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8화 해가 서쪽에서 뜨다

  • 송규석은 작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입 꼬리를 씨익 올렸다.
  • ‘보아하니 엄마를 도와 복수할 기회가 생겼구나.’
  • 뒤이어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다시 돌아가서는 작은 얼굴을 치켜 들고 송민에게 말했다.
  • “엄마, 초콜릿 맛 하나 사주 세요.”
  • 결제하려던 송민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숙여 송규석을 바라보았다.
  • 꼬마는 아까처럼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라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네?’
  • 아이스크림을 사고 나서 송민이 물었다.
  • “이제 뭘 하고 싶어?”
  • 그녀는 오늘 하루 아이들과 잘 놀아주려고 마음먹었다.
  • “작은 열차 타고 싶어요!”
  • 송유진은 대뜸 백화점의 작은 열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송규석은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 “엄마, 저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 가던 길에 송규석이 불쑥 말했다.
  • “빨리 갔다 와. 엄마랑 동생은 작은 열차가 있는 곳에서 너를 기다릴게.”
  • 송민은 흔쾌히 승낙했다.
  • 송규석은 항상 뛰어난 기억력과 독립성이 있기에 송민은 그가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 화장실의 위치는 작은 열차가 있는 곳에서 조금 멀다. 반쯤 가던 송규석은 뒤돌아 엄마가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작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뛰어갔다.
  • “이 옷을 포장해 주세요. 그리고 이것두요.”
  • 럭셔리 여성복 매장에서 송연은 아직도 옷을 고르고 있었다.
  • 큰 고객이기에 가게의 점원들은 모두 그녀를 따라다니느라 송규석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 송연은 문득 한 연보라색의 드레스에게 시선이 갔다.
  • 네크라인 부분은 가슴 선을 깊게 내려주어 무척 섹시해 보였다.
  • 며칠 후 마침 와이너리에서 연회가 있는데 그녀는 도시언과 함께 출석해야 한다.
  • ‘그때 이 옷을 입으면 도시언이 나한테 반할 지도 몰라.’
  • 생각이 정해지자 송연은 지체하지 않고 사람더러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 송규석은 매장을 한 바퀴 돌더니 마침내 송연을 찾았다.
  • 이때 송연은 이미 드레스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며 감상하고 있느라 뒤에 있는 송규석을 발견하지 못했다.
  • 그날 이 여자가 엄마에게 예의 없게 행동한 것을 생각하자 송규석은 화가 나서 눈살을 찌푸렸다.
  • 송연의 부주의를 틈타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송연을 향해 다가갔다.
  • 거리가 비슷하겠다고 계산한 송규석은 갑자기 소리 내어 불렀다.
  • “아줌마, 드레스가 참 예쁘네요.”
  • 말랑말랑한 소리에 송연은 깜짝 놀랐다.
  • 송연은 본능적으로 돌아섰는데 폭이 너무 커서 드레스 자락의 거즈가 송규석 손의 아이스크림을 스쳤다.
  • 송규석은 여세를 몰아 작은 손을 뗐다.
  • “푸드득.”
  • 아이스크림 전체가 송연의 드레스에 떨어졌다. 순간 드레스에는 큼지막한 얼룩이 묻어났다.
  • “너!”
  • 애지중지하던 드레스가 망가진 것을 보자 송연은 안색이 돌변했다. 그러나 눈앞의 꼬마의 모습을 똑똑히 본 그녀는 흠칫 놀랐다.
  •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녀가 뜻밖에도 송민의 아이를 만날 줄이야!
  • “아줌마,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에요.”
  • 송규석은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표정에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 눈썹을 꼬고 입을 오므린 모양은 보면 볼수록 도시언과 닮았다.
  • 송연은 이를 악물고 마음속의 노여움을 삼키고는 나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송규석에게 말했다.
  • “괜찮아. 아줌마도 네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알아.”
  • 송연이 여전히 웃고 있자 송규석은 무척 의외였다.
  • 그는 기회를 빌려 송연을 격분시켜 그녀더러 대중 앞에서 추태를 부리게 만들고 싶었다.
  • “하지만, 제가 아줌마의 옷을 더럽혔는데 화나지 않으세요?”
  • 송규석은 동생 송유진이 평소 눈을 깜박이며 애꿎은 척하는 모습을 따라했다.
  • 보기에는 정말 무고하고 해롭지 않았다.