.
  •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았지만 추광은 추목등 일가에게 자리를 마련해 줄 생각이 없었다. 마치 그 일가족을 잊은 듯 등한시했다.
  • “형님, 저희는요?”
  • "우리는 어디 앉아요?"
  • 한려는 참지 못하고 애타게 물었다.
  • "자리가 모자라니 너희들 먼저 서 있거라"
  • 추광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는 손사래를 쳤다.
  • "잠시 후 다섯째 딸이 일이 있어 먼저 가니 그때 빈자리가 생기면 앉아라."
  • "그래도…"
  • 이 말을 들은 한려 가족은 순간 민망함과 굴욕을 느꼈다.
  • 이 큰 추씨 집안에 다들 자리가 있는데 유독 추목등네만 서 있으라고?
  • "왜?"
  • "우린 사람으로 안 보이나요?"
  • "왜 하필이면 우리만 서 있어요? "
  • 한려가 발끈했다.
  • "왜냐고?"
  • 추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 "그래, 내가 알려 줄게."
  • "너희 집안이 매년 가져온 선물이 제일 적고, 우리 추씨 가문에 먹칠한 건 제일 많아서다."
  • "추씨네 집안이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누가 준 게 아니라 혼자 이루어 온거야."
  • 추광이 말했다.
  • "자기 집 사람들이 그만큼 출세하지 못했으면서 남 탓을 할까? "
  • 추광이 위엄 있게 소리치자 한려, 추뢰 부부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 "하하~"
  • "바보에게 시집갔으니, 누굴 탓하겠어?"
  • "스스로 창피함을 알아야지.”
  • "원래 형님이 체면을 남겨 주려고 말하지 않았건만 이젠 마지막 부끄러움도 없구먼."
  • 주위에서 뭇사람의 비웃음이 은은히 들려왔다.
  • 지금 추목등 일가는 추씨네 집안의 웃음거리가 됐다.
  • "세상에, 이 재질 좀 보게, 아주 진품이야.”
  • "이 무늬는 또 어떻고, 아주 귀한 걸세!"
  • "이… 선물, 누가 준비한 건가요?
  • 바로 이때, 로비에서는 누군가가 외쳤다.
  • 뭇사람의 눈길이 그 쪽으로 향했다. 웬 남자가 선물을 놓을 테이블 앞에 서서 나무상자를 들고는 보물인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삼촌, 왜 그래요. 그냥 나무상자 아니에요? 얼마나 한다고?"
  • 다들 그냥 별일 아닌 것에 놀란다고 웃어넘겼다.
  • "네가 뭘 알아?"
  • "이건 일품 금실 녹나무야, 나무 중에서도 “제왕의 나무”라고 불린다고.”
  • 1톤에 몇백만 원은 족히 한다.
  •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금실 녹나무 상자는 극히 희귀한 큰 물결무늬로 소장 가치가 아주 높은 물건이야!"
  • "눈앞에 이 나무상자 하나, 재료비에 인건비까지 더하면 천 오백만 원은 될 거야"
  • “뭐라고요?”
  • 이 말을 들은 방 안의 사람은 다들 흠칫 놀랐다.
  • 포장 박스 하나에 천 오백만 원?
  • "세상에, 그럼 이 상자 속의 것은 얼마나 더 가치가 있을 가."
  • "최소한 1억은 하겠구나!"
  • "이.. 이렇게 귀한 선물을 도대체 누가 줬나요?”
  • 온 장내에서 쉬쉬하며,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다. 그들은 추씨네 집안에서 누가 생신 축하 선물로 이렇게 큰 선물을 주는지 다들 궁금해했다.
  • 추씨 집은 작은 가문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그들 추수물류회사의 총자산도 겨우 10억에 불과하다.
  • 그래서 추씨 가족에게 백만 원이 넘는 선물은 극히 드물고 귀중하다.
  • 그러나 지금 이 포장박스 하나에 백만 원어치가 된다.
  • 도대체 누가 이렇게 부자란 말인가?
  • "너 뭐해?"
  • "너 같은 바보는 부끄럽지도 않니? 여기 가만히 있어라.”
  • 뭇사람의 눈길이 포장박스에 끌렸을 때, 너무나 궁핍했던 한려 일가족은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이때 한려는 계속 움직이지 않던 엽범이 앞으로 달려들려고 하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고 그를 막아섰다.
  • 마음속으로 이 바보 같은 놈을 욕하면서 이놈이 가서 거짓말로 자기거라고 하려고 하나 싶었다.
  • 이건 얼굴 내밀고 남들 보고 때리라는 거 아니야?
  • "광아, 이거 네가 준 거야?"
  • 이때 윗자리에 앉은 추영감이 한바퀴 빙 둘러보고는 아무도 걸어 나오지 않자, 미간을 찌푸려 큰아들을 보고 물었다.
  • "아버지, 제가 보낸 것은 남산 불로송이예요."
  • "그럼 낙이가 보낸 거야?"
  • 추영감은 또 넷째 아들을 바라보았다.
  • 추씨 영감의 아들 다섯 이름은, 광명뢰락원으로 정정당당하다는 뜻이다.
  • 그러나 가장 출세한 것은 역시 맏아들 추광과 넷째 아들 추락이다.
  • 추락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 "제 한 달 월급으로 집 대출과 차 대출 빠지고 나면 이런 비싼 물건을 살 돈이 어디 있어요"
  • 추영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건 또 그렇네.”
  • "그냥 이상해서. 이게 허공으로 날아 들어왔나? 왜 아무도 인정하는 사람이 없어?"
  • 추영감이 말을 더했다.
  • 추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이 왕교옥이 말했다.
  • "문비야, 숨길 것 없어, 네가 선물한 거면 인정하면 그만인 걸.
  • "이제 한 식구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 설마 좋은 일 하고 이름을 남기지 않고 싶은거냐."
  • 왕교옥의 웃음소리가 전해지자 추가의 많은 사람이 허벅지를 두드렸다.
  • "맞네, 왜 문비를 잊었어."
  • 문비는 초씨 집안 장남으로 부동산업계에서도 억 소리 나는 재산을 가진 집안이다.
  • "추씨네 집에서, 이런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넷째 사위, 문비뿐이야."
  • "문비도 그렇고, 생일 축하 선물도 그렇게 조용하게 한단 말이냐?"
  • ...
  • "문비가 교양이 좋으니 이런 허명을 따지지 않는 거겠지."
  • 너도나도 말하면서 초문비와 추목영 부부와 함께 보낸 선물이라고 믿고 칭찬했다.
  • "사람이 겸손하고 교만하지 않고, 명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허명을 다투지 않는 게, 문비는 앞으로 큰일이 해 낼 것이다."
  • "이번엔 그렇다 치고 다음엔 이런 선물을 줄 필요가 없다. 마음만 있으면 할아버지는 만족한다."
  • "아..어?"
  • 멍한 상태로 있던 초문비는 아버지의 말에 의아해하며 말했다.
  • "아.. 는 무슨? 어르신께 빨리 감사를 드리지 않고."
  • 왕교옥은 상황을 보고 서둘러 초문비에게 눈짓을 보냈다.
  • "맞아..맞아. 내가 줬는데 할아버지께서 귀중하다고 안 받을까 봐 못 말했어. 할아버지께서 혜안이셔서 다들 알아맞힌 이상 나도 숨기지 않을게요. 도저히 숨길 수 없네요"
  • 초문비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 그 모습이 어찌나 의기양양한지 모른다.
  • 그러나 엽범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정말 뻔뻔스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문비야, 영이와 애썼다. 올라와 앉아라."
  • "내 옆으로 와."
  • 추영감은 손짓을 하며 초문비 부부를 불러 추가의 가장 높은 곳에 앉혔다.
  • 나머지 추씨 가족들은 놀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 "어르신께서 곁에 사람을 두는 것은 처음입니다."
  • "그건 추씨 집안의 최고 높은 자리야"
  • "회사에서 오랫동안 공석이던 사장 자리를 넷째 집으로 돌릴 모양이다."
  • 모두가 부러워하고 또 감개무량하다.
  • 그러던 중 한 목소리가 슬그머니 흘러나왔다.
  • "그 금슬 녹나무상자, 내가 선물한 거야."
  • 엽범이 괴상한 기색으로 초문비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 그러자 크나큰 추씨 집안 거실은 지금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