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그 말을 듣고, 옥패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이이는 깨달았다. 존주님이다, 그가 오셨다!
“어험, 기억은 하나 보네?”
엽범의 말투는 얼음같이 차가웠다.
이이의 늙은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당황하고 송구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엽범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러더니, 운주시를 주름 잡는다는 이 호랑이가 글쎄 엽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모든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이이의 더없는 공경스러움과 존경스러움이 가득 찬 목소리가 술집에서 울려 퍼졌다.
“소인 이이가 오늘 드디어 존주님의 진면목을 뵙습니다!”
“존귀한 존주님, 소인의 절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펑~
이이는 이마를 찧고, 엽범을 향해 절을 했다.
“저 소인이 눈이 없어 존주님한테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만 번을 죽억도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소인의 잘못을 알았으니 절을 한번더 받아주세요.”
펑~
또 굵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이는 바닥을 박살내려는 격으로 절을했다. 이마에 피가날 정도였다.
“아니~”
“이... 이건...”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사람들은 믿기지 않았다.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멍하니 서 있었다.
심비는 더더욱 놀랐다.
이이가 엽범한테 절을 하는 순간 멘붕이 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이이 아저씨가 이렇게 경배한다고?
세상에!
방금 대체 누구를 건드린 거지?
심비는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술집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음산한 찬 바람만 불고 있었다.
후~~
——————
——————
30분 후.
엽범은 다시 술집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이 등은 공손하게 그를 배웅했다.
심구억 부자도 있었다.
사실, 오늘 밤 이이와 심구억은 한 차례의 술잔치가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엽범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됐다.
좀 전에, 심구억 부자는 계속해서 엽범에게 사과했다. 심비의 반쪽 얼굴은 아직 부어 있었지만, 감히 엽범 앞에서 더는 까불지 못했다.
“존주님, 제가 차로 모셔다드릴까요?”
엽범이 작은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이이 등은 공손하게 물었다.
엽범은 손사래를 쳤다.
“필요 없어.’
“아까 내가 말한 일만 너희가 잘해 주면 돼.”
엽범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집에 돌아왔을 때, 추목등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엽범은 굳이 귀찮게 굴지 않았다.
엽범는 오늘 밤의 일이 그녀에게 큰 타격이였다는걸 안다.
모욕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도 매입하지 못했으니.
모든 기대가 무너졌는데 속상한 건 당연한 거다.
“목등아, 내가 다 혼내줬어, 내일 두고 봐.”
“너의 것은 다 되찾아준다고 내가 약속했어!”
후~
밖에는 찬 바람이 불고 낙엽이 휘날렸다.
엽범은 문 앞에 서서 속으로 속삭였다.
온 저녁, 아무 얘기도 없었다!
다음 날, 추가네 저택.
추 영감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추광과 추락 등 추씨 집안에서 중임을 맡은 사람들은 다 있었다.
오늘은, 추가네 정기회의 하는 날이다, 고층 임원들은 당연히 모두 모였다.
게다가, 추 영감과 추목등의 3일간의 약속도 끝나는 날이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추목등은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했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실망하게 해드렸죠?”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추목등은 얼굴을 숙이고 추 영감께 죄송하다고 했다.
“흥~”
“단지 실망뿐이겠어?”
“추목등,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추목등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추 영감은 바로 노하시며 호된 소리로 꾸짖었다.
추목등은 어리둥절했다.
“할아버지, 제가 뭘 잘못했나요?”
“10억인 땅을 4억에 매입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돼요. 제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럼 사장 자리를 포기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건방진 추목등! 할아버지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추목영은 추 영감 옆에 서서 화를 냈다.
“뻔뻔하게 지금 네가 뭘 잘못했냐고 물어?”
“어젯밤, 엽범 그 찌질이한테 그런 일을 시켜 놓고, 몰라서 물어?”
“심씨 집안 도련님이야, 대체 무슨 생각 하고 때린 거야?”
추목등은 추목영의 말을 들을수록 의문에 빠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허~ 아직도 시치미 떼는 거야? 어제 문비랑 우리 둘이 다 목격했어, 너 끝까지 인정 안 할 거야?”
“할아버지, 어젯밤 문비하고 저는 이미 그 땅을 심 씨네 도련님한테서 싼값에 사기로 했어요. 근데 추목등이 질투심에 엽범을 시켜 심 도련님에게 폭행을 가했지 뭐에요. 이 계약은 아마 그 때문에 깨질 거 같고, 우리 추씨 집안에 재앙을 불러올지도 몰라요!"
추목영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대청에 울려 퍼졌다.
추 영감은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추목등을 향해 물었다.
“목등아, 목영이가 얘기한 게 다 사실이야?”
추목등은 놀라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저는 엽범을 시켜 사람 때리라고 한 적이 없어요.”
“인정 안 할 거야? 광이야 네가 차를 몰고 넷째네 집에 가서 엽범을 데려오거라. 삼자대면시켜야 겠어.”
추 영감은 조용히 명령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왔어요.”
밖에서 갑자기 엽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엽범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걸어 들어왔다.
“나쁜 놈, 간이 부었구나. 심 도련님을 폭행해 큰일을 치더니, 죽을죄를 지어 놓고 어디라고 감히 여기까지 찾아와?”
엽범을 보자마자 추목영은 이를 악물고 욕을 퍼부었다.
계획대로라면, 그와 문비는 오늘 토지 양도 계약을 체결하기로 얘기가 다 끝난 상태이다.
그런데 이놈 때문에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됐다.
엽범은 평온한 기색에, 심지어 한 번 웃기까지 했다.
“죽을죄?”
“추목영, 너 사람 억울하게 만드는 재주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어젯밤, 심 도련님과 친분을 쌓고 기분 좋게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는 우리 목등이를 엄청 좋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우리 목등이가 담력도 있고 식견이 넓으며 미모와 재주를 다 갖추었다며 엄청 맘에 들어 했어요. 목등의 인솔하에 추씨 집안은 반드시 앞날이 창창할 거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심 도련님은 목등이를 알게 된 기념으로 10억짜리 땅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어요. 오로지 목등이랑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어서라고 하면서요.”
뭐?
좋게 생각한다고?
10억짜리를 공짜로 준다고?
엽범의 이 말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추목영은 낄낄거리더니,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엽범아, 너 바보 맞지?”
“아니면, 우리가 바보로 보여?”
“심 도련님이 어떤 신분인 사람인데 너 같은 거랑 친분을 쌓아?”
“그리고 뭐 추목등은 좋게 봐? 10억짜리를 선물해줘?”
“꿈 깨세요!”
“네가 한 말들 추목등 본인도 못 믿을걸?”
추목영의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메아리 쳤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추목등은 본인도 믿지 못한다.
추가네 사람들은 엽범이 진짜로 바보라며 비아냥거렸다.
추 영감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그는 놀림을 당하는 거 같아 엄청나게 분노했다.
“작작 해!”
“추목등, 이 쓸모없는 인간한테 헛소리나 하게 시키고, 내가 정말로 노망이라도 든 거 같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